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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팔레스타인 독립국은 세워져야 했을까?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스라엘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땅에 미국의 지원을 동반한
무력을 통해 무단으로 이스라엘 자치구를 세웠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이집트를 포함한 다른 중동 나라들의 도움으로
손쉽게 땅을 되찿을수 있을줄 알았으나 수년에 걸친 전쟁은 중동 연합국의 패전으로 이어지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는 식민지가 됩니다. (가가호호)

맥마흔 선언..
영국이 1,2차 세계대전 중 중동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 국가의 건립을 보장함.
(구체적으로는 원주민의 생활권. 나라의 존재를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가 보장)
같은 목적으로 유대인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같은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립을 약속함.
(새로운 토지 개념, 진정한 의미의 국가 건립) (가가호호)


위 인용문들은 원래는 이곳에서 벌어진 토론의 일부인데, 상대가 간단히 납득될 것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의 블로그에서 제3자와 시끄럽고 길게 여러 개의 덧글을 달아가며 논쟁하기도 마뜩치 않아서 내버려두다 가져온 것이다.

위 글의 논지를 잘 살펴보면 "현재 이스라엘이 있는 자리에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생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란 관점이 깊게 깔려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좋게 말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이 건국될 당시(1948)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인 것은 맞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이라는 점만으로는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독립국이 생겨야 하는 이유로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그 지역의 역사적 배경이나 20세기 전반에 일어났던 중동지역의 여러 사건들을 고려해볼 때 그곳에 신생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세워져 유지되었어야 할 이유는 생각보다 약하다는게 내 시각이다.

이는 내가 그 지역에 팔레스타인 대신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생겨야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은 현재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란 프리즘만 갖고 20세기 전반의 상황을 넘겨짚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난독증 소유자를 위해 밝혀 두자면, 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세워지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그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의 국경선을 모두 그대로 둔 채, 거기서 이스라엘이란 이름만 지워버리고 대신 팔레스타인이라고 적어놓는 것이 1948년 혹은 1948년을 전후로 한 수십 년 사이의 어떤 시점에서 자연스럽고 유일무이한 최선의 대안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정말 뭘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주장이란 것이다.

설령 1차 중동전에서 아랍측이 대승을 거두어 유태인들을 몽땅 지중해 바닥에 쓸어넣었다 하더라도 그곳에 이상적인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자리잡았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그 지역은 大요르단 혹은 大시리아의 일부일 수도 있고, 왕년에 나세르가 꿈꾸었던대로 통일아랍공화국의 일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주변국으로의 합병이 설득력을 가질만한 많은 이유가 있다.

비슷한 질문으로는 과연 요르단이란 국가가 세워져야 할 역사적 정당성이란 게 있느냐란 것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사실 요르단은 20세기 전반 해당 지역에서 벌어진 몇몇 정치적 사건들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건국자가 꿩대신 닭이라도 건지자는 판단에서 세운 나라여서 그 설립에 역사적, 민족적 정당성을 찾기란 상당히 어렵다.

지금도 요르단에는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다. 요르단 왕가는 베두윈 유목민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고, 정치적으로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은 강한 견제를 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상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란 것은 이스라엘 영토를 소유해야할 뿐 아니라, 사실 요르단의 상당 부분을 합병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이제와서 요르단 강 동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과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을 합쳐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을 때 이들이 잘 융화해서 살아갈 것 같냐고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다른 의문으로는 레바논이 왜 시리아에서 분리 독립되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답은 레바논 지역의 기독교도들, 특히 마론교도들이 독립국을 가져야 할만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 되겠다. 그러나 실제로 그어진 레바논의 국경 안에는 독립 당시에도 이미 무슬림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였고, 지금은 더 많아져서 무슬림이 확고한 다수라는데 마론파들 조차도 별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민족이나 집단의 정체성이 독립국이 되느냐 되지 말아야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현재의 레바논 국경을 더 좁게 그어서 기독교도들의 국가로서의 레바논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러한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파대립이 후에 잔혹한 레바논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팔레스타인인이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자각하게 된 것은 오히려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이야기는 또 하면 길어질 게 뻔하므로 생략하지만, 예를 들어 인디파타가 왜이렇게 늦게 일어났는가를 다르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봉기가 왜그렇게 늦게 일어났는가?


이런 이야길 길게 해본 이유는 한국인들의 경우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제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과 오버랩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는 일정한 유사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그러한 이해는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은 확고하게 구분되는 언어나 문화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자기 영토에 수백년 이상 계속되어온 독립국을 갖고 있었다. (변경의 영토가 줄었다 늘었다 하거나, 영토분쟁의 소지가 있는 지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와 핵심지역을 포함한 독립국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확고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이 주변국인들 이집트인, 시리아인, 요르단인, 레바논인 등과 그렇게 확고한 종교, 언어, 문화상의 차이를 갖고 있냐고 하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팔레스타인인과 요르단인의 차이란 결국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라기 보다는 경상도인과 전라도인의 차이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용해온 글의 작성자는 영국이 아랍의 반란을 후원하면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 국가의 건립을 보장"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틀린 이야기이다. 당시 반란을 일으켰던 아랍 세력은 지금의 사우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를 합친 거대한 지역에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쬐끄만 아랍국가를 세운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아랍의 반란을 지휘했던 파이잘은 메카(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에 근거를 둔 세력이었는데, 1차대전이 끝난 직후에 시리아의 왕을 칭하다가 프랑스군에 패해 쫓겨나고, 몇 년 후에는 영국에 의해 이라크 왕으로 옹립된다. 파이잘의 작은형 압둘라는 동생의 원수를 갚겠다고 프랑스군을 치러 북상하다가 보니 영국과 프랑스군이 너무 강한 것 같아 포기하고 현재의 요르단에 눌러앉아 요르단 왕국을 세운 경우이다.

아무리 무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인을 일본의 왕으로 책봉한다거나, 중국인이 한국왕을 칭한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아랍세계에는 어렵지 않게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니 현재의 국경이 그 당시에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다.
by sonnet | 2007/02/17 09:25 | flame! | 트랙백(3)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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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 Sonnet님 블로그의 글 (화두: 팔레스타인 독립국은 세워져야 했을까?)예전부터 팔레스타인은 오랜 기간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었습니다. 흔히들 오스만 제국이라고 하면 현재의 터키를 생각하기 쉬우나,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흑해연안-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이집트를 영유하는 그야말로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이런 역사가 1세기 정도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거의 천년 이상 이루어진것이지요. 단지 오스만 제국 이전에는 다른 왕......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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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하나.. 아라비아 로렌스는 실은 시오니스트였다 마지막의 인디펜던트 소스는 기사만 가지고는 상당한 낚시틱한 포스가 물씬 일어납니다. 아라비아 로렌스가 사실은 지중해부터 요르단강 까지의 유대국가를 생각한 시오니스트 였다는 주장이긴 한데 이스라엘 독립국가를 생각했다는 이야기는 꽤 진실성이 있어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아랍을 심심하면 패는 그러한 국가를 ......more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7/02/17 09:52
1.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의외로 한국사람들은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역사적 동질감을 느끼지 않더군요. 팔레스타인 문제보다는 그래도 아일랜드인들의 문제가 쬐금 더 일치하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하기야 한국에서의 친유태-반유태문제는 사실 반미 문제랑 연계가 되어 있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아일랜드는 사실 그런쪽이랑은 연계가 안되어 있지 않습니까 ^^)
Commented by shaind at 2007/02/17 10:14
즉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에는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는 실체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2/17 10:33
겨우(인지는 모르겠지만) 900여년 전쯤에 살라딘이 지금의 이라크에서 태어나 지금의 이집트에서 출세하고 지금의 시리아-팔레스타인-요르단-레바논을 정복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는 사실이 있는데도 불구 아시아나 유럽사에 대입시켜 역사적인 동질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뭐라 말하기 힘듭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7/02/17 10:39
아일랜드는 그나마 인정이라도 하죠. 체첸이나 티벳에는 아예 무관심...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7/02/17 10:43
습. 이상한 난독증 환자들이 많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팰컨 at 2007/02/17 10:48
안녕하세요. 제가도서관에서 읽은 키신저 평전에선 키신저가 학부생 시절때 아랍국가들을 적대화 할수 있으므로 이스라엘 건국에 반대했다 라고 보았는데 나중에 키신저는 대이스라엘 정책을 어떻게 수행했나요? 그냥 개인적 의견으로 끝났건가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리카군 at 2007/02/17 11:10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반미문제랑 짬뽕된 탓에 더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받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준님 말씀대로 팔레스타인보다는 아일랜드 문제가 우리의 상황과 더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아일랜드에 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으니 이걸 뭐라 해야할지. 팔레스타인은 잘 알아도 아일랜드는 IRA 외에는 아는사람이 없으니...[이동네서는 그나마 데리 투쟁이나 블러디 선데이라도 알면 다행인겁니다-_-]
Commented by 페페 at 2007/02/17 11:42
최초 발단이라고 할만한 원문을 가서보니 대이스라엘 운동, 즉 이스라엘 개척자에 관한 비판이군요.

미국이 전혀 관계 없지는 않다고 보는데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군요. 6~70년대 국내 좌파운동에서 나온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반미와 어정쩡하게 결부시키는 경우가 많으니....

이스라엘에 유럽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이런 개척운동가들은 미국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이 미국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들을 하죠.

68년 키리엇-알바부터 시작해서 막펠라 동굴에서 이슬람교에게 총기를 난사한 카한의 골드스타인 같은 경우도 대표적인 미국계 대이스라엘 주의 운동가들이니까요.

게다가 이런 대이스라엘 주의 운동들이 딱 서부개척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도 문제죠.

이스라엘 서부 개척자 나으리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울타리 쳐두고 집지어 놓고 그래서 열받은 팔레스타인들에게 공격당하면 기병대 요청...멜카바가 와서 팔레스타인 애들 몰아내고 그러면 거기다 돌 던지는...인디언들..-_-;


뭐 문제는 이러한 카한 같은 극우 이스라엘 조직에 대해서도 FBI가 조사를 펼친다 이런 내용까지는 한국내에서 미국을 보는 시각이 너무 숭미적이 아니면 너무 반미적이여서 제대로 된 정보 소스를 접하고 사고할 기회들이 없다보니 음모론이 횡행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보니 요전번에 이스라엘 로비 세력들에 대한 FBI 조사가 네오콘, 특히 체니가 중심이 되었고 그 때문에 샤론이 박돌았다라는 설이 있던데 그거에 대해서 혹 아시는바 있으신지?

아무튼 이스라엘이 미국을 그렇게 잘 장악할 수 있다면 왜 비슷한 영국 그리고 독일은 못장악했을까에 대한 의문부호 같은게 없다는 건 좀 안타깝긴 하죠.


말씀하신 구 오스만 영역 줄 긋기 문제 같은건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런지....;

범아랍주의는 그자체가 그 강력함으로 공포에 떨었던 유럽인들에게 받아 들이기 쉬운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줄을 긋자니 야훼에게 물어봐야 할지 알라에게 물어봐야 할지...~_~
Commented by rumic71 at 2007/02/17 13:44
독일의 경우는 유럽 내에서도 비교적 순혈(물론 겉보기만이지만)이라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미국은 워낙 잡다하게 섞여있으니...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2/17 14:04
팔레스타인 지역 거주민의 민족의식에 대한 부분에 대한 언급에도 동의하고 맥마흔 선언 당시 아랍인*후세인이 생각했던 바는 sonnet님이 말하시는 것과 동일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발포어 선언으로 인한 유대국가의 생성가능성과 레모 회의에서의 위임통치령 설립이라는 이중 배신을 때린 덕분에 아랍과 유대 모두 영국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고 이에 더해 미국은 1947년 UNSCOP를 물먹인 것이...안습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1차로 나왔던 분할안에 이스라엘만 찬성했어도...

페페//독일과 영국은 각각 히총통과 전쟁터+위임통치령의 유태인 유입금지조치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전전과 전후 양 시기에 걸쳐서 안전한 지역은 미국밖에 없었으니까요.
Commented by joyce at 2007/02/17 14:10
들러갑니다 님/ 47년 분할안을 거부한 것은 아랍인들(팔레스타인 아랍인들 + 주변 아랍국)입니다만... 지나가다가 잠깐 참견해 봅니다.
한겨레 국제면은 너무 취약해요.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2/17 23:45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에라도 관심을 가진다는게 신기합니다.
[아일랜드는 아웃 오브 안중이니...]
Commented by shaind at 2007/02/18 01:44
あさぎり // 우리나라가 Zeal이 높은 기독교국가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세리자와 at 2007/02/18 03:26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02/18 07:47
joyce님// 인정합니다. 47년 분할안을 거부한 쪽은 아랍이 맞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 1937년 필위원회에서 나왔던 분할안이었네요. 이 분할안과 47년 유엔의 분할안의 영역지도가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엔의 분할에 1937년 필위원회의 분할안에 호의적이었던 아랍이 반대했던 것이죠.
Commented by young026 at 2007/02/18 11:53
본 내용과 별 관계없는 얘기긴 한데, '중국인을 일본의 왕으로 책봉한다거나, 중국인이 한국왕을 칭한다거나 하는' 일은 고대에는 꽤 많이 있었던 일로 알고 있습니다. 백제왕을 북중국 지역 제후에 봉한다든가 왜왕에게 백제 영토 어딘가의 군공 작위를 내려준다든가 하는 식의 기록이 여럿 있죠. 물론 어디까지나 이름뿐이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7/02/19 18:39
세리자와//이건 기독교도인 제가 봐도 미X짓이군요...[먼산]
Commented by sonnet at 2007/02/19 20:40
이준님, 리카군 / 저는 객관적으로 봐서 팔레스타인에 비하면 아일랜드는 분쟁의 강도가 약하고 석유 등 전략자원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아서, 뉴스거리가 충분히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에 좀 떠야 사람들이 생각이라도 해보지 않겠습니까?

shaind/ 이제 가장 오래된 팔레스타인 난민촌 중에는 "우리 할아버지도 이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수준의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복해야 할 고토에 대해서는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내가 지금 사는 나라에서 나를 국민으로 받아주질 않으니까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서 갈 데가 뻔해지는 거죠.

라피에사쥬/ 살라딘은 너무 옛날 인물이니까 좀 그렇다는.. 본문에서 예를 든 하심 집안의 왕자들 정도면 아랍 세계에서 국제적으로 논 거물급 장군들이라고 할 수 있을 듯.

rumic71/ 검은 대륙에도 무시당하는 동네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나이지리아의 MEND처럼 한국인을 계속 납치해도 "쟤들 도대체 왜저래?" 수준의 반응인 경우도...

미친고양이/ 좀 그렇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팰컨/ 다음을 한번 읽어보시는게 괜찮을 듯 싶습니다.
http://www.gwu.edu/~nsarchiv/NSAEBB/NSAEBB189/index.htm

페페/ 행태적으로 이스라엘은 20세기 마지막 식민지 개척운동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교사나, 미국-이스라엘 커넥션의 결과다라는 식의 해석은 아무리 봐도 생떼지요.

들러갑니다, joyce/ 1910년대 후반, 1930년대, 1940년대는 각각 현지에 정착한 유태인들의 숫자가 놀랄만큼 다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현지를 유태화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달려든 반면, 아랍인들의 대응은 대증요법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전략적 시각의 결여가 눈에 많이 띕니다.

young026/ 예, 저야 물론 20세기의 이야기이지요.
Commented by claudius at 2008/02/07 18:29
요르단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음.. 굉장히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의 상당수, 특히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한국에, 이스라엘을 일본에 대응시키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친팔레스타인적 의견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하마스를 의열단이나 한인애국단에 비유하는 경우..). 최근 알파타와 하마스의 대립을 볼때 필자의 의견대로 팔레스타인이 1차 중동전에서 승리해서 이스라엘인들을 모조리 추방했다 하더라도 순탄하게 나라를 경영했을것 같지는 않네요.

다만 필자의 의견에 이런부분을 좀 덧붙이고 싶습니다. 지금은 좀 덜해졌겠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시오니즘이나 유대교의 영향은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강했으리라고 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이 찾아야만 하는 미수복의 고토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팔레스타인 독립정부가 이스라엘에 세워졌다손 치더라도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을 공산이 큽니다. 좀 더 논의를 확장시켜본다면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이 그토록 양보를 거부하는것도 제3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나쁜짓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고토수복과 국가방어라는 이스라엘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또 전혀 말도 안되는 짓은 아닌 것 같네요.

흠.. 우리나라의 식민통치 기억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인식에 영향을 미쳐 왜곡된 현실인식을 낳는다는데는 150%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아르미셸 at 2008/05/05 00:02
헨리 키신저를 비롯해서 이스라엘이 중동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랍권과의 관계유지에 도움이 될리 만무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바였습니다. 다만, 1차 대전에서 오스만 투르크가 패하게 되자 얻게 된 지역에 대하여, 영국은 1차 대전에서 받았던 지원에 대한 호의 내지 관용으로, 벨푸어 선언을 하게 된 것인데, 원래의 예정안에 비교하면 많이 축소 내지 결정적인 부분의 삭제, 조정이 이루어진 것이죠.

헨리 키신저가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발언하는 부분은 제4차 중동전, 욤 키푸르 전쟁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공을 한다면(이스라엘은 전략적 종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기본 전략안은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선공에 나서야 한다는 방침이었죠) 지원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전후에 밝힌바 있죠.
Commented by 심재호 at 2008/05/05 08:13
만일 중동이 미국이 바라는 반공노선과 거리를 두게 된다면, 완전히 오일쇼크+서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전역이 소련군 기지가 들어설 여건이 되겠지만요.

그나저나 아일랜드와 우리와의 비교에 문득 요즘 엄청 욕먹게 되는 모 작가가 떠오릅니다. 저는 핀란드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데, 아닌 모양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8/05/07 07:58
claudius/ 글을 남겨주신 줄 몰랐네요. 늦었지만 답해 봅니다.
사실 이 글은 '아랍 측 관점'에서 볼 때, 팔레스타인 지역이 포함되는 국가가 소유하는 영토의 범위가 어디까지로 정해져야 합당한가를 생각해 본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고려는 빠져 있습니다.("설령 ... 유태인들을 몽땅 지중해 바닥에 쓸어넣었다 하더라도" 가정) 한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민족이 둘 이상 있으면 당연히 조용하진 않았겠지요.

아르미셸/ 사실 미국-이스라엘 관계에 있어 키신저는 말과 손이 따로 노는 경향이 있습니다. 키신저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무르던 시기에 미국은 급속도로 친 이스라엘 경향을 노정하게 되는데, 이것은 키신저 본인이 나치 독일에서 빠져나온 유대인이라는 점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심재호/ 사실 수에즈 전쟁 당시에 미국이 보여준 태도 등을 보면, 미국의 대 중동 노선은 서유럽에서 보여준 것 같은 피아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계적인 반공노선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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