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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민주주의(?) 세력들
피에르 제마엘 사건(teaser)에서 셀프 트랙백

레바논 정세가 계속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확실한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양쪽 세력이 모두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서 유류창고에 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하는 상황이다. 누가 담배를 꼬나물고 나타날 것인가?

레바논의 미래를 점칠 능력은 없지만, 레바논 뉴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해설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래 레바논 뉴스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새 부대에 담긴 낡은 술들이기 때문이다.


좀 지났지만 암살당한 레바논 산업장관 피에르 제마엘의 장례에 관련된 뉴스를 보자.

시아파 무슬림들이 사는 베이루트 남부에서는 주기적으로 축하의 총성이 울려퍼지고 일부 주민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도시를 가로질러, 기독교도들이 사는 동 베이루트로 넘어가면 그의 지지자들이 평소 붐비는 네거리에다 항의의 표시로 불을 피워놓아 연기가 빈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가 잠든 병원에는 군중들이 현관과 주차장으로 모여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전화로 황급히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붉었고 여자들은 흐느끼며 남자들은 비통해 했다.

몇몇 사람들이 소리쳤다. "우리는 복수를 원한다! 우리는 복수를 원한다!"

해가 진 후 죽은 제마엘의 아버지, 아민 제마엘 전 대통령이 나와 말했다.
"나는 한가지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밤이 이 순교의 의미와 어떻게 이 나라를 지켜나갈지를 되새기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밤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들의 순교를 기리는 모든 이들이 그의 대의를 지켜 레바논의 일원으로 남아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대응이나 복수를 원치 않습니다."

그가 떠나자 군중들은 외쳤다. "아민, 망설이지 마라! 네가 병사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군복을 입으마!"

Anthony Shadid, Fears of Civil Strife Rise in Lebanon, 워싱턴포스트, 2006년 11월 22일


[암살당한 피에르 제마엘의 장례식장에서] 몇몇 구호들은 귀에 익었다. "자유, 주권, 독립" 그리고 "시리아는 가라!"
새로운 구호들도 있었다. 히즈불라와 그들의 말많은 무기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불법 무기 반대!"
몇몇 시위군중들은 히즈불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그의 기독교 동맹자인 미셸 아운에 대한 외설적인 구호를 외쳤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다른 사람들은 아운과 친시리아파 대통령 에밀 라후드의 초상화를 짓밟았다.

정부와 손을 잡은 기독교 지도자 샤미르 쟈쟈는 순교자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연설했다.
"그들이 대결을 원한다면 한판 붙자고 하라. 우리는 눈곱만큼도 겁먹지 않는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범죄가 중단될 때까지 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기쁨과 삶, 그리고 죽음과 슬픔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빼앗지 못할 것이다." 죽은 제마엘의 동맹자이자 드루즈파 지도자로, 히즈불라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인 왈리드 줌블라트의 말이다.

"우리가 진정한 다수이고, 너희는 환상일 뿐이다. 그들에게 우리가 말하노니 너희의 환상을 버리고 진실을 직시하라. 주권의 이념으로 돌아오라, 국민 통합으로 돌아오라, 레바논으로 돌아오라" [암살당한 전 총리 라피크] 하리리의 아들로 레바논 수니파의 지도권을 상속한 사드 하리리의 말이다.

Anthony Shadid, At Lebanese Funeral, a Show of Force Against Syria, 워싱턴포스트, 2006년 11월 24일


그러나 이들을 보는 반대파들의 눈초리는 차가왔다.

남쪽의 시아파 거주지역에서는 [암살당한 피에르 제마엘 장관의] 3일간의 애도 기간임에도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악어의 눈물", 한 손님이 방송을 보며 빈정거렸다.

생수 한 병을 사들면서 다른 주민이 말했다. "저놈들은 모두 군벌에 강도들입니다. 아무도 저놈들을 믿거나 따르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이 나라에 혼란과 내전, 충돌을 제일 먼저 가져온 놈들입니다."

(ibid.)


히즈불라의 지지층들은 이처럼 냉소적이지만 정작 당사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이루트 남동쪽 산속에 위치한 그의 요새화된 저택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드루즈파 지도자] 줌블라트는 말했다.
"난 내 과거를 숨기지 않소. 맞아. 난 변했다오. 나는 친시리아파였었지. 좋아 하지만 난 결정했소. '이젠 충분해'" 그의 말에 따르자면 레바논의 정치는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는 것이다.

줌블라트는 지난달 말 펜타곤에서 럼스펠드와 만났을 때 "좋았던 옛 시절"을 회상했다고 이야기한다. 1980년대 초에 럼스펠드가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로 베이루트를 방문했을 때, 줌블라트의 군대는 공항에 포격을 했었다. 당시 그는 이번 주에 암살당한 장관의 아버지인 아민 제마엘의 기독교 민병대와 싸우고 있었다.
럼스펠드는 줌블라트에게 그 사건을 상기시켰다. "그가 내게 말했소. '당신네가 내게 포격을 했었지' 그래 내가 대답했소. '미안합니다. 당시에 저는 군벌이었죠. 이제 저는 민주주의자랍니다.'"
줌블라트는 개인적인 문제는 없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포병은 그다지 정확하다고 할 순 없었지요"
펜타곤은 이 만남을 확인해 주었지만 어떤 이야길 논의했는지에 대해서는 논평을 거부했다.

이 전직 군벌은 그는 이제 이라크와 나머지 중동지역에 일련의 민주주의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워싱턴의 시각을 공유하고 말한다. "중동이 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Andrew Higgins, Ex-Warlord Sees More Lebanon Bloodshed, 월스트리트저널, 2006년 11월 24일



누구의 말이 맞나?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드루즈파의 PSP 민병대를 이끌던 왈리드 줌블라트와 기독교 민병대 레바논 포스를 이끌던 샤미르 쟈쟈 두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라면 다음 이야기 하나면 더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84년 초 베이루트와 레바논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도살용 칼을 휘두르는 '외부 선동가'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레바논인 스스로가 저지른 일이었다.

슈프 산악지대를 두고 벌어진 전투가 레바논 전체의 자살로 이어졌다. 팔랑헤당이 드루즈파를 상대로 벌인 이 전쟁은 적나라한 권력의 폭거였으며, 전투를 오래 끌수록 드루즈파는 더욱 단결했다. 이 전쟁은 포로마저 남김없이 죽이는 잔혹한 양상을 보였다. 팔랑헤당과 드루즈파는 상대의 마을을 습격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불을 지르고 떠났다.

양쪽이 민간인을 납치했을 때 포로 교환 협상을 중재하던 한 이스라엘 고위 장교는 그가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드루즈파가 기독교도 수십 명을 납치하자 팔랑헤당도 드루즈파 8명을 납치했습니다. 우리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기독교도 지도자 샤미르 기기가 우리 사무실에 왔는데, 그의 손에는 납치한 드루즈파 80명의 명단이 있었습니다. 한참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샤미르 기기의 부하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드루즈파가 기독교도 인질 14명을 살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샤미르 기기는 '그들이 14명을 죽였다면 나는 20명은 죽여야 해'라고 하더군요.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처형자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더군요. 마치 장부 정리를 하는 사업가 같았습니다."

Friedman, Thomas L., From Beirut to Jerusalem, New York: Anchor, 1990
(장병옥 역,『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울: 창해, 2003, p.177)

...... 이 둘이 손을 잡고 한 편이 되어 있다. 그 뱃속 색깔이 어떨지 가히 짐작이 가지 않는가?

아 참, 암살당한 장관의 아버지인 아민 제마엘도 빼놓으면 안될 것이다. 이자는 거만한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하다. 레바논 내전을 그처럼 참혹하게 만든 데에는 이 자의 허세와 무능력이 실로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15년 내전 중 대통령 자리를 6년이나 꿰차고 있었던 책임자인 것이다.

슈프 산악지대의 전투가 발단이 되어 베이루트와 레바논 전체는 정파간의 전쟁터가 되었다. 제마엘의 레바논 정부군은 서베이루트의 시아파를 공격했고, 시아파는 기독교도를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시아파와 드루즈파가 베이루트를 양분하자 수니파 이슬람교도도 그들의 몫을 지키기 위해 시가전에 나섰다. 이스라엘, 시리아, PLO가 뒤로 물러서자 오직 레바논 사람들간의 전쟁이 되었다.

1984년 2월 6일, 슈프 산악지대와 베이루트 시가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 전날 제마엘 정부의 모든 이슬람교도 각료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전 레바논 정부군이 시아파들이 주거하는 아파트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2월 5일 저녁 제마엘이 이슬람 교도와 기독교도에게 회의를 열어 거국 내각을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다음 날 아침 제마엘은 정부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서베이루트에 통금을 실시했다. 한 시간 후 거리에 나타나는 사람은 모두 사살한다는 것이었다. 드루즈파 민병대와 시아파 아말 민병대는 이를 무시하고 레바논 정부군을 상대로 시가전에 나섰다. 베이루트의 민간인들은 시가전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대피했다. 거리는 도피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도 앤을 대리고 코모도 호텔로 달려갔다. 총성이 요란한 가운데 나는 호텔 화장실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그날 밤 우리는 호텔 지하의 디스코테크에서 2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잤다. 레바논 정부군의 병사들은 각각 소속 종파를 찾아 탈영했다. 슈프 산악지대에서는 드루즈파가 팔랑헤당을 무참히 부수었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정부군이 지원하지 않으면 팔랑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 해병대가 재건한 레바논 정부와 정부군은 와해되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황급히 미 해병대의 철수를 명령했고, 1984년 2월 26일에 철수가 완료되었다.

(Ibid. 177-178)


물론 이들의 반대편이라고 절대 깨끗하지 않다. 시아파 민병대 아말의 두목인 나비 베리 라든가 히즈불라 총수 하산 나스랄라, 기독교파 지도자 미셸 아운 등이 이들의 반대파이지만 이들의 손에도 수많은 피가 묻어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문제는 미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히즈불라와 대결하는 세력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레바논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포장해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로 믿지 말라. 레바논에 진정한 민주투사나 민주 지도자는 없다. 아니 어느 구석에 숨어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언론을 타면서 등장하는 저들은 절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당시 그 사태는 어떻게 수습되었을까?

물론 정통 레바논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잔에서의 회의가 실패로 끝나자 다시 레바논 내전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시아파와 드루즈파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하고 평화 회의마저 성과가 없자 아민 제마엘은 자신의 정파만으로 레바논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1984년 4월 30일, 그는 여러 파벌을 등용한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다.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 나비 베리는 법무장관, 왈리드 줌블라트는 교통관광장관, 마론파 지도자 카밀 차문은 재무장관, 시아파 지도자 아델 오세이란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모든 군벌이 정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늑대들이 닭장을 관리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먹을 것이 많아져서 당분간 이들끼리 싸울 일은 없었다.

(Ibid. 177-178)

1980년대 레바논 정글에 뛰어들어 재미를 본 외세는 없다.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시리아 모두 보무도 당당히 이 나라에 들어왔다가 톡톡히 쓴 맛을 보았다. 이들은 결국 진짜 문제는 손대지 않고, 적당히 뚜껑만 덮어 두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시간이 흐르고 이들 외세의 지도층은 모두 바뀌었다. 옛날의 쓴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개입주의의 환상이 도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엔 보이지 않던 코리안 부족이 말석에 자리를 차지했다는 정도일까?
by sonnet | 2007/01/28 23:56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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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이영훈 교수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는 조상님네들에게 감사를 수없이 드려도 모자랄 지경인 것인바. 검역소장님의 주옥 같은 포스팅들을 훑어보도록 하자. 레바논 1), 레바논 2), 레바논 3) 남예멘의 어떤 개각 카다피와 아사드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재의 한국은 부족민들이 총 ... more

Commented by 끝판대장 at 2007/01/29 01:33
국제정치에 대해 아는것이 전혀 없어 질문하는게 죄송스럽지만 팔랑헤당이 왜 멀고먼 레바논 정치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네요

팔랑헤당은 서양사 관련 수업에서 스페인 내전에서 한번 듣고 그다음엔 듣지를 못해서요 정강이나 정치이념을 공유하나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7/01/29 02:15
끝판대장 // 이 글이 트랙백을 보낸 글에 백선호님이 그에 관해 답글을 달아두셨습니다.
요컨대 이미테이션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9 10:32
그러고보니 '민주화된' 아프가니스탄의 국회의원들은 거의 대부분 군벌과 마약상들 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는군요....

그나저나 미셀 아운은 1990년에 시리아에 대항해 싸우자고 하다가 깨지고 프랑스로 도망쳤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어떻게 헤즈볼라와 손을 잡았는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9 11:42
끝판대장/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레바논 이름으로는 Kataeb당인데, 영어권에는 보통 팔랑헤당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이 당의 설립자인 피에르 제마엘이 이 당을 만들면서 서유럽의 파시스트 운동을 모델로 했기 때문입니다.

행인1/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면 히즈불라와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 http://sonnet.egloos.com/2960732 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9 13:30
으엑, 그때 그양반이....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9 14:06
행인1/ 말이 나온 김에 미셸 아운이 레바논에서 왜 쫓겨났는지 좀 이야기해 볼까요?

아운이 레바논에서 시리아 세력을 몰아내려고 할 무렵, 그에게는 후원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래도 허약한 레바논군만 갖고 시리아와 맞서는 것은 무리였죠. 그래서 아운은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와 앙숙인 이라크의 사담 후사인과 손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사담은 쿠웨이트를 집어삼키려다가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고, 아사드는 사담을 물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미국 주도 다국적군에 참여합니다.

사담의 군대가 묵사발이 나자, 아사드는 다국적군에 참여한 전공을 내세우며 이번 기회에 레바논에 있는 사담의 잔당들을 쓸어버리겠다는 의향을 비치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묵인합니다. 이제 주변의 방해를 모두 정리한 아사드는 강력한 군대를 보내 아운의 레바논군을 분쇄해 버립니다.

아운은 결국 동맹을 잘못 잡은 것을 후회하며 프랑스로 망명을 가게 되지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9 18:26
현재 기독교파의 지도자가 십수년 전에는 '악의 축'의 친구였군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7/01/29 19:25
다인종으로 구성된 군대의 문제점을 연구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은 주로 1차대전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인데 아마 금세기 안에 이게 중동 국가들로 대체될 것 같군요. 정말 중동문제는 오묘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1/29 20:50
오스트리아 헝가리 군대는 민족마다 군복의 색깔이 달랐죠.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다채로운 군복을 입고 정렬한 병사들을 열병하면서 매우 즐거워 했었다던가.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9 22:16
행인1/ 돌고 도는 법이죠. 마론파 기독교도들과 시아파는 무려 십자군이 쳐들어왔을 때 십자군과 손잡고 수니파를 친 전력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십자군이 쫓겨가자 잔혹한 보복을 당했지만요.

길 잃은 어린양, 슈타인호프/ 사실 레바논은 중동에서도 최악의 분절성을 가진 사회로 꼽습니다. 저도 중동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지만 문제가 너무 깊어서 양파껍질을 벗기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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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랍학자가 부족이나 종교, 종파 혈연 등 다양한 단체에 속하는 정도와 그 단체들 사이에 조화의 범위에 따라 중동 사회를 분류하였다. 가장 동질성이 높은 사회로 이집트를 꼽고 그 다음 단계가 튜니지아, 리비아, 그 다음이 모로코, 알제리, 시리아, 이라크, 그 다음이 예멘, 바레인이며 가장 분절적인 사회로 수단과 레바논을 제시해놓았다. 동화된 사회는 위기 시에 공동체나 사회에 충성을 하고 분절된 사회는 소속단체에 충성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그리고 독립 후 1958년과 1975년의 내전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면에서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나가야 할지를 배운 것이 아니라 레바논은 더욱 분열되어 종파간의 상처의 골만을 키워나갔다.

Halim Barakat, al-mujtama` al-`Arabi fi al-Qarn al-`Ishrin, Bayrut, Markaj Dirasat al-Wahdat al-`Arabiyya, 2000, pp.25-29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1/29 22:26
아사드의 '무슬림 형제단 때려잡는' 실력이면 시리아가 군사적으로는 위기가 있어도 나름대로 레바논에서 이익을 거뒀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저렇게 복잡폭력한 환경에선 매우 난감할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9 22:41
라피에사쥬/ 1. 사실 하마시의 반란은 레바논 내전의 불똥이 거꾸로 옮겨 붙은 측면도 있습니다.

2. 사실 시리아가 한때는 레바논을 거의 장악하는데 성공했다고 봐도 좋았는데, 미국과 프랑스가 시리아를 위협해 군대를 철수하게 만듦으로서 그 장악력도 금이 갔다고 봐야지요. 사실 레바논 내전 종식 후 민병대들의 무장을 해제한 것도 시리아입니다.
Commented by 6K2BTS at 2007/01/30 00:16
레바논은 마론파의 행적과 그 메카니즘을 이해하는것부터가 머리가 아주...(...)
국가 수립때부터 마론파와 이슬람의 대립구도가 예측되면서도, 이 둘간의 선을 좌라락 그어놓은거 자체가 문제이긴 한데, 도통 답이 안나오네요.(...)

뭐어, 마론파가 주도권을 잡은 시절부터 저질렀던 행동도 상당히 아스트랄하고 말이죠.
이래서 중동은 건드리면 안되는곳이라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30 11:47
6K2BTS/ 그것이 프랑스의 깊은 뜻.
Commented by at 2007/02/01 01:19
외신도 현 정권을 '서방의 지지를 받는'이라고는 표현해도 '민주주의 정부'라는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2/04 15:55
펄/ 시리아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수니파와 마론파, 드루즈파가 손을 잡고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여서 정권탈취를 했을 때, 서방 정부와 언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백향목 혁명"이라고 띄워주었던 것이 채 2년도 되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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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의 폴라 도브리안스키 차관은 이날 2004 연례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배경설명을 통해 "레바논에서 우리는 백향목 혁명을 향한 커다란 힘을 목격했다"면서 "백향목 혁명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외세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대의명분을 위해 투쟁하는 그 나라 시민들을 통합시키고 있는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AP=연합, 2005년 3월 1일)


이 당시 주요 외신들의 Editorial이나 Op-Ed들도 거의 이러한 논조를 따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미국이나 프랑스 정부의 입장은 현재도 이 떄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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