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내가 한 때 반공논객으로 피튀기게 싸우던 시절에 쓴 글의 일부이다. 고장난 노트북의 하드를 정리하다가 찾아냈기에 예전의 나란 사람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밝혀 두는 차원에서 공개해 둔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하긴 한 것 같다.
●●●씨의 나중의 문장은 공산주의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도 남침의 심각한 위험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공산주의의 본질이 변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자유민주주의자들로서는 뽀글이와 북괴지배집단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동기에서 “햇볓정책”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하는 집권좌익집단의 희망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가능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유진영에서 생각하는 것은 북괴집단이 약화되긴 했지만 그 침략본성이 변하지 않아 자기 정권을 위해 가능할 때는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키려 할 터인데, 어떤 특별한 경우, 즉 북괴의 감언이설에 흔들리지 않는 건전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확고한 한미동맹의 두 기둥이 건재하는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북괴의 전면적인 남침은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관해서는 집권좌익들과 의견이 일치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혹은 NLL 일원에서의 국지적 도발이나 KAL기 폭파사건 같은 테러책동은 아직도 가능하며, 폭정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해방하기 위해서라도 북괴정권 붕괴운동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폭정은 북괴 정권의 붕괴를 적극 조장함으로서만 종식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만약 또 하나의 전쟁을 “두려워”할 경우, “북괴에게 평화를 구걸”할 경우, 아니면 북괴정권 붕괴운동을 위해 뜻있는 이들의 힘을 모으는 대신 침략과 폭정으로 대표되는 북괴의 본질을 숨기거나 잘못된 환상을 전파하는 경우에는 북녘 동포들의 해방을 도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현 집권층의 정책이 “멍텅구리 같은 좌익의 세 가지 양보”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 전쟁의 위험을 너무 과장함으로서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마비시키거나 아니면 적어도 너무 조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둘째 김정일과 같은 “빨갱이 두목”들과의 평화공존에 대한 현실적인 경향이 대두하는 것에 환상을 갖게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대한민국 국민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퍼주기”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함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을 약화시키고, 공산주의 침략을 중단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 붕괴운동과 “정의로운 전쟁”을 환영하지 않고 그것을 자제시키려고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원래 다음 논쟁의 일부였다중국 측 견해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나중의(21차 전당대회) 문장은 자본주의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도 세계전쟁의 심각한 위험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국주의의 본질이 변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중국공산당은 미국의 지배집단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동기에서 “평화공존”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하는 흐루시초프의 희망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그러한 가능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 측에서 생각한 것은 제국주의가 약화되긴 했지만 변하지는 않아 자신의 착취대상을 방어하기 위해 가능할 때는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키려 하겠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평화세력”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소련진영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소련과 의견이 일치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은 아직도 가능하고,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식민주의 전쟁은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는데, 식민지에 대한 전쟁은 혁명운동을 적극 지원함으로서만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만약 또 하나의 세계전쟁을 “두려워”할 경우, “제국주의자들에게 평화를 구걸”할 경우, 아니면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위해 각지의 대중들을 동원하는 대신 전쟁을 좋아하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숨기거나 잘못된 환상을 전파하는 경우에는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해 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분석은 흐루시초프의 정책에 대해 “수정주의에 대한 멍텅구리 같은 양보”라는 세 가지 비난을 함축한 것이었는데, 핵전쟁의 위험을 너무 과장함으로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마비시키거나 아니면 적어도 너무 조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아이젠하워와 같은 “제국주의 두목”들의 평화공존에 대한 현실적인 경향이 대두하는 것에 환상을 갖게 함으로써 공산주의 정부와 운동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외교적인 협상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함으로서 제국주의자들을 약화시키고, 제국주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 혁명운동과 “정의로운 전쟁”을 환영하지 않고 그것을 자제시키려고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Hudson. G.F., et el, The Sino-Soviet Dispute: Documented and Analysed, 1961
(김유 역, 『중소분쟁: 자료와 분석』, 인간과 사회, pp.25)
보면 알겠지만 사실 순 뻥이고, 첫번째 글은 두번째 글을 갖다가 명사만 대체하고 너무 티가 나지 않게 조금 고쳐 본 것이다. 몇 년 전에 실험삼아 지금은 없어진 모 게시판에서 가짜 아이디 두개를 만들어 적당히 논쟁을 벌이다가 위 글을 띄웠었는데, 그곳에 있던 소위
한국형 보수 우익들의 열화와 같은 추천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실험 결과를 밝힐 생각이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는 관계로 나중에 글을 지워버리고 잠수를 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유사 이래 논쟁과 비난의 기술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