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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feri씨에 답하다
며칠 전에 올렸던 내 글 반대쪽에서 받은 논평에 대해 teferi씨가 제기한 반론 sonnet님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이견에 대한 트랙백.

참고로 teferi씨는 내가 "반대쪽에서 받은 논평"에서 언급했었던 모 밀리터리 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수 차례 나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 분이다. 그곳에서 나와 관련된 대표적 포스팅으로는 나를 지목해 "사상검증성 질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올리셨던 다음 글을 들 수 있다.

최근 이글루스 정착 후 이 분의 주요한 활동으로는 내 블로그의 방문객들과 벌인 다음다음 논쟁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황(예를 들어 skepticalleft.com 및 NTDS cafe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으로 보건대 이 분은 나를 찾아 이글루스에 오신 후 내 블로그의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계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들어가면서

이번에 트랙백 온 글을 읽어보고 나서 처음 떠올린 것은 이글루스의 유명 연재물 중 하나인 "사피윳딘의 이집트 체류기"였다. 그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예전에 제가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분이 상당히 유쾌하신 분이시라 서로 몇마디 나누게 되었죠. 뭐, 저도 조금이나마 아랍어를 할 수 있는지라 그 택시 기사분과의 대화는 꽤나 즐거웠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종종 영어도 섞어주셔서 더 쉽게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종교 이야기까지 넘어가더군요. 택시 기사분께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며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당신 종교 뭡니까? 크리스천? 무슬림?"

뭐, 사실 여기서는 어떤 종교든지 대답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무슬림들의 사고 방식에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 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힘드니까요. 그러니까 "크리스천" 이라고 대답하면 "아, 그러십니까?" 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죠. 사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상대가 어떤 종교를 믿는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는 말이죠. 저는 말이죠.

"저 종교 없어요."

라고 말해버렸어요.

택시 기사분의 눈이 바로 동그래지는 것을 보면서 머리 속에 바로 "나는 나는 바보야~~ 나는 나는 바보야~~" 노래가 열심히 흘러가더군요.

우아아아아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슬림들이 종교가 없는 사람을 얼마나 이상하게 보는지 뻔히 잘 알면서 왜!!!!

.....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지만 등에는 식은 땀이 열심히 흐르더군요.

..... 아우우우우.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 거야~~~~.

여기서 잠깐, 물론 무슬림들이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꼬지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특히 이집트 같은 경우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까 그런 걸로 해꼬지할 이유는 전혀 없죠.

그런데, 왜 제가 등에 식은 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냐 하면.....

이제 제가 왜 종교를 가지지 않았는지를 아랍어 내지는 영어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자초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미쳤지.

..... 내가 미친 것이야.

.....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후회하고 후회한들 어찌 하리. 다 내가 자초한 일인 것을..... (...........)

그리고, 당연히 예상대로 택시 기사분께서는.....

"어째서 종교를 가지지 않은 거죠?"

......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

...... 후덜덜덜덜덜덜..... (.............)

...... 아우아우아우아우..... (...............)

...... 내가 미친 것이야..... (.............)

사피윳딘, 사피윳딘의 이집트 체류기 - 당신은 왜 종교가 없어?, 2006년 9월 20일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 보니 사피윳딘씨께서 얼마나 난감해 했을지 새삼 이해가 간다.

...... 아우아우아우아우..... (...............)

...... 본론으로 넘어가자.


사례 연구(1): 프랑스 혁명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프랑스의 공화제의 사례와 비슷한 것인데,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왕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과 타협했고, 프랑스의 공화제는 그런 현실을 부정했습니다.sonnet님은 프랑스혁명을 현실을 도외시한 미친 짓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죠. 프랑스대혁명에서 있었던 혼란과 내전과 대외전쟁은 왕과 타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미친 짓이 없었다면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정치적 평등의 개념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왕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과 모든 나라가 타협했다면 왕의 역린, 즉 일반 시민보다 더 우월한 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나라도 부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저는 민주주의의 시작이 된 영국의 혁명보다 프랑스의 혁명을 더 좋게 생각합니다. (teferi)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정치적 평등의 개념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일반 시민보다 더 우월한 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나라도 부정할 수 없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위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혁명(1789년)이 발발하기 이미 15년 전에, 미국독립혁명이 일어나 1775년부터 영국군과 싸우기 시작하여 1783년에는 끝이 났다. 미국독립전쟁이 시작되던 당시 아메리카 식민지인들 중 약 1/3 정도는 본국정부를 지지하는 왕당파로 추산된다.
미국독립과 함께 세워진 정부는 새로운 왕조를 열었던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들은 왕 대신 선출제 대통령을 갖는 정치체제, 즉 공화정을 채택하였다.

공화정이 왕정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런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있었다. 많은 계몽사상가들이 그런 입장을 지지하였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한 사람들은 이미 그런 지식인들의 연구내용을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그 내용을 참조하여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화정을 세운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어떤 것은 혁명에 의한 것이고 또 어떤 것은 패전의 결과이지만 말이다. 심지어는 teferi씨가 현실과 타협한 불완전한 혁명이라고 공격한 입헌군주제 국가인 영국에서조차 식민지를 독립시켜 주면서 공화정을 세우고 나간 사례들이 발견된다. (비슷한 사례는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왕정은 왕당과 싸우는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을 물심 양면으로 적극 후원하였다. 미국독립전쟁을 후원하는데 들어간 자금이 프랑스혁명의 한 원인이 된 재정난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지나고나서 보면 경제적으로 부르봉 왕정을 취약하게 만들고, 정치적으로는 공화정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게 된 것으로 밝혀진 미국독립전쟁에의 개입은 경쟁국 영국을 약화시키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세력균형정치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이다.


자 이제 teferi씨의 결론이었던 "저는 민주주의의 시작이 된 영국의 혁명보다 프랑스의 혁명을 더 좋게 생각합니다"를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역사를 평하는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을 논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teferi씨나 우리는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는 후세 사람들이다. 그러니 18세기 혁명과 전쟁의 난리통에서 피해는 입은 적이 없지만, 거기서 성장한 민주주의의 혜택과 교훈은 대가없이 누릴 수 있다. 즉 값비싼 희생이 필요했던 결과물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자신도 무임승차를 하게 된 데 대해 속편하게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정책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정치와 정책은 대개 현재의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역사적 사건을 평가할 때와 같은 기준으로 다룰 수는 없다. 우리가 죽거나 다치거나 재산을 잃고 난 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무임승차할 것을 꿈꾸며 희생을 무릅쓰라고 말한다면 흔쾌히 응할 사람이 우리 중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장기적인 전망에 대한 예상일수록 더 틀리기 쉽다는 단순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문제는 더 난감해진다. 미래를 보고 희생하자고 해서 믿고 따랐는데, 미래도 안 좋으면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재를 기준으로 영국 국민이 프랑스 국민보다 덜 민주적이고 정치적 자유가 적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민주정으로 가기 위한 희생은 프랑스 쪽이 컸다고 한다면, 우리는 정책을 논할 때 마땅히 다음과 같은 점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 역사적 사건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보다 적은 희생으로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


사례 연구(2): 덩 샤오핑 노선

김대중도, sonnet님이 예로 드신 모택동도 전부 그런 "왕"이라고 봅니다. 현실에서 그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의 목을 짤라 버리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등소평은 모택동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 뜻을 교묘히 뒤틀어서 그 당대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하지만 모택동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도 중국의 미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모택동 사상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제 2의 문화대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결국 등소평이 한 일이란 것은 모택동이라는 모래토대위에 화려한 집을 지은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충격이 오면 중국이라는 집은 무너질 것입니다. (teferi)

아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모택동 사상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제 2의 문화대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 ... 결국 ... 모래토대위에 화려한 집을 지은 것 ... 조금이라도 충격이 오면 중국이라는 집은 무너질 것"이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이 주장은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공산주의자들의 논변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한국의 소위 우익은 제2세계의 논리를 정말 착실하게 학습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나는 이 점이 너무나 궁금해서 과거 실험까지 해 본 적이 있을 정도다. 물론 결과는 대박이었다.

두 번째 사례는 앞선 논의에 teferi씨 본인이 들고 나왔던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란 결국 왕이라는 "모래토대 위에 화려한 집을 지은 것밖에 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충격이 오면 ... 집은 무너질 것"인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teferi씨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프랑스혁명에 비해 영국혁명이 좋지 않은 이유로 그런 이야길 꺼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존 체제를 산산조각내지 않고 적당히 필요한 부분을 손보면서 개선해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공산정권이 성공적으로 국제시장경제에 합류한 것도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례는 20세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체제 대결에서 자본주의를 구한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적인 개선의 결과였다는 점일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광풍이 세계 경제를 강타한 후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파국이 멀지 않았다며 흐뭇해 했고, 자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자본주의 세계의 정통 경제학자들이 알고 있던 기존의 이론이나 정책수단 대부분은 대공황에 지극히 무력하였다. 이때 정통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약간 벗어난 케인즈주의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대공황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비교적 단순한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신호혼선의 문제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고전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고집하던 작은 정부의 이상을 폐기처분하고, 가끔 경제가 비틀거리거나 엔진이 꺼질 때 강력한 정책수단을 갖고 개입해 시동을 다시 거는 역할을 정부(와 중앙은행)에 맡기도록 권했다.

평상시라면 이런 일탈적인 소수파의 정책이 채택되기란 어려웠겠지만, 대공황의 고통은 너무나도 깊고 길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 저것 시행착오를 통해서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한 처방들을 시험하면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여기서 쌓인 경험과 고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땜질식 수정이 모여 완성된 것이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있는 혼합경제모델이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보여준 강점은 그 잡탕성에 있었다. 잘 굴러가면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이 주효했던 것이다. 사실 케인스주의자들이 급조한 이론은 경제학 이론을 반토막내어 거시경제와 미시경제는 서로 다른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처럼 설명함으로서 이론의 아름다운 통일성을 파괴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추한 균열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지만, 이 이론이 난잡하긴해도 경험상 옛날 이론보다는 잘 맞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제2세계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개혁가가 기존 체제를 과감하게 뒤흔들었다가 망한 사례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소련의 붕괴이다. 젊고 개혁적이었던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자기가 물려받은 나라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문제를 치료하고자 했다. 불행하게도 사태에 대한 그의 진단은 옳았지만, 그의 처방은 틀린 것이었다.

소련은 다루기 힘든 넓은 영토와 다민족을 품고 있는 국가로 국가가 해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늘 강력한 관료기구와 무력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탓이 아니었다.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 제국부터가 제국을 지키기 위해 똑같은 수단에 의존했으며, 부활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소련의 후계자 러시아 연방 또한 같은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이 점을 아주 잘 드러내 준다.

고르바초프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을 밀어붙이며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관료기구를 공격했다. 즉 나무 위에 올라가 자기가 올라탄 나무를 도끼로 찍은 격이었다. 소련은 결국 15개의 국가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고르바초프의 급진 개혁은 소련 경제를 확실한 파탄으로 빠트렸으며 원점으로 돌아오는데만도 거의 10년이 걸렸다. 그것은 고르바초프의 오판이 없었다면 실현될 수 없는 대참사였다.

물론 내 말은 중국이 앞으로도 영원히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도 앞으로 종종 시련을 겪을 것이고, 운이 없거나 미래의 정책결정자들이 오판을 하면 파멸적인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며, 설령 그런 비극적인 일이 언젠가 일어난다 해도 모든 잘못을 죽은지 오래된 덩 샤오핑에게 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비슷한 체제를 물려받았던 덩 샤오핑과 고르바초프의 명암은 누가 옳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례 연구(3): 김대중의 지역등권론

김대중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김대중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김대중의 지역등권론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등권론의 전제가 되는 모든 지역이 똑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사고는 대한민국에 공산주의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재앙을 부를 것입니다. 비록 특정한 지역이 발전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모든 지역이 똑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투자자본의 회수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 이런 원인을 모두 무시하고 아무 수익도 없는 곳에 다른 지역과 똑같은 발전을 해야 한다며 들입다 투자를 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가치도 없는 노동을 하고서 똑같은 대가를 받는 공산주의가 망했듯이 대한민국도 투자가 필요한 곳은 투자가 되지 않고 투자가 필요없는 곳은 투자가 되는 현상이 벌어져서 망할 겁니다. (teferi)

아이구...
김대중의 선거전략이었던 지역등권론이 공산주의와 같은 재앙을 부르게 될까? 파리에 날개가 있다고 그게 새가 될까? 김대중 본인의 집권기간 동안 서울과 각 지방 사이에 의미있는 경제력 균형의 변화가 있기라도 했는가? 김대중이 더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현재, 그 선거전략이 그렇게 큰 영향력이 있기나 한가?

무슨 의도를 갖고 그런 억지스러운 과장을 하는가?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지방의 영리한 학생들은 하나같이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고, 그들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면 서울에 남아서 취직하길 원한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령 같은 월급이나 조금 더 월급을 준다 하더라도 지방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길 원치 않는 사람이 압도적이다.

중앙에 몰려있는 대학을 지방으로 보내겠다는 제2캠퍼스 계획이 결국 어떻게 좌초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정책은 전두환같이 강력한 힘을 가졌던 대통령도 해내기 힘든 일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하물며 요즘의 허약한 민선 대통령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방 출신이고 부모님까지는 지방에 계시지만, 수도권 사회에 흡수되어 수십년간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생활기반을 굳힌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지방등권을 위해 헌신할까?

지방등권론이나 핫바지론 같은 것은 이런 압도적인 서울의 지배력에 비하면 아주 우스운 힘에 불과하다. 사실 중앙정계가 그 구도를 뒤집을 힘이 없다면 입바른 말이라도 지방을 잊지는 않았다는 신호를 주기적으로 보내주는게 뭐가 나쁜가?


점검: 무엇을 위한 논의인가?

이와같이 위 주장의 논거 세 가지에 하자가 있음을 밝혔기 때문에 뒤따르는 teferi씨의 결론 또한 자동적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그 이전의 토론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섯가지 논거가 모두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논박해도 자신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논변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결론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그 이유는 글에 씌여진 것과 같은 논거와 분석을 통해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닌 데 있다.

결론은 원래 그가 갖고 있던 '가치, '믿음', '신조'와 관련되어 생겨난 것이고, 그가 내놓은 논거는 그 자신의 가치, 믿음, 신조가 낳은 결론을 보호하기 위해 사후에 동원된 포장재일 수 있는 것이다.

teferi씨는 나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이견이 있다고 제목에서 밝혔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위한 논의인가? 합리적인 토론을 하되 남을 설득할 가능성 만큼 내가 설득당할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인가? 아니면 불리한 모든 반론에 대해선 귀를 막으면서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려 하는 것인가?


끝으로 teferi씨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간략한 답변

논증이나 근거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토론할 수 있지만, 결론이나 신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사실 토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나열된 논거에 집중해 길게 분석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는 관심이 없고 결론만 관심이 있다면 사실 결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하는 그 답변이다.

북핵문제에서 이견이 있는 것도 그러한 가치, 명분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sonnet님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가치판단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현실적 힘의 관계를 지적하고 그로부터 대한민국이 얻어야 하는 이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주권을 가진 국민입니다. sonnet님은 가치판단으로 벌어지는 지금의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면서 누가 정권을 잡든지 간에 정치와 무관한 전문 관료집단이 sonnet님처럼 현실적인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작전통제권 반환문제도 현실적이냐 아니냐가 이슈가 아니지 않습니까? sonnet님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이런 현실에서 sonnet님이 아무리 현실을 외쳐봐도 그게 현실의 정책에 반영이 안되고 있지 않습니까? sonnet님 역시 대북정책이 실패하면 손해를 보는 이 땅의 국민입니다. 남의 얘기를 하듯이 들어주면 좋고 안들어주면 할 수 없다고 할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sonnet님이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타당하다의 판단을 내리는 것도 좋지만 옳다, 옳지 않다고 규정을 짓고 그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만 그 정책이 현실에서 실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teferi)

이것은 역시 teferi씨의 말투를 빌려 설명하는 것이 더 간단할 듯 싶다.

1) teferi씨처럼 쓸데없는 명분론을 정책논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따라서 옳지 않다라고 결론내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다.
2) 나 또한 지적하신대로 대북정책의 실패로 피해를 보고 싶지 않으며, 특히 teferi씨가 주장한 것 같은 대북예방전쟁론 같은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에 그 어리석음을 반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정책이 알아서 현실주의 노선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는 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갖고 있지만, 현실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길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죠.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책임은 어느 나라에게 있습니까? 미국의 주장이 옳습니까, 북한의 주장이 옳습니까?

sonnet님은 그런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teferi)

정확히 보신 것 같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건설적인 전략을 짜는데 전적으로 해롭다고 생각한다. 나는 teferi씨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보고 북한의 철저한 양보가 없는 어설픈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teferi)

최근 아주 어설픈 합의를 했는데 못보셨는 모양이다. 그 사건은 현실을 무시한 가치지향 이데올로그들의 향연이 어떤 불리한 사건들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by sonnet | 2007/03/05 13:00 | flame!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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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몽상을 담아놓은 곳 at 2007/03/07 19:06

제목 : 답변에 감사드리며 남는 의문점을 적어봅니다.
teferi씨에 답하다 1. 프랑스 혁명과 영국 혁명의 비교는 현실적 정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예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집권과정과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히틀러도 독일에서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당을 군대로 토벌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으려는 현실적인 필요에서 독일인은 히틀러에 권력을 위임하였는데, 그 결과 독일은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겪어......more

Tracked from 愚公移山 at 2007/03/09 00:29

제목 : [금주의 이글루스 포스팅 트랙백] 3월 1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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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아이군님의 이글루 : 진보 진.. at 2010/01/22 18:03

... 박근혜가 야당처럼 보이는 이유이 글에 대한 반론은 사실 http://sonnet.egloos.com/2952424 http://sonnet.egloos.com/3030707이것과 거의 일치 합니다. 노정태 님이 원칙 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의 상당수는 사실 선전선동에 가깝습니다. 가치 도 사실은 비슷하죠. 가치를 지켜야 한다 ... more

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03/05 13:26
정말로 길게도 하셨습니다.-_-;;

저는 현실주의 노선을 꼭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비용상 영국의 노선을 따르는게 현명하죠. 단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프랑스처럼 할수도 있다, 겠구요. OTL;;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7/03/05 14:02
전에 예고하시어 기대를 모았던 "충격! sonnet 사상검증(?)편"이 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인 겁니다. 빨리 방영을...(탕~!!!)
Commented at 2007/03/05 14: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3/05 15:30
하늘이//그 사상검증편 이거 아닐까요?
http://sonnet.egloos.com/3026982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3/05 15:45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이어져 온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 및 정치체제의 변화를 보다보면 역시 짬밥은 공으로 먹는 게 아니구나 라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3/05 16:34
그나저나 teferi님은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시다가 다음 문단에서는 돌연 효율성을 들먹이시며 엄청난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옹호하고 계시군요. 그거 어떻게 민주주의라는건지... 혹 "한국식 민주주의"를 말씀하신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보니 최장집 교수가 최근에 지적한 사례가 바로 이런 사례가 아닐까 하군요.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으로 한정시키고 그밖의 영역에서는 계속 예전의 노선을 고수하는 수법.)

그나저나 "민주주의"의 이름의로 예방전쟁을 부르짖는건 또 무슨 센스이신지....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새 역사교과서를 쓰는 일본인들이 자기들을 '자유주의 사관' 어쩌고 간판을 내건게 떠오르는군요.)
Commented by 페페 at 2007/03/05 17:26
원래 이런건 당사자보다 관객들만 신경쓰셔도 되는 법인데 너무 공을 들이시는거 같은..^^;


아무튼 객체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해석을 끼워 맞추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안습일 뿐이죠.

해석의 포지션을 달리함으로써 객체에 다가서는게 현실논리적이라고 하면..
객체 (적과 아군)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수단을 선택하는건 정치적이죠.

정치적 입장을 지닌 사람에게 논리와 그에 따른 진실은 악세사리 일 뿐이죠 뭐..

보통 정치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지금 논쟁하고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이유들이 이미 있게 마련이거든요. 이미 적은 분명한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이유도 없죠.

제가 teferi씨에게 감탄하는 것은 이동네가 저런 정신나간 소리를 해도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딴건 없군요.

1~200만에 달하는 서울시민을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갭을 메우기 위한 골자재 정도로 여기는 항목에서 저는 아스트랄이 극에 이르고 놀라움과 당혹스런 마음에 아무 생각이 안들던데 말입니다.

전 먼슬리 리뷰 인용구 하나 따는 것도 신경이 곤두서고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예민한 타입이라 아무튼 저에게는 전혀 없는 것을 가지신 분이라서 그건 조금 부러웠는지도...-_-;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7/03/05 18:00
미친 고양이님/ 그걸론 약합니다, 약해요...^^;;
Commented at 2007/03/05 18: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3/05 21: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07/03/05 22:41
애시당초 미국이 북한에게 유화조로 나가는게 한국의 훼방질 때문이라고 주장하시는 어이없는 분이신데 말이죠.
Commented by 카린트세이 at 2007/03/06 14:23
성제님의 사상검증(!) 2탄인건가요... 아니 http://sonnet.egloos.com/3026982게 있으니 3편인가....

뭐... 흔히 사람들이 보는건 '내용' 보다는 '포장' 이지 않습네까... 선거때 유권자들의 행동처럼 말이죠... 그것까지라면야 별 일이 없지만 이건 포장이건 내용이건 전부 에러이니...

에르네스토 게바라도 불가능한 꿈을 가지되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라고 했는데... 현실은 어디간지 없고 꿈 - 망상 - 이야기만 하면 별로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은 잘 없지 말입니다... 덕후들의 뇌내망상폭주에 관심있는 사람이 별로 없듯 말이죠....
Commented by joyce at 2007/03/06 20:21
고생하셨습니다.
인터넷은 힘드네요.
그래도 저로서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3/07 18:40
기린아/ 사실 "니마즐"해도 되는 문제인데 하다보니 짧게 되질 않네요.
영국혁명이든 프랑스혁명이든 무슨 그랜드 플랜에 따라서 한 것은 아니고, 사실상 근시안적인 지도자들이 당시 상황에 맞춰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니 그렇게 되었더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야 후세 사람이니까 전체를 조망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지만요.

하늘이/ 상황을 보니 결국 하긴 해야 될지도요. 머 안하려던 건 아닌데, 악재가 겹치다 보니 늦어졌네요.

비공개1/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들러갑니다/ 확실히 삽질도 많지만, 남은 경험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행인1/ 사실 그 누구도 민주주의가 나쁘다고까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런 문제는 논리의 세부를 봐야지 제목만 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의 입 대신 그의 손을 보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페페/ 사실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정치적 취향을 옹호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활용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가 봐도 뻔한 걸 "내가 하는 건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명분이다아!"라고 하면서 저한테 부딪혀 온다면 서로 손에 든 패를 까 보아야지요. 과연 누구의 패가 그럴 듯 한지.

비공개2/ 말씀 감사합니다. 이런 문제의 귀찮은 점은 "자명하다"고 생각해서 놔두면 "논쟁을 피하고 꼬리를 말았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하는 수 없지요. 처음부터 조용히 살지 못한 저의 탓도 있으니 말입니다.

비공개3/ 흑...

shaind/ 그렇게 볼 근거를 한번 들어 주시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미국측 관리의 발언이라든가...

카린트세이/ 빈 수레라 화물검사를 해 봐야...

joyce/ 말씀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가치가 있었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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