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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 고르바초프(1987)
다음은 1987년 위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소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측 증언이다.

직원들과 나는 첫 날 두 정상이 극적인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협정 조인식의 안무를 맡았다. 시각은 11시를 택했다. 정력적이고 정치 경험이 풍부한 브루클린 출신의 젊은이 캔 두버스타인(Ken Duberstein)이 대통령 비서실 차장이었으므로 그에게 제안 일정을 보냈다. 그는 나중에 전화로 조인식이 1시 45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전체 일정이 망쳐진다. 켄은 1시 45분을 되풀이했다. 나는 11시 30분이나 아무리 늦어도 정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두버스타인은 1시 45분을 고집했다. 그의 행동이 너무나 독단적이고 그답지 않아서 내가 말했다. “케니, 특별히 1시 45분이라야 하는 이유라도 있소?” 그는 똑바로 대답해 주지도 않았지만 재고하려는 뜻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일정의 모양새를 일그러뜨려야만 했다.

수주 후 두버스타인은 마침내 그 이유를 말해 주었고 그 때문에 나는 백악관 내에서 그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가 됐다. 낸시 레이건이 점성술사와 상담해서 대통령이 언제 어디에서 미합중국의 업무를 행할지 결정했다는 것을 지금은 온 세상이 다 안다. 캘리포니아의 예언자 조안 퀴글리(Joan Quigley)가 별의 형세로 보건대 중거리 핵전력 협정의 조인에 유리한 때가 1시 45분이라는 분부를 내렸던 것이다.

낸시 레이건이 점성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통령 자신 속에 있는 신비주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소련 원자력 발전소에서의 한 사고가 지구상의 그만한 지역에 방사능 물질을 퍼뜨린다면 핵무기는 어느 정도이겠는가? 대통령은 체르노빌이라는 명칭이 ‘약쑥’을 뜻하는 러시아어에서 파생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약한 맛 덕분에 이 식물은 성경에 쓰라림의 상징으로 언급되어 있다. 대통령의 일련의 생각은 체르노빌에서 약쑥으로, 증오로, 다시 지구를 파멸시킬 대전쟁으로 이어져 갔다. 그는 그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인류를 향한 성서의 경고라고 말했다.

12월 7일 고르바초프가 도착했고 우리는 각본에 충실하게 달라붙었다. 서기장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도착한 뒤 대통령 집무실에서 있은 짧은 단독 면담에서 레이건은 커프스 단추를 진지하게 선물했다. 고르바초프는 간단하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주머니 속에 선물을 넣었다. 이어 두 지도자는 중거리 핵전력 협정의 조인을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이스트 룸으로 향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말했다. “역사상 최초로 ‘군비 관리’라는 말이 ‘군비 축소’로 대체되는군요.” 우리는 각각 미합중국과 소연방을 나타내는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된 두 개의 가죽 표지 사본을 마련해 두었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시 45분이 조금 지나 조인을 했다.

이제 의식보다도 실질적인 교섭을 할 시간이 왔다.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전략 방위 구상을 궤도에서 이탈시키고 싶어 했고 더불어 자기 나라에 대한 경제적 도움을 선전하고자 했다. 우리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나고 유대인들이 소연방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기를 원했다. 나는 2시 30분에 장관들과 직속 보좌관들이 대통령 집무실에 모이도록 짜 놓았다. 그러나 국무부 쪽에선 양측의 많은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싶어 했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조지 슐츠가 훨씬 큰 회의실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내 촉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변화가 로널드 레이건을 혼란시킨 것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슐츠에게 양보했다.

모두가 회의실에 빽빽이 들어차 자리를 잡았을 때 대통령은 손님인 고르바초프에게 먼저 말할 것을 청했다. 소련의 지도자가 손으로 쓴 메모를 보면서 말을 하는 중에 내가 받은 인상을 적어 두었다. ‘똑똑함. 빠름. 화제의 범위를 바꾸는 것이 빠르다. 활기참. 단단함. 호전적. 화려한 연설.’ 고르바초프는 ‘복수 개별 유도탄두’이니 ‘수평 탄도’니 SS12, 13 18, 24 따위의 투사 중량을 손쉽게 내뱉는 것이 마치 군비관리군축국에 있는 켄 애들먼의 학생 같았다. 어느 대목에선가 고르바초프가 말했다. “아칸소 파인 블러프에 있는 당신네 공장에서 새로운 화학 무기를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무기들이 155밀리 포탄으로 발사될 것이라는,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가 모스크바 미 대사관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게 대부분인 러시아의 우스갯소리들을 파일 카드에 잔뜩 정리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발언권을 양보했다.

대통령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미국인 교수가 소련 행 비행기를 타러 비행장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는데 기사가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업을 마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교수가 물었죠. 운전사가 말했습니다. ‘모르겠는데요.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서 이 교수가 시내로 가는 택시를 잡아 러시아인 운전사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도 역시 학생이었어요. 해서 교수는 학교를 나온 뒤 무슨 일을 할 건지 물었죠. 운전사가 말했습니다. ‘모르겠어요. 당국에서 정해 주질 않았어요.’” 대통령의 태도는 상냥했다. “이것이 우리들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예요.”

그가 이야기를 끝낼 쯤 미국인들은 테이블 아래로 숨어 버리고 싶었고 고르바초프는 표정 없이 눈만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기에 고르바초프는 이젠 레이건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는 감정이 상하는 문제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양 다시 협의 사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통령의 연기는 얄팍한 준비 상태를 드러내기만 했다. 외교에 관한 질문엔 슐츠를 향해 말했다. “아마 그에 관해선 조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군사 문제에 관해선 프랭크 칼루치를 돌아보았다. “프랭크, 당신이 그 점을 설명하고픈 것 같군요.”

회담이 끝나고 우리 측은 대통령 집무실로 물러났다. 조지 슐츠는 용감하게도 할 말을 했다. “대통령 각하. 이건 대실패입니다. 그자는 강합니다. 준비도 잘 되어 있습니다. 각하도 그냥 앉아서 농담이나 하실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도 회담이 잘 풀리지 못했음을 알았고 질책을 냉정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손을 들지는 않았다. 그는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대통령과 고르바초프는 다음날 아침으로 잡힌 또 한번의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오늘 실수의 일부는 내 불찰임을 인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우리가 할 일은 대통령 집무실을 고수하는 겁니다.” 나의 말에 이젠 조지 슐츠도 동의했다. “대통령 각하, 그 다음은 말씀하시는 요점을 잘 정리한 것을 드리는 겁니다. 오늘은 더 이상 훈계를 늘어놓아 봐야 로널드 레이건 자신에겐 도움이 될 리 없었다. 그는 저녁에 고르바초프를 위해 공식 만찬을 치러야 했으므로 나는 돌아가셔서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비추었다. 그리고 아침까지는 만반의 준비를 해 놓겠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회담이 끝나면서 슐츠는 마치 우리가 1회 KO를 당하기나 한 듯이 심란해 보였다. 나는 모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힘을 내어 문제를 고쳐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가 플로렌스 간트를 시켜 직원들 가운데 프리츠 얼머스, 보브 리너드, 넬슨 레드스키를 불러모으자마자 다섯 개 항으로 된 고전적인 육군 전투 명령을 하달했다.

상황, 심각함. 첫 교전에 패배.
임무, 주도권을 회복할 것.
실행, 내일을 대비하여 대통령을 위해 잘 준비하여 역습한다.
병참, 해당 부원들이 빽빽이 채운 서너 페이지짜리 연설 요점을 작성할 것.
지휘와 통제, 여기 이 방에서. 의제 자료는 국무장관의 승인을 얻을 것.


나는 말했다. “공식 만찬회가 끝나고 자정쯤 해서 보세.”

로널드 레이건이 타고난 재주를 펼치듯 온화하고 설득력 있으면서 재치 있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만찬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조금 못 되어 사무실로 돌아가 보니 응급 계획이 떨어지면 늘 그렇듯 혼돈 그 자체였다. 남자들의 걷어 올린 셔츠 소매와 조기(弔旗)처럼 풀려 내려진 넥타이, 여자들의 헝클어진 머리, 온통 휘갈겨 써 어지러운 원고들 위로 등을 구부린 모습들, 차갑게 식은 커피를 반쯤 머금은 잔과 플라스틱 스푼이 책상 위에 널려 있고, 비서들은 워드프로세서 앞에서 딸깍거리고, 프린터는 갓 작성된 초고를 토해 내고 있었다. 나는 현황판을 검토해 보곤 말했다. “좋아, 하지만 충분친 않아.” 몇 가지 방향 교정을 해 준 다음 눈을 좀 붙이기 위해 집으로 갔다가 오전 5시 웨스트 윙으로 돌아왔다. 부원들은 이젠 의자와 소파에 늘어져 흐리멍덩한 눈들을 하고 있었다. 얼머스는 대통령의 연설에 사용하는 요점 자료의 최신판을 건네주었다. 시계를 힐끗 보니 오전 7시였고 우리의 작업에 대해 한마디 하러 슐츠가 건너올 것이었다. “한번만 더.” 몇 가지 새 지시 사항과 함께 내가 말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회의 테이블 둘레에 앉았다.

슐츠는 정시에 들어왔고 나는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을 보여 주었다. 조지가 말했다. “좋은 것 같은데. 내 부서로 가져가도 되겠지? 내 부원들이 한번 봐야겠소.”

내가 말했다.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대통령께 설명도 드려야 하는데 고르바초프와 만나는 시각이 11시거든요.”


나와 함께 연설 요점들을 검토할 때 대통령은 상쾌하고 편안한 기분인 듯했다. 그것들은 마치 대본처럼 더블 스페이스로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엔 전략 방위 구상, 군비 관리, 지역 분쟁, 인권, 경제 원조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어제 일은 아예 없었던 듯이 행동했고 내 기분도 단연 낙관적이었다. 아침엔 매사가 더 나아 보이는 법이다. 항구적인 낙관론은 힘을 배가시켜 주는 요소이고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훌륭해. 이젠 됐어.” 연설 요점들을 점검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대통령은 말했다.

그는 탁자 옆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탁자의 서랍을 열어 석 장의 자료를 속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공식적인 개회식이 있은 후에 대통령 집무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인상이 곱지 못한 KGB 관료로서 그리스콤이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붙여 준 바 있다)이 서류 가방을 열어 고르바초프에게 손으로 쓴 메모가 적힌 속기철을 건네줄 것입니다. 그때 태연히 이 서랍에서 자료를 꺼내시면 됩니다. 단 반드시 각하께서 먼저 발언하셔야 합니다.”

그날 오전, 대통령은 백악관에 도착한 고르바초프를 맞이했고 수행원들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으며 사진사들에게 촬영 허용 시간을 할애한 다음 일정에 들어갔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속기철을 손에 쥐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대통령도 탁자에서 메모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고도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는 영광스런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서기장이 말한 대로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나는 소련 측이 탄도 미사일을 4800개 내지 5100개 탄두로 제한할 용의가 있다는 데 고무 받았습니다. 공격용 미사일은 40년 이상에 걸쳐 평화를 유지시켜 주었지만 두 나라 국민들은 더 나은 환경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략 방위 구상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위기 상황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할 동기를 제거함으로써 세계 안정을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대통령이 우리가 원한 대로 논의의 방향을 잡으면서 장면은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시종 나는 고르바초프를 주목하면서 그가 대단히 빨리 적응하는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어제의 방향을 역전시키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즉각 알아차렸다. 대통령이 말을 마치자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속기철을 펼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내 속기철을 치우곤 머리 속에서 나온 실제적인 발표를 해 나갔고 자신의 자료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음을 과시하면서 여전히 전략 방위 구상에 대한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미국 언론이 왜곡시킨 바와는 반대로 소연방이 자체적으로 전략 방위 구상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이 그 길로 나아간다면 이는 그들 문제다. 하지만 소련도 대응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된 주장은 분명히 핵무기를 감축하기 위한 합의를 계속해서 모색하는 것이었다.

회담은 한 시간 반 이상에 걸쳐 진행되었다. 슐츠와 칼루치, 그리고 나는 때때로 세부 사항에서 대통령을 거들어야 했다. 고르바초프가 현안들에 보다 정통해 있음은 분명했지만 그의 태도에는, 예를 들어 1962년 빈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젊고 미숙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으스댔던 것과 같은 생색내기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르바초프의 태도는 마거릿 대처에 가까웠다. 이 영국 총리도 복잡한 문제들을 소화하고 명확히 하는 데 있어서는 로널드 레이건보다 몇 수 위였다. 그러나 그녀나 고르바초프나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인들을 설복시킨 레이건의 자질은 인정했다. 그는 대통령이었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국민들의 현실적인 성격과 실용주의, 그리고 낙관주의의 화신이었다. 현명한 이웃 나라의 정상들은 이 사실을 인정했고 보다 냉소적인 지도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Colin L. Powell, My American Journey, 1995
(류진 역,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p.502-508)


민주정 하에서 지도자는 자신이 정권을 잡을 수 있게 해준 자질이 그가 국가를 통치하는 데 종종 해롭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그릇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면한 사실을 끝까지 외면하는 경우도 많다)

레이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국내 정치의 챔피언으로, 카리스마와 유머로 일반 대중들을 사로잡는 개인기의 대가였지만, 국제협상의 준비소홀을 극복할 수 없었다. 사실 그의 개인기는 얄팍한 지식수준과 허세만을 노출시켰을 뿐이다.

내 관저에서 벌이는 홈 경기에서도 준비가 저 모양이었다는 점은 그의 부하들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 명백하다. 7년간 집권한 행정부에서 세 번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저게 도대체 뭔가?


부하들이 써준 원고를 마다하고 즉흥연설에 도취되는 우리의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나 그의 동북아 균형자 농담을 들으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우리끼리 이야기니까 말인데 사실 국방위원장이 우리 지도자를 만나주지 않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by sonnet | 2007/03/23 14:27 | 정치 | 트랙백(1) | 핑백(2)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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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7/11/18 00:16

... and How They Won The Cold War, New York:Simon & Schuster, 1997, p.573 예전에 소개했던 워싱턴 미소정상회담(1987)의 에피소드도 비슷한 시기인데, 레이건의 지적 능력이 쇠퇴하였다고 보면 아귀가 아주 잘 들어맞는 것 같다.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07/01 05:19

... 지난번 글 레이건 대 고르바초프(1987)에서 여러 분들이 'YS와 김수령이 만났더라면'이란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해 주셨는데 거기에 대해서라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난다. 김영삼 대통령도 ... more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7/03/23 14:55
국방위원장은 둘째 치고 혹부리 주석께서 보다 장수해서 YS를 만났다면 아마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 ' ^')
Commented by Cato at 2007/03/23 14:56
늘 좋은 글들 잘 읽고 갑니다.

카터가 레이건에게 정권 인수 관련해서 브리핑을 했는데 중요 국제문제들을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레이건이 졸더란 얘길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나마 레이건은 열심히 일하는 참모들이 있었고 참모들의 주장을 경청했기에 업적을 남겼는지 모르겠으나 참모는 없고 비서만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모국 권부가 남은 약 1년 잘 견딜지 정말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3/23 15:17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저 사실을 외면하는 지도자가 많을까요.-_-;;
역시 연구소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가....-_-;;
Commented by 玄武 at 2007/03/23 15:23
각하는 계몽군주 놀음을 더욱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도야지 at 2007/03/23 15:24
부적절한 비난 같군요.
노대통령의 길에 대한 반론이나, 또 그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에 대한 비판까지는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개인적인 자질만으로 놓고 보면 레이건이나 김영삼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런식의 이야기라면 본문에서 대단한 지도자로 치켜세운 고르바초프는 뭐죠?

'그는 이내 속기철을 치우곤 머리 속에서 나온 실제적인 발표를 해 나갔고 자신의 자료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음을 과시하면서 여전히 전략 방위 구상에 대한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3/23 15:32
손발이 되어 열심히 일해주는 부하들이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일화네요.
p.s : 권력자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까다로움을 볼 때 아무리 봐도 레이건은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꽤나 잘 실천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gforce at 2007/03/23 15:43
...전 정말로 굉장한 해에 태어났던 거군요(버엉)
Commented by joyce at 2007/03/23 15:49
레이건은 많이 알지는 못했을지언정 결코 바보가 아니었죠. '질책을 냉정히 받아들였다'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괜찮은 지도자였다고 생각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직접 입력하신 건가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3/23 17:25
조지 부시 조차 레이거노믹스에 회의적이였다는 건 유명하죠. 미국인들은 케빈 스페이시 보다는 존 웨인같은 대통령을 원하나 봅니다. 무서운 건 별로 뛰어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도 별 탈 없이 굴러간다는 거죠.
Commented by at 2007/03/23 18:24
저는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노통은 지도자의 문제점을 보좌할 현명한 보좌진도 없고(인사청탁에 혈안이 된 386들만 득시글) 보좌진의 얘기를 수용하는 포용력도 없다고요.
혼자 똑똑하다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3/23 19:43
읽으면서 레이건이 영화 배우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나버렸습니다....
저때의 고르바초프는 일반인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군요.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7/03/23 20:32
소련에서 권력을 잡으려면 미국과는 달리 연기력, 이미지, 스타일로 때울 수 없는 부분이 무지무지하게 많으니까 그렇겠죠.

YS가 김일성을 만난다는 상상을 해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는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3/23 20:56
79년까지만 해도 고르바초프는 정치국위원후보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당시 정치국원들이 극히 노쇠했기 때문에(젊어야 70대초반이던가?) 85년쯤 가면 후보사이에서 주축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만 그만큼 치열한 경쟁과 경쟁과 경쟁속에서 정점에 오른 무서운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표현이 뭔가 아닌듯 싶지만..)
Commented by tloen at 2007/03/23 21:06
사실 미국의 정치체제는 정말 묘한게, 전혀 다른 방향에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이상을 구현했다고나 할까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이상이 극악의 독재자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 권력이 견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미국의 정치체제는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지도자가 있더라도 그 체제가 무난히 굴러갈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한마디로 황당하고 무서우면서 부럽죠
Commented by 措大 at 2007/03/23 22:40
위의 댓글에서 논의되는 "미국 정치체제의 강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밥 돌 상원의원이 지적한 일도 있었지요. ("...나 같은 인물이 되어도 잘 굴러간다는 점..."운운)

불카누스니 네오콘이니 하더라도, 예일이나 프린스턴이나 하버드 등지에서 (수많은 싱크탱크를 통해) 공급되는 보좌관들이 버틴 상국과, 라이온스 클럽 및 로터리클럽 지역 청년회 혹은 XX시민연대에서 공급되는 보좌관들이 버틴 봉국의 차이는...무섭기만 합니다;
Commented by 瑞菜 at 2007/03/24 00:07
대체적으로 지도자들은,
국내에서 해오던 방식이 국외에서도 먹힐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더군요.
노는 판이 변하면 스타일도 변해야 하거늘.
하다못해 야구선수들이 해외진출을 해도 당장 투구폼이나 타격자세 수정에 열을 쏟는데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07/03/24 00:54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시나 봐요. "민주정 하에서 지도자는 자신이 정권을 잡을 수 있게 해준 자질이 그가 국가를 통치하는 데 종종 해롭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저도 이 대목에서 영삼옹이 생각나더군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그래서 머리만 빌리다가 imf 맞고 지금도 유감스러울(!) 정도로 건강하신 영삼옹. 정말 혹부리 수령과 만났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요? 이게 무서운 상상인지 웃기는 상상인지 좀 헷갈립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7/03/25 00:54
자꾸만 글을 썼다가 지우곤 하네요.
...뭐랄까, 그나마 귀만 좀 트인 저런 대통령 밑에서 일하던 참모진을
가엾게 여겨야 할지, 아니면 그런 대통령임에도 훌륭하게 보좌해 줄
건전한 인재 풀이 있던 당시 미국의 인재 풀을 부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Commented by H-Modeler at 2007/03/25 11:58
이야.....점성술을 상당히 믿는 편이었다는건 들었지만, 저런 조인식 날짜까지 점성술사와 상의할 정도였다니 참,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군요.

그건그렇고....레이건이 배우시절에 주연, 혹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뭐뭐가 있는지 궁금...[...]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7/03/25 14:33
레이건은 어떤 사상이나 신념보다 유머와 재치로 정치를 한 사람이니 실제 일에선 딴
사람말을 잘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에 좋은 참모가 있었다는 것도 저 일화에서 잘 드러나는군요.

YS와 수령동지 만났다면 뭐... 아주 험악해 졌겠죠. 식량문제가 표면화된 다음에 만났다면 쌀 줄테니 항복하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瑞菜 at 2007/03/25 22:35
아, 그런데 그전 회담 준비하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니까 나름대로 준비 많이 했더군요.
하다 못해 재스츄어 하나까지도 의미를 담아서요.(다만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입니다.)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7/03/27 13:07
역으로 보면 레이건은 참모들의 조언을 잘 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성향이나 노선이 다른 이들을 적절하게 배치 견제시켜 가면서 정책의 향방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했다는 게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곘습니다. 특히 금상 하에서 맹위를 떨쳤던 네오콘 계열이 레이건 시절 활약한 인물들의 연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적어도 레이건 당시에는 그러한 급진주의자 혹은 강경파들을 견제하는 현실주의자, 보수주의자들이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는 데 금상 하에서는 모조리 같은 색으로 칠해졌으니....
실제로 금상 하에서 이루어진 정보 및 대테러 강화 조치들을 보면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 당시 일각에서 제안되었으나 -주로 급진파들에 의하여- 해당 기관 및 현실주의자들의 반대로 유보.취소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테러 선제 공격안이나 국내.외 방첩 통합, 대외 정보 기관의 국내 활동 강화 같은) 물론 이런 안들이 실현될 수 있는 가장 큰 동인은 9.11이라는 충격 때무이지만 같은 동색으로 뭉친 이들이라 비판적 색채를 가진 이들을 배제한 네오콘 주류의 부시 행정부 인적 구성 역시 이런 경향을 가속화시키지 않았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3/28 13:26
하늘이/ 조상님들이 도우사 조국의 국운이 다 하지 않은 탓일 겝니다.
YS는 혹부리 수령이 자기를 두려워해 죽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는 따로 뽑아 포스팅하도록 하지요.

Cato/ 현 국방장관인 Robert Gates의 회고록 From the shadows의 마지막 장을 보면 자기가 모신 대통령들에 대한 인상을 요약한 부분이 있는데, 레이건은 1기 때는 나름 총명했지만 2기가 되면서 자기 같은 부하들의 브리핑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저격도 받았고 나중에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게 되는데, 이미 집권 후반기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친고양이/ 설마요 ^^

玄武/ 과연 "놀음"에 방점이 눈에 선합니다.

도야지/ 개인적인 자질이 국가지도자가 되기에 해로운 방향으로 작용하는 인물이 종종 있죠. 벤치마킹 대상을 YS에서 찾아야 할 정도라면 그야말로 막장 인생 아닐까요.

고르바초프야 그 속기철 없어도 그 전과 다름없이 일관성있는 주장을 펼 만큼 예습을 잘 해온 선수인데 뭘 걱정하겠습니까? 경험적으로 봐도 역대 소련공산당 서기장들은 카운터파트인 미국 대통령들에 비해 적어도 안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들러갑니다/ 방귀뀐 놈이 성내지 않는 것은 정말 귀중한 자질인 것 같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관료들은 레이건이 영리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감잡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많이들 하는 듯 합니다(하지만 히틀러에 대한 회고에도 그런 이야기는 많았던 듯한...)

gforce/ 아 그런 겁니까?

joyce/ 그런 자질은 정말 귀중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입력은 직접 한 게 맞습니다. 저는 인용문을 필요할 때 빨리 따서 쓰기 위해 미리 정리해 놓는 편인데, 조금 해놓은 것이 있어서 (맥락을 훼손하지 않도록) 중간에 빠진 것만 좀 메워 넣은 것입니다.
영문 텍스트의 경우엔 타이핑보다도 OCR을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한글은 아직도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marlowe/ 그걸 가리켜 Voodoo economics란 말을 만든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조지 부시라고 하죠.

펄/ 평생을 영리한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것이 야당 국회의원을 할 때까지는 강점이었는데, 행정부의 수장이 되니 그 아웃사이더 체질이 큰 부채로 작용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체질적으로 조직을 부려서 일을 하는 데 잘 안맞는 것 같습니다.

행인1/ 사실 고르바초프는 정통 공산당원이면서도 우리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 잘 맞질 않는 부분이 많죠.

하얀까마귀/ 레이몬드 가소프도 정책의 일관성은 소련이 미국보다 훨 나았다고 평가하더군요.
YS가 수령을 만나지 않은 것은 다시 말하지만 조국의 홍복입니다.

라피에사쥬/ 당시 후보위원들 중에는 알리예프라든가 나중에 한자리 하시는 분들이 보이죠.

tloen/ 그런 면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설계자들은 최선을 추구하기 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데 역점을 두고 제도를 설계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措大/ 20세기 초반의 미국도 사실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죠. 당내 개혁을 밀어붙였다가 자신이 거세한 중간보스들과 동귀어진한 조지 맥거번 같은 참사도 있고...

瑞菜/ 사람이 원래 좀 그런 속성이 있긴 하지만, 미국 대통령들은 그 위상에 비해 외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주지사 출신들이 강세여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umberto/ 과연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김일성 사망에 대한 YS의 생각에는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신조가 절절히 배어납니다.

paro1923/ 귀만 좀 트여 있다면 해볼만한 상사라고 생각합니다.

H-Modeler/ 레이건은 케네디의 공화당 판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돌이 된게 아닐까 합니다. 나쁜 이야기는 거의 다 묻히는 걸 보면...

지나가던이/ 사실 박정희도 김일성에게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하니까, YS야 뭐...

瑞菜/ 정상회담이란 게 특히 그런 부분이 강조되는 면이 있죠. 되든 안되든 폼으로라도 투입하는 경우가 많은 외무장관과는 달리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정상회담은 잡지도 않는 게 기본이니.

腦香怪年/ 포드, 레이건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 기용되어도 이렇게 일이 이상하게 흐를 수 있는지가 향후 역사가들의 화두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또한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추측했던 부시 행정부의 행보가 처참하게 틀린 원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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