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은 '이지스보다 고속정을 만들자'고 한 적이 없었다.(愚公) 에서 트랙백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이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사건 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글로 남기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회의도 공개 회의였다. 티오콜 회사의 중간관리자인 런드 씨라는 사람이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셔틀을 발사하기 전날 밤에 멀러이 씨가 그에게 셔틀 발사 여부를 <기술자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경영자의 관점>에서 보라고 했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자기 부하 기술자들이 발사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발사하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매우 심한 질문들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그 회의가 종교재판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그에게 심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로저스 씨는 일전에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장래가 우리의 질문과 조사에 따라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모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높은 곳에 앉아 있고 그 사람들은 저기 낮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질문을 하면 그들은 반드시 거기에 답변을 해야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답변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갑자기 그의 말이 생각나면서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대단히 기분이 상하였고 그 다음날에 있을 회의에도 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 쉬면서 기분을 풀기로 작정하고 캘리포니아 주로 되돌아왔다.
Feynman, Richard P.,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 Futher adventures of a curious character, W W Norton, 1988
(홍승우 역,
『미스터 파인만!: 호기심많은 천재 물리학자의 기발한 모험』, 서울:사이언스북스, 1997, pp.226-227)
이는 국정감사나 청문회 등을 진행하면서 칼자루를 쥔 쪽에서 공통적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국회의사록은 평이하게 기술되기 때문에 당시 사건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지 못할 수 있다. 이번 경우가 특히 그렇다. 임종인 의원과 해군참모총장간의 질의는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그 말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하는 모두
2004년도 국회 국정감사 국방위 회의록에서 인용한 것)
제가 소리를 친 것은 대단히 죄송하고요. 존경하는 총장님께서 톤수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매우 유감스러워서 그랬는데 총장님께서 톤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까 중요하지 않은지는 제가 또 공부해서 하겠고,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열린우리당 임종인)
어느 대목인지 모르지만 임종인 의원이 목청을 좀 높인 모양이다. 뭐 그런가보다. 그런데 더 읽다 보니 이에 대한 상임위 의원들의 반응이 눈에 띈다.
아까 저희 당의 임종인 위원님께서 너무 의욕이 과하시다 보니까 목소리를 높여서 질타하셨는데 솔직히 저도 국정감사를 하다 보면, 제가 좋아하지 않는 질의 중의 하나가 본인은 실컷 숫자를 조사해 놓고 장관이나 피감기관장한테 이 숫자를 ‘아느냐, 모르느냐’ 곤란하게 해 놓고 모르면 ‘그것도 모르냐’고 질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별로 좋은 질의 내용은 아닙니다. 하여튼 너무 괘념치 마시기 바라고 KDX-Ⅰ함정 및 초계함 운영 실태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열린우리당 김성곤)
아까 어느 위원님께서 이지스함 하느니 배를 한 200척, 300척 다른 배로 대체하는 소형 얘기를 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은 전략군 개념과는 많이 다른 얘기입니다. 실제로 해군 군사력이 어느 정도 있다, 없다라는 차원을 떠나서 주변 군사대국들이, 특히 일본과 중국이 군사대국화하면서 이지스함 몇 척 이렇게 확보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하다가 그냥 꼼짝없이 당하는 그런 것도 예상하면서 하는 어떤 전략군 개념이 필요한 것이니까 해군 군사력 증강에 관한 앞으로의 방향에 관해서는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임해야 된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감사 질의 초반에 제 옆자리의 임종인 위원께서 총장을 좀 어렵게 하신 점에 대해서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바로 옆자리에서 제가 제어를 해야 되는데 바라만 보고 있어서 마치 동조하는 것처럼 비쳐져서 죄송합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 11위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이제는 원양 작전 능력을 갖지 못하면 해군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형 함정 중심으로 해서 북한군하고만 싸울 준비 하라는 것은 견해의 차이일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평소 소신대로 아주 막강 정예 21세기 해군으로 성장할 것을 거듭 당부드립니다. (열린우리당 조성태)
우리 임종인 위원께서 “우리 국력이 그렇게 늘어났는데 뭐 했냐” 자꾸 그런 말을 안 듣도록 미래의 해군으로서 방심하지 말고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국력을 지키는, 수출입을 지키는 그런 그런 해군으로 발전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열린우리당 홍재형)
국회가 고무도장 박수기계가 아니라 실질적인 감사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피감기관에 대해 엄격히 따져 물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종인 의원의 행동이 그런 차원에서 통용될 만한 행동인지, 아니면 칼자루를 쥔 입장을 이용해 무리한 행동을 한 것인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보다시피 임종인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의 동료 의원들은 모두 그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결국 분위기가 좋지 않게 돌아가자 임종인 의원은 다시 한번 사과를 하게 된다.
위원장 유재건: 홍재형 위원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임종인 위원의 신상발언을 잠깐 듣고 감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임종인 위원: 제가 우리 총장님한테 큰소리를 냈다고 저 대신 우리 김성곤 위원님이나 평소에 맨 소리만 지르는 안영근 위원님까지 사과를 했는데 제가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왜 그랬냐 하면 우리 3000t급 이상의 배는 5척이 있다는 거, KDX-Ⅰ 사업으로서 광개토, 양만춘, 을지문덕, KDX-Ⅱ에서 이순신 그리고 문무대왕함 5척이 있다는 것은 저도 알고, 5척밖에 안 되는 것을 총장님이 모르신다고요? 총장님이 모르실 리가 없고 저를 놀리는 거다, 1 플러스 1을 물어봤는데 2가 아니라 3이라고 하는 것을…… 모른다라고 그러시는 것 같아서 제가 확인했던 것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고요.
우리 총장님께서 잘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특히 해군만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육,해,공군 모두 전력증강에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해군은 지원병이라서 특별한 게 없지만 이번에 헌법재판소하고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 입법을 만들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입법안을 만들어서 김덕규 부의장님하고 김성곤 간사님하고 저랑 그리고 여러 분들하고 같이 냈으니까, 제가 책자를 드릴 테니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별로 사과 같은 사과도 아니지만, 시간없어서 질의도 1인당 5분, 10분에 하라는 이야길 수도 없이 하는 상황에서 따로 시간을 빼서 그것도
국회의원이 피감사자에게 시간을 내어 다시 사과를 하는 상황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당시 장내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유재건 위원장의 마무리 역시 가시가 느껴진다. "사과를 하라고 시간을 줬더니 변명이 더 길군. 하지만 사과 한게 어디냐..."쯤 되지 않을까?
위원장 유재건: 사과가 전체인 줄 알았더니 사과는 짧게 하고 부탁이 길었습니다마는 어쨌든 용기 있는 사과 발언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를 마치면서 고도원의 ‘아침편지’라고 한국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는 것이 있는데 아빈저연구소의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과는 진심을 담아서 되도록 빨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상대가 이미 포기한 뒤에 하는 사과는 소용이 없습니다. 사과는 관계를 푸는 것이며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더 큰 사람입니다’ 의미 있는 문구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럼 임종인 의원이 한 이야기는 내용적으로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 이야기였을까? 그 점은 다음 글에서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