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감상은 상당한 자의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때는
현대 중동고대 그리스. 이곳은 자유와 이성, 용맹과 형제애 같은
덕성을 고루 갖춘 나라 스파르타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세계를 제패한
이교도 야만인들의 대 제국
미국페르시아의 황제는 사신을 보내어 강대한 무력으로 자유인들을 위협하며 땅과
검은 황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어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이 나라의 덕성을 대표하는 용감한 왕 레오니다스
(오사마 빈 라덴 분)는 이러한 불의에 맞서고자 하지만, 외세가 제공하는 재물과 향응에 녹아난
부패한 아랍 통치자의원들과
어용성직자썩은 신관들은 용기있는 왕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린다.
왕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자신의 손에 있는
전 재산을 털어한 줌의
알 카이다친위대만 이끈 채, 제국과 맞서 싸우기 위해 결전장
아프간/이라크테르모필라이로 향한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동맹국 군대들은 모두 제국의 압도적인 군세와 그들이 자랑하는
첨단무기와 미군불사신의 전사들에 대해 겁먹고 몇 번이고 싸움을 포기할까 망설이지만,
오사마레오니다스 왕은 우리는
무슬림그리스의 덕성을 대표하는 진짜
무자헤딘전사들이라고 강조하며 이들을 이끈다.
교활한 적들은 부귀 영화를 약속하며 이들 전사들을 회유하려고 갖은 수단을 쓰지만. 덕성과 신념으로 단련된 진짜 전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장에서 용감히 싸워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만, 결국 적의 압도적인 무력과 내부의 배신자들에 의해 하나 하나 쓰러지게 된다. 그러나
극소수가 살아남아 장렬히 싸우다 산화한
알 카이다300 전사들의 최후를 고국의 대중들에게 전하고, 드디어 분기탱천한
13억 무슬림그리스 시민대중들은 군대를 일으켜 제국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기게
될 것이다된다.
개인적인 감상나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을 거의 갖지 못한 채, 대규모 전투 신이 등장하는 영화의 최신 트렌드를 쫓는다는 정도의 안일한 감각을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와
지독히도 흡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수 년간 내가 익히 보고 들어 왔던 오사마 빈 라덴의 주장이었다.
일단 그런 관점을 택하고 나자, 이 영화가 오사마의 메시지를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는지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되었다. 다 보고 난 후의 내 결론은 현재 한국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영상물 중에서는 오사마와 그의 조직 알 카이다의 입장을 가장 잘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몇몇 감상평들을 둘러보고 나니 오리엔트/아시아인들을 비하한 서구우월주의의 상징이라는 논점에 대해 찬반론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아마 그들의 논점이 옳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을 보인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나도 이 영화를 나처럼 오사마와 그의 형제단 친구들의 영웅적 투쟁 이야기에 빗대어 보는 사람은 아주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사마의 메시지가 이슬람권 바깥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사마와 직접 맞서 싸우고 있는 미국서도 그런데 한국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은 대립하는 두 진영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진영의 이름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즉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이야기는 그리스 대 페르시아, 서구 문명 대 오리엔트 문명의 대결이 된다. 하지만 나는 상궤를 상당히 벗어난 사람이어서 진영의 이름은 거의 신경쓰지 않는 반면, 대립하는 진영의 구도나 투쟁전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그러한 내 관점은
옛날의 내 글 공개에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어떠했는가?
이 영화가 그리는 대립 구도는 힘으로 약소국을 핍박하는 대제국과 그에 맞서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선 약소국의 항쟁이자, 퇴폐와 불의를 상징하는 외세에 맞서 소박한 덕성(자유, 용기, 형제애 등)을 상징하는 현지인들의 투쟁이다.
그것이 바로 오사마가 지난 십수 년 동안 변함없이 무슬림 형제들에게 호소해온 메시지이며, 그런 메시지가 지금도 먹히고 있기 때문에 알 카이다를 필두로 한 무슬림 투쟁 세력들이 죽여도 죽여도 새 대원을 충원하며 건재하는 것이다.
오사마는 절대로 미국이나 유럽을 정복해 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는 정복전쟁을 하자고 요구하지 않는다. 보통 무슬림이라면 그런 모험적 정복전쟁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처럼 강한 적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점도 잘 안다.
오사마의 천재성은
적들이 벌써 우리 집앞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에,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하는 신과 신앙, 삶의 방식이 영원히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왜 알 카이다를 도와 싸워야 하는가? 아랍 무슬림 중에 현대의 십자군에 맞설 강직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를 따르면 된다. 그러나 당신도 알고 나도 알지만 정권유지에 혈안이 된 아랍의 썩은 지도자들은 이미 십자군에 매수되었다. 그러니 신앙과 덕성을 수호하기 위해 미력하나마 알 카이다를 도와 싸우든가, 적에게 무릎을 꿇고 배교자가 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라는 것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사실 오사마가 유일하게 인정하고 충성을 맹세한 강직한 무슬림 지도자가 있다. 그가 바로 탈리반의 총수 물라 오마르이다. 오마르는 10여년을 노력해 간신히 세운 자기 정권이 무너질 지언정 오사마를 팔지 않았다. 오사마나 오마르의 삶은
돈지랄의 극치를 달리는 사우디나 쿠웨이트, 카타르의 왕족들과 좋은 대비를 보여준다)
또한 오사마는 미국에 상대가 되겠느냐는 회의적 의견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답한다. 그는 사실 알 카이다
홀로는 미국을 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알 카이다는
혁명의 전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대중이 같이 들고 일어나 주어야만 십자군들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알 카이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한번 보라고 꼭 권할 생각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한줄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