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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
다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테러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냉전 같은 기간이 한정되지 않은 장기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 따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그러한 종류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은 무기한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긴 여정(The Long Haul)
필자: Paul Krugman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 경제학 교수)
출처: 뉴욕타임즈
일자: 2002년 9월 10일

미국인들은 9.11 사태 대응과 관련하여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희생 촉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촉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포에 침착함과 관용으로 대응하였다. 공황은 없었다. 증오 범죄가 약간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집단적으로 남들을 공격하는 화난 군중은 없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본분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는 상당히 어수선하다. 기업 스캔들, 주가 하락, 그리고 실업률 상승이 이러한 불안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적인 원인은, 미국인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과 많은 언론 매체들은 우리에게 나라가 지금 전쟁 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당초부터 나쁜 비유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빠 보인다.

인간적,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9월 11일의 효과 자체는 군사 공격의 그것이 아니라 자연 재앙의 그것을 닮았다. 실제로 9월 11일과 1995년 일본을 강타한 지진의 효과 사이에는 기이한 유사점이 있다. 테러 공격과 마찬가지로 고베 지진은 경고 없이 무고한 시민 수천 명을 죽였다. 테러 공격과 마찬가지로 그 지진을 한 국가를 악몽과 아주 불안한 심리상태로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테러 공격과 마찬가지로 그 지진은 이미 금융 거품의 후유증과 싸우고 있던 국가를 강타했다.

하지만 고베 지진은 일본 경제에 단지 지나가는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이는 9월 11일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똑같이 단지 일회성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것으로 드러났다. 고베는 일본인의 심리에 장기적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마치 9월 11일이 우리 심리에 그랬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일본은 대체로 전진했다. 그리고 미국도 그럴 것이다.

물론 신의 행위와 의도적인 잔학 행위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미국은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분노했다. 그래서 범인들을 추적해 응징하기로 결의를 다졌다. 9월 11일을 진주만의 정신적 등가물(等價物)로, 그날 시작된 투쟁을 현 세대의 제2차 세계대전 등가물로 각각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설사 이것이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이 과거 승리를 거둔 일련의 전쟁과는 별 닮은 점이 없다. 희생과 위대한 국민적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이길 것인지, 이긴다면 언제 이길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군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앞에 놓인 투쟁에는 어떤 디데이도 없을 것이며 V-J 데이[미국이 일본에 승리한 날, 즉1945년 8월 15일] 또한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테러리즘을 영원히 축출했다고 우리가 선언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범죄와의 전쟁과 같다. 진짜 전쟁과는 달리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공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승리는 결코 최종적이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투쟁을 묘사하면서 사용하는 비유는 중요하다. 설령 범죄자들이 살인을 일삼는 미치광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일시적인 전쟁 기간에는 정당화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영구적인 범죄와의 전쟁 동안에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심지어 연방 예산과 같이 평범한 사안들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전쟁은 전통적으로 적자를 기록해도 좋은 타당한 이유였다. 왜냐하면 위중하지만 일시적인 비상사태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은 합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비상사태는 위중하지도 일시적이지도 않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미국 본토 안보와 국방에 대한 지출이 9월 11일 이전 수준으로 다시 낮아지리라고, 예산 균형을 달성할 정도로 충분히 낮아지는 것은 차치하고, 기대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없다. 그럴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의 부채를 영구적 차원에서 갚아 나갈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낫다.

물론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법과 시민의 자유라는 문제이다. 위대한 민주주의 지도자들도 전시에는 그 규칙을 어겼다. 아브라함 링컨이 1891년 인신보호법을 일시 정지시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미국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극단적이었고, 법의 실효는 일시적이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자 사법절차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미국의 현 지도자들에게, 당신들에게는 더 이상 비상 권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득할 사건을 누가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핵심은 미국이 직면한 위협받는 새 상황은 일시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긴 여정에 들어서 있다. 그러므로 테러에 맞서 싸우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한다면, 그것은 영구적으로 끌고 갈 조처가 되는 편이 낫다.

현재 미국이 직면한 진짜 도전은 테러리즘 박멸이 아니다. 그것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도전은,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자유와 번영을 잃지 않으면서 테러리즘의 위협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by sonnet | 2007/01/23 13:15 | 정치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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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屍君 at 2007/01/23 16: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강조 표시가 인상깊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1/23 20:51
9.11을 겪은 어떤 사람의 일화가 생각나네요.

"그 때의 끔찍한 광경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무서운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마음 속의 공포가 끊임없는 고통을 가져왔다"
Commented by 이름없는괴물 at 2007/01/24 02:18
정작 '폐하'와 그 측근분들께선 저 마지막 강조표시문을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ㅡ.ㅡ;;;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4 10:04
미국 수사물에서는 9.11 이후 수사관들이 필요한대로 개인정보를 볼수 있게 되었다는 묘사가 종종 나오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4 16:50
屍君/ 말씀 감사합니다. 결론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피에사쥬/ 그런 개인적인 공포의 총합이 국가의 정책이 되면 난감하죠.

이름없는괴물/ 폐하는 그닥...

행인1/ 911 이후 FBI요원들을 증강했더니, 뇌물수수 및 개인비리로 걸려든 정치인이 대폭 늘어났다는 웃지못할 현상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floridian at 2016/03/03 00:18
링컨이 언급되어 나오는 년도 오탄네요. 1861년.
Commented by paro1923 at 2016/03/04 01:33
'테러방지법'으로 불리는 관련법과 관계된 일련의 논쟁과 우려 때문에 되돌아보게 되는 글이군요.
Commented by 잡지식 at 2020/04/04 09:38
Covid 19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을 보다보니 생각나 다시 왔습니다. 공중 보건 정책은 영원히 사회/경제적 비용이 지출되지만 결코 영구적 해결이 없다는 점에서 테러와의 전쟁과 닮은것 같습니다. 결국 리스크-비용 곡선의 어떤 선에서 타협해야겠죠. 다만 그렇게 타협했다가 이렇게 한번 빵 터지면 그때 담당자들은... 아 이것도 9.1 1이 생각나네요. http://sonnet.egloos.com/m/4572971 일이 터지기 전에는 감수할만하다 생각했던 리스크가 현실이 되자 교리가 바뀐건처럼 이번 건 이후로 각국의 정책이 어떻게 될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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