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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대학의 세 사람
대총통의 아들 장웨이궈가 독일군 교육을 받고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 콘돌 군단의 일원으로 싸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떠올린 것인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총통의 후계자 장징궈는 소련에 가서 속성 공산당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 때의 동창생들의 면면이 상당히 재미있다.

새로 출범한 소련 정부는 1921년 6월에 '동방 노동자 공산주의 대학' 또는 줄여서 '동방대학'을 모스크바에 창설했다. 이는 동부의 소수민족 거주지역을 통제할 관리와 간부를 양성하는 당 학교였으며 소수민족담당 차관이 이 대학의 총장을 겸임했다.

1922년부터 소련 공산 혁명이 국가 방어에서 점차 국제적 공격으로 전환되면서 소련에서의 동방 개념도 어느 정도 확대되었고, 동방대학도 공식적으로 소련 정부가 아닌 코민테른의 감독 하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그 목적도 소련 소수 민족의 당 간부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당 간부까지 훈련시켜 그들 나라의 공산주의 혁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처럼 사회주의 건설에 봉사하는 러시아 동부 소수 민족을 위해 공산주의 간부를 양성하고, 아울러 세계 혁명에 봉사하는 동아시아의 식민 또는 반식민국가들을 위해 공산주의 간부를 양성한다는 이중적 목표를 설정한 이는 바로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동방대학은 보통 교육 기관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기준은 러시아나 기타 공산주의 기구로부터 받은 추천서였으며, 교과목이 아니라 출신 지역에 따라 학과를 나누었다. 사실 학과도 단 두 개 뿐이었다. 소련 동부지역 및 공화국 출신 학생들로 구성된 '내국과'와 십여 개 아시아 국가로부터 온 학생들의 '외국과'가 있었으며, 외국과에서는 일본, 이란, 터키, 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온 학생들에게 맞는 과목을 가르쳤다.

1983년 9월 14일, 군벌 펑위샹(馮玉祥)의 탄생 100주년 축하연에서 덩 [샤오핑]은 펑의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련 동방대학에서 [펑위샹의 딸] 펑포녕(馮弗能)과 나는 같은 반 친구였소. 그 아가씨가 열다섯 아니면 열여섯으로 우리 반에서 가장 어렸고, 그 다음 어린 친구가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였지."

Yang, Benjamin., DENG: A Political Biography, M.E. Sharpe, 1997
(권기대 역, 『덩샤오핑 평전』, 황금가지, 2004, pp.80~83)

모스크바 동방대학 출신의 한국인은 누구였을지 상당히 궁금하다.
by sonnet | 2007/02/22 10:22 | 정치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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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7/02/22 10:50
장총통 아들과 미래의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 동문이었다니....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7/02/22 12:39
장징궈는 단순한 장총통 아들이 아니라 1978년부터 87년까지 대만 총통이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둘 다 국가원수로 지냈어요. -_-;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7/02/22 16:09
장징궈 같은 경우는 저 경험이 있었는 지 몰라도 대만으로 가서 국민당의 조직 체계 및 국내 감시 체계를 재건.확립하는 데 공헌했었죠. 사실 손문이 혁명 시절부터 소련 지원에 힘입어 국민당의 체계나 조직은 상당히 공산주의 식과 유사했고 국공 합작을 거치면서 공산국가식 정치장교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패망 후 대만으로 건너간 이후 군을 비롯한 사회 통제 감시 체계나 당 조직 체계를 세운 건 장징궈의 역할이 큽니다. 특히 "자유세계"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군 내 정전 제도의 재건은 장징궈의 작품이고 정전 계통에서 시작하여 정보 보안 체계를 장악했던 게 장징궈 권력의 기반이 되었지요.

아마도 모스크바에서 배운 게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지 않나 봅니다.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2/22 17:13
사변 때 조선인민군 제6사단장 방호산이 공산당 만주성위의 추천을 받고 들어간 동방대학 출신이었죠. 현리전투교재의 책임(-.-)때문에 숙청되고 50년대 다시 숙청되었다고 들었는데...알고보면 북한도 우리처럼 (중국관련)항일유격대 출신자들이 사변 이전이나 이후에 걸쳐 상당히 많이 사상문제로 숙청되었다고 하더군요..
ps.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동방대학 출신이라는데 당시 박사학위 논문 덕분에 이스라엘에 찍혔다더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2/22 18:09
아들을 독일에 보내면 전차지휘관이 되어 돌아오고 소비에트에 보내면 보안 전문가 + 정치가가 되어 돌아오는군요. 참고해야겠습니다[펑]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7/02/22 21:42
장웨이궈가 장경국인가요? 사진으로 독일군복을 입고있는 장제스의 아들이라는 장경국의 사진을 본적이 있어서요.
그나저나 라피에사쥬님의 댓글이 인상깊네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7/02/22 23:06
아텐보로/장웨이궈는 "장위국"이던데요. 장경국은 '장징궈'라고 하는 것 같던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7/02/22 23:09
행인1, 윤민혁/ 그렇지요. 생각보다 좁은 바닥입니다.

腦香怪年/ 어떤 의미에선 이세민이나 이방원 같은 측면도 있겠구만요. 하여간 그 이른 시기부터 이동휘 같은 인물에게도 露弗을 찔러주는 걸 보면 레닌 동무는 정말 대단한 동무였던 것 같습니다.

들러갑니다/ 그렇군요. 방호산이 동방대학 출신이란 것은 저는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라피에사쥬/ 그럼 상국에 다녀오면 뭐가 되는 것입네까?

아텐보로/ 장위국(蔣緯國)이지요.
Commented by CAL50 at 2007/02/23 01:09
동방대학에는 당시 5인의 한국인이 유학중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들은 자신들의 출신대학 이름을 딴 그룹을 만들어 연예계에 투신했다는 전설.... 이 없으려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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