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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의 보호를 잃어버린 미국의 비극
빈센트 카니스트라로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NSC 정보담당과장을 지내고, 후에 CIA 대테러센터 작전실장을 역임한 전직 정보부원이다. 9/11 직후에 이루어진 그의 인터뷰에는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미국-PLO-히즈불라 사이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건 이야기가 등장한다.

테러리스트에 관해서는 그것[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습니까?

이스라엘에 의한 레바논의 점령은 결국 팔레스타인인들로 하여금 레바논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쫓겨났지요. 그들은 베이루트에 주재하던 미국 외교관 사회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조직 PLO와 그 간부, 병사들은 미국 대사관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PLO와 연락책을 갖고 있었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팔레스타인 세력의 위세가 급격히 감소하고, 그리고 미국이 전함 뉴저지에서 함포를 쏘아대기 시작하자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는 잘 무장되어 있고, 자금도 풍부한데다 무자비한 광신도들이 우르르 튀어나왔습니다. 그들이 히즈불라였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일에 뛰어들게 되었나요?

말씀드리지요. 그것은 커다란 정책적 실수였습니다. 그 전까지 미국은 레바논의 내부 분규에 관해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우리 공무원들, 우리 대사관과 영사관, 그리고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에 있던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편을 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편을 골라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전함을 보내어 힘자랑을 하려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우리가 그렇게 하자 우리는 히즈불라, 이란, 그리고 레바논의 떠오르는 파워브로커였던 시리아의 관점 … 에서 볼 때, 즉각 이스라엘 침략자들과 한패거리로 인식되어 버렸습니다.
일단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적으로 자리매김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자 초강대국을 공격하는 일반적인 방법, 특히 그와 맞먹을 수 있는 군사력을 갖지 않은 나라들이 특히 선호하는 방법들은 대리인을 이용하고, 테러를 이용하고, 초강대국이 맞서기 곤란한 폭력적 수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배운 교훈은... (발췌번역)

[히즈불라의 영적 지도자] 파드랄라에 대한 암살시도는 민간인 80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미국이 지시하거나 미국이 부추겨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계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CIA와 미국 정부가 훈련시키고 지원한 레바논 보안기관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 미국이 레바논 보안기관을 지원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은 그 보안기관과 동일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비난을 받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미국에 대한 다른 테러행위를 불러왔습니다.


아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한 논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히즈불라가 미국대사관과 해병대 막사에 대한 폭탄테러의 배후라는 점, 그리고 히즈불라의 배후에는 아마도 이란과 시리아가 있을 거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레바논에서의 비밀공작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레바논에서 미국인과 미국 정부의 존재의 완전 철수였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히즈불라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인들을 몰아냈습니다. 그것은 이들 폭탄공격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물러났습니다. 거기에는 전함 뉴저지도 없고 미국 대사관도 없으며 해병대 막사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히즈불라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전쟁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졌습니다. 당시에 우리가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철수는 히즈불라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고 있던 목표였고, 그들은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히즈불라가 그 전쟁의 승자였다면, 이란도 승자이고, 시리아도 승자가 되었겠군요. … 우리가 철수하고 히즈불라, 시리아, 이란이 그 전쟁을 이기도록 한 것이 보낸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사건이 준 메시지는 테러리즘은 먹힌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힘의 상징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적용될 경우 미국은 물러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테러는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요즘 한참 유행하는 용어인 비대칭 전쟁의 초기 형태였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 작은 나라가 덜 기술지향적인 힘을 행사하는 개념 말입니다.


레바논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CIA 베이루트 지국장] 윌리엄 버클리 납치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아, 저는 빌 버클리 납치는 우리가 [당시] 실감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CIA국장] 빌 케이시를 크게 흔들어놓았고, 이어 버클리를 되찾아올 방법을 찾아 그를 지구 끝까지 몰아갔습니다.
그는 결국 그 일에 실패했지만, 그 사건은 이란-콘트라 사건을 몰아간 주요한 동기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악마와 거래를 했는데, 그 악마의 이름은 이란이었습니다. 그들은 히즈불라를 후원했고, 빌 버클리의 납치와 결국 그의 살해를 후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빌 버클리 사건의 의도치 않았던 귀결이었습니다.


이 전투를 치러나가는데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정보, 현지의 정보인 것 같습니다. 빌 버클리가 납치당한 사건은 우리와 우리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빌 버클리의 납치는 기본적으로 그 나라에서의 CIA 정보활동을 중단시켰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타격이었습니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배운 것이겠군요. 바라건대 말이죠.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간 테러리스트들이 우리를 상대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테러리스트들이 배운 것은 … 그들이 우리를 충분히 혼내준다면 우리는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그들이 저지른 실수는 뉴욕과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했다는 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도망칠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우리 집입니다. 그들은 본토를 공격해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공격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페르시아 만으로부터 철수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를 혼내주려고 했습니다. 이는 빈 라덴이 무리수를 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저지른 행동 중 가장 큰 실수일 것입니다.


Target AmericaVincent Cannistraro와의 인터뷰, PBS Frontline, 2001년 9월 하순

이 이야기는 당시 사건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손잡고 불쌍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늘 다구리쳐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신기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고: 이 글은 그의 인터뷰 기사를 적당히 부분적으로만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위 링크 참조.
by sonnet | 2007/02/21 14:08 | 정치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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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7/02/21 14:21
상처를 입은 짐승만큼... 할렐루야.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2/21 15:11
쥐도 구석으로 몰아 부치면 무는 법이지요.
Commented by joyce at 2007/02/21 15:15
왜냐면 우리는 도망칠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빨간줄 친)

약간 다른 얘깁니다만... 이걸 보니 어느 이스라엘 온건파 작가가 서방 언론과 했던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아랍인들은 우리에게 <너희는 미국인이니까 이곳을 떠나도 되지 않냐>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갈 곳이 없다.'
Commented by kabbala at 2007/02/21 15:38
역사는 종종 현장에 있던 개인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지요. 개개인의 우발적인 행동의 합을 역사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7/02/21 15:43
9.11을 저지른 것처럼 큰 실수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확인을 해 주는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2/21 17:19
9.11 자체만이 행동의 모든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후에 벌어진 이라크전의 개삽질을 감안하자면 만약 이라크에서 이 상황 그대로 물러나버릴 경우에 미국의 해외정책이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는데 말이지요[..]

(일본처럼 분명하게 때려잡을 정부조직이 있다거나 확실한 총력전체제로 나선다면 모르겠는데 말그대로 상황이 여의치가 않으니 말이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2/21 19:16
한때 PLO가 미국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었다니 중동은 역시 알다가도 모를 곳이군요.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7/02/21 21:10
미국과 PLO의 저런관계는 레바논에서만이었나요?
Commented by 이름없는괴물 at 2007/02/22 02:14
도대체가 저 동네는 뚜껑을 열때마다 전혀 다른 물건들이 튀어나오는군요.
가히 현세의 요지경...;;;
Commented by 瑞菜 at 2007/02/22 11:13
어쩐지 황상이 죽기살기로 중동에 매달리는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미국의 위기의식이라....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7/02/22 11:19
저 레바본에서 PLO와 미국 연락관계에서 진짜 웃지 못할 일은 미국과의 주 연락책이며 미국 외교관에 대한 보호를 사실상 책임졌던 이가 알리 살라메, '뮌헨 학살"의 주모자였다는 점이죠. 바로 모사드가 릴리함메르에서 오인암살했던 삽질을 벌였던 원래 목표물이었죠. 팔레스타인 측의 주장을 알리고 뮌헨 작전에서는 기껐해야 중간 단계의 협력자에 불과했던 주바이다 같은 이는 바로 작전이 시행되자 마자 제거되었지만 정작 핵심 주동자인 알리 살라메는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레바논에서 당시 미국인 보호에 했던 역할 떄문에 미국의 입장 때문에 모사드는 손을 못 댔었죠. (참 미국이 뮌헨 학살 주동자의 보호막이 된 셈이니..)
전 CIA 암만 지국장이었던 찰스 워터먼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이 기묘한 협력관계를 이어가면서 살라메를 자신들의 자산으로 포섭하려는 생각도 했었고 몇 번 시도도 했었지만 버번히 거부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레바논 내전의 격화로 미국인들이 철수하고 , 헤즈볼라가 중심이 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거리가 멀어지자 그 동안 기다라고 있던 모사드가 드디어 손을 써서 그를 제거했었죠.

파드랄라 제거 미수 건도 파고 들면 좀 여러 가지 설이 있더군요.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2/22 17:08
텍사스 카우보이이신 황상이 너무나 순수하신 탓인게죠. 영국산 푸들의 잔머리와 유머감각을 황상폐하께 부여해드릴 수 있는 가신들이 주변에 없으니 곤란하군요.
ps.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를 활용해서 이라크의 수니파를 이용한 이이제이 정책을 펼치고 이란을 침공하게 될 경우 점령정책보다는 군사력과 핵개발능력의 완전 거세와 국제자산의 동결과 압류 및 추적, 유전이 있는 이란 서부와 남부의 경우 이라크와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 영구할양하는 방안도 미국은 생각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의치않을 경우 장기신탁통치도 방법이겠지요. 문제는 미국보다 영국이 이러한 뒷장난에 능한데 중동에서의 영국지분을 미국이 확실하게 줄여놓았다는 것이 참,,,
Commented by sonnet at 2007/02/22 17:42
하이얼레인/ 국민은 상처입은지 5년도 넘다 보니까 좀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한데, 보스는 어떤지 모르겠구만.

marlowe/ 상대가 또 쥐가 아니다보니...

joyce/ 이스라엘이 어떤 의미에서는 유태인을 위한 보금자리로 건설된 국가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쥐덫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영토에 유태인들을 집중적으로 모아놓은 셈이 되다보니, 대도시 몇 곳에 대한 핵공격 서너방이면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 면도 무시할 수가 없지요.

kabbala/ 물론입니다. 그럴 때도 있지요. 아닐 때도 있고.

어부/ 최후에 웃는 자가 누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라피에사쥬/ 그 공격 자체가 미국의 과잉대응을 불러오기 위한 낚시의 성격이 강하다는데 동의합니다.

행인1/ 요지경이지요.

아텐보로/ 저건 레바논에서만의 전술적인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름없는괴물/ 저 동네 토박이들도 자기네 나라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해주는게 더 안습입니다. 알면서 설명을 못하는 건지, 자기네도 모르는 건지.

瑞菜/ 9.11 이후에 아주 강한 국내적 압력이 있었고, 이라크 침공 등에 대해 의회가 거의 백지수표에 가까운 동의를 내 준 것 등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를 해야겠지요.

腦香怪年/ 역시 안하무인의 이스라엘에게 끗발이 먹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건 그렇고 살라메의 부인이 대단한 미녀였다고 하던데 ^^

들러갑니다/ 19세기적 해결방안인데, 그런 남의 땅에 빨간줄긋기 전법이 먹힐지는 심히 의문입니다. 사실 미국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plausible deniablity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2/22 17:49
그럴듯한 부인이라...황상께는 어려울지도 =.=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2/22 18:06
부인을 닮은 건지 살라메의 아들도 꽤 잘 생겼더군요.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던데 강경파가 득세한 현 팔레스타인에선 뭔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2/22 22:55
들러갑니다/ 그게 미국이 전설적으로 못하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커밋 루즈벨트의 시대엔 그나마 어느정도는 가능했던 것도 같은데...

라피에사쥬/ 그 부인이 71년도 미스 유니버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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