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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줄 바에야 잡아먹자
1920년대가 저물면서 신경제정책(NEP)이 끝나고 거대한 집단화의 물결이 소련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소련국가권력이 거친 슬라브 농민들의 사보타쥬를 차례차례 분쇄해 가면서, 공업화를 위한 자본을 농촌에서 무자비하게 착취해 나간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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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8월 2일의 한 포고령은 "중앙아시아, 까자흐스탄 및 자까프까제의 면화재배 지역과 우끄라이나 및 중앙 흑토지대의 사탕무 재배지역"을 1931년 동안 집단화해야 하는 지역으로 열거하였다. 농민들은 가축을 도살하였다. 숄로호프(M. Sholokhov)는 사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가축이 그레먀치 로끄(Gremyachu Log)에서 매일 밤 도살되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기 무섭게 약한 양의 외마디 울음소리, 돼지가 죽을 때 내는 가느다란 소리, 그리고 송아지의 음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꼴호스에 참가한 농민들도, 개인농들도 모두 가축을 살해하였다. 종우(種牛)는 물론이고 황소, 양, 돼지, 심지어 암소까지도 도살되었다. 그레먀치의 뿔있는 가축은 이틀 밤 사이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개들은 내장을 끌고 마을로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땅광과 헛간은 고깃덩어리로 가득 찼다. 협동조합들은 18개월 동안이나 창고에 쳐박혀 있던 약 200뿌드의 소금을 이틀만에 팔아치웠다. '죽여라, 그것은 더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죽여라, 그들은 어쨌든 그것을 고깃덩어리로 생각할 것이다' '죽여라, 꼴호스에서 당신은 고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는 별별 음험한 소문들이 떠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가축을 죽였다. 그들은 더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어댔다. 젊은이고 늙은이고 모두 배앓이를 하였다. 저녁식사 때가 되면 삶고 구운 고깃덩어리로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이었다. 저녁식사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입가에 기름칠을 하고, 마치 장례식 전날 밤처럼 딸국질을 해댔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먹는 것에 취해버린 듯, 올빼미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M. Sholokhov, The Soil Upturned (영어본, Moscow 1934), 152면

새로운 농장들은 집단화된 가축을 다루는 데 전혀 경험이 없었다. 많은 가축들이 무지 때문에 죽었다. 농민들을 지도하기 위해 온 도시 출신의 당 활동가들은 농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며, 충고를 의심하였다. 1932년에는 잘못된 계획, 열악한 임금, 꼴호스 내의 노골적인 강제, 허술한 노동조직, 나쁜 날씨 때문에 위기가 있었다.

사료부족이 일부 지역 특히 우끄라이나에서 가축의 감소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었다. 그곳에서는 국가의 강제징발로 가축에게 줄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1931년, 파종은 굶주린 말들의 끔찍한 상태 때문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집단화는 원시적이고 목축에 적합한 까자흐스딴으로 확대되었는데, 그 결과는 대재난이었다. 가축 손실은 어느 곳에서나 비참하였지만, 까자흐스딴에서는 양떼가 사실상 전멸하였다.
출전: Nar. khoz. Kazakh SSR, 1957, 141면

세 명의 까자흐 역사가들이 쓴 최근의 한 논문은 까자흐인들 사이의 손실이 참담하였음을 보여준다. 1931~33년에 까자흐 총인구의 약 40%가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Abylzhezin, et el., in Voprosy istorii, No. 7 (1989))

만일 까자흐스탄의 대재난을 포함한다면 1931~33년에 총 700만 명이 죽었다는 주장은 진실에 가까운 듯하다.

예를 들면 1930년 9~10월에 끄륌에서는 특별의무공출을 하기로 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 77%가, 자료의 말마따나 '아주 격렬한 투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요구된 양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재산을 매각당한다든지, 벌금을 문다든지, 감옥에 들어가는 식으로 처벌을 받았다.

꼴호스의 식량을 좀도둑질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한 1932년 4월 7일의 법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조달을 위해 곡물을 인도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 꼴호스 지도부 내의 타락한 공산당원과 꿀라끄 지지자들을 비롯한, 꼴호스 안의 싸보따쥬 조직자들은 법정으로 넘겨졌다. 조달계획을 만족스럽게 완수하지 못한 지역들에게는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물자의 공급이 끊어졌다. … 불법적으로 분배되거나 도둑질당한 곡물은 몰수되었다. 수천명의 반혁명분자들, 꿀라끄 및 싸보따주하는 사람들이 추방되었다.…" 당은 숙청되었다. 북까프까스에서는 조사당한 모든 당원 가운데 43%가 쫓겨났다. 일부 지독한 과도한 행위가 있었다. 스딸린은 1932년 11월 27일 정치국에서 한 연설에서, '몇몇 꼴호스 및 농민집단들'에 대해 강압을 사용한 것은 정당하며, 그들은 '괴멸적 타격'을 받아야만 한다고 선언하였다. 까가노비취는 농촌의 공산당원들이 "친꿀라끄적이며 브르즈와적으로 타락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검거선풍이 불었다. 북까프까스의 지역 당서기 가운데 절반이 까가노비취의 명령으로 추방되었다. "종자와 사료 심지어 (노동일에 대한 보수로) 농민에게 선불로 이미 지급된 것까지 포함한 모든 곡물이 예외없이 몰수되었다. 그 결과, "많은 남부지역들에서 식량이 극심하게 부족해지고" "가축이 엄청나게 죽었는데" 이것을 다시 바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Nove, Alec., An Economic History Of The USSR 1917~1991, Penguin, 1990
(김남섭 역, 『소련경제사』, 창작과비평사, 1998, pp.196-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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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희생을 딛고 곡물징발과 수출량은 모두 급등하였다. 안타깝게도 곡물수출이 최고조를 이룬 1930~33년간은 세계대공황의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지만...

부기: 숄로호프의 묘사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 중 하나다. 나는 지금도 언론에서 농업정책에 대한 이야길 들으면 그들이라면 어떻게 대응할까를 연상하게 된다.
by sonnet | 2007/04/09 00:37 | 정치 | 트랙백(1) | 핑백(4)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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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湲룁蟻껋? 擬대┛擬묒쓽.. at 2007/06/29 01:54

제목 : 遺됱?援곕?孺볖異붿닔誼꾪닾椅먮룄 媛뺥븯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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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09/09 21:28

... 지대로는 광활한 시베리아와 잇닿아 있어 세로로는 오만 리, 가로로는 이십만 리나 되니 특급 열차를 타고 보름을 달려도 끝에 다다를 수 없소. 가는 곳마다 소 잡는 소리와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고, 우랄 산맥을 넘어도 사람 사는 곳이 나오오. 너른 땅에 자원이 많아 산처럼 쌓였으며 큰 부자가 많소, 백성은 가난하나 벼슬아치는 부유하고 누가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09/27 16:52

... 면 내 생각엔 총요소생산성이 좋아지기를 물 떠놓고 빌거나 여기저기 되는대로 쑤셔보기보다는 요소투입증대가 차라리 가망성이 있을 것 같다. 이 방법은 몇몇 나라에서 확실히 성공한 적도 있고 그 방법도 잘 알려져 있다.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4/13 01:25

... 의 대통령직 사이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반대가 극렬해도 정부의 권력이 무제한이라면 그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소개했던 사례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6공화국 이래 대통령의 권력은 그 이전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이 약화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해 그들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7/28 08:49

... 입도 거의 못했을 거고, 국내 농산물들을 사먹는데 거의 모든 소득을 지출하는 방향으로 갔겠지요. 2) 그리고 이 상황에서 원조 없이 자력갱생식 공업화를 시도했다면, 공산권에서 많이 보던 방식으로 그나마 좀 생산이 되는 1차 산업들을 다시 쥐어짰을 것이 뻔합니다. 국민은 굶어죽는데도 출혈적인 가격으로 식량을 수출하고 있다든가, 식량은 농촌에서 생산 ... more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4/09 01:02
저쪽 세계에서 왜 '투쟁'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은 한순간도 투쟁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군요[..](위든 아래든)
Commented by joyce at 2007/04/09 12:02
처음에는 객관적으로 정의된 쿨라크만 잡아 넣으려 했겠지만 결국엔 그 지역 당원들까지...
Commented by 볼리바르 at 2007/04/09 12:55
흐루쇼프 시대의 '처녀지 개간 사업'이 생각나는군요. 바로 전 시대인데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던 걸까요?
Commented by 措大 at 2007/04/09 13:11
결국 (자신의 가축을) 도살한 죄만으로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대인배적 조치를 내렸다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4/09 15:53
완전히 소련 공산당의 '대對농민투쟁' 이었군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4/09 17:58
저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일부 군부대도 들고 일어나는 통에 골머리를 썩었다고 하더군요. 붉은군대 병사들도 상당수가 농민이니...
Commented by band at 2007/04/09 22:57
으흠.......저런땅에서 단고기와 야체문화를 심어준 까레이스끼들은 과연 뭘로 평가받을려나요... 울 공장(前)의 두 세르게이(까자흐출신 슬라브계)들은 단고기와 막걸리에 사족을 못쓰더만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4/10 21:18
후세의 초코파이 문화도 있습니다!! (탕)
...정말로,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엔 대책이 있긴 한데,
다시 봐도 이건 그 최악의 조합... (;;;)
Commented by sonnet at 2007/04/16 09:08
라피에사쥬/ 레닌도 러시아에서 혁명은 늙은 소를 잘 구슬려 밭을 갈게 시키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죠..

joyce/ 공출을 독려하러 갔던 MTS(기계트랙터배급소) 지도원들과 지방당간부들이 농촌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어떻게 좀 해보려다가 많이 희생당했던 겁니다.

볼리바르/ 그거야 원래 내가 할 때는 다르다...라는

措大/ MTS 지도원: "동무, 동무의 암소는 없소. 오직 당의 암소가 있을 뿐이옿!"
농민: (염소를 가리키며) "스딸린 동무도 우리가 저 훌륭한 암소를 가질 수 있다고 하셨단 말이오!"

행인1/ 뒤로 물러나면 권왕님, 아니 스딸린 대원수 각하에 의한 확실한 죽음 뿐...

길 잃은 어린양/ 사실 기록 여기저기에 농민반란에 대한 은유가 많은만큼 군대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and/ 저 때 까자흐스딴에 또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무쟈게 죽어나갔다구 하지요. 워낙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단고기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paro1923/ 상대를 잘못 고른 거지요. 스탈린이어서는 도저히...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4/19 19:42
까자흐스탄 사람들이 고려인들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하고 천막도 쳐주고 그랬다더니 심성도 좋았겠지만 동일한 위정자에게 지독한 고통을 받았다는 연대의식도 있었군요..
Commented by hwnsng at 2007/06/29 18:47
감사히 읽었습니다.
퍼가도 될런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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