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공개질의(?)
이곳에도 종종 들려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teferi씨께서 모 게시판에서 제 앞으로 다음과 같은 공개질의서를 올려놓으셨더군요.
읽어보았더니 우선 예로 들어주신 사건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이상하더라는 것이 저의 첫 감상입니다. 어쨌든 제가 업무상 오늘은 좀 바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평은 내일 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핵문제에서 명분의 중요성과 sonnet님에 대한 질문

국제관계에서도 명분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유고 분쟁, 이라크전에서 밝혀진 사실이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군국주의라는 절대악과 반 파시즘이라는 절대선이 대결한 전쟁이 아니었다면 과연 미국과 영국의 국민이 전쟁을 하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소련이 단지 스탈린의 공포정치 때문에 국민들을 모질게 전쟁에 내몰 수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에서는 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에 연합국의 전 국민은 일치단결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베트남 전쟁에서는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옳았지만, 그 명분을 알리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전쟁을 버텨낼 수가 없었고 전쟁에서 행동도 베트민을 공격하지 못하고 호치민 루트도 직접 봉쇄할 수 없는 제약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처럼 전 국민의 합의 하에 전시체제에 들어가고, 베트민과 라오스로 쳐들어갈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면 베트남전쟁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냉전과 유고 분쟁은 그에 반해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에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은 악의 제국이 맞았고, 그렇기에 전 국민과 미국의 동맹국이 일치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유고 분쟁도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들로 인해서 비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은 세르비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종청소를 당해서 죽었을 것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인 것 입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명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전쟁에 협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로도 이라크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나, 그 이유 자체가 미국 국민들과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기 때문에 언급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가이성으로 국가이익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다는 가설은 위에 열거한 전쟁에서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냉전시대에 도미노현상을 막기 위해 일으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 이익 자체가 실존하는 지도 알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시민 자체가 그런 국가 이익에 대해서 자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주국가의 시민을 동원하려면 전쟁에 나서는 드러난 이유, 즉 대의명분이 온전해야 하며, 국가의 힘은 그러한 명분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명분은 그 명분을 보는 다른 나라의 행동도 제약합니다. 명분은 국가이익의 추구를 합리화하려는 자기합리화의 구실뿐만이 아닙니다. 명분이 곧 힘인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핵위기에서도 역시 명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명분과 전략전술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북한에 명분이 없더라도, 북한에 대해서 전략전술적인 유연함을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악의 제국인 소련과 협상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소련은 무너뜨려야 할 악의 제국이었더라도 전략전술적으로 국가안보라는 상위의 목표를 위해서 협상해서 안보위협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아무 정당함이 없고, 대한민국과 그 동맹국 미국에 안보위험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과 하는 것이 동일하다면 북한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서 전쟁쪽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정당하며 북한이 그에 대해 반격을 하는 것조차 부당한 일이라고 할 지라도 현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안보위험을 가지기 때문에 북한과 협상해서 전쟁위험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명분이 확실하다는 것이 전략전술적으로 유연함을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될 수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략전술적으로 유연함을 추구하는 것이 명분의 후퇴를 의미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애시당초 핵을 만들 권리가 없었고, 정권을 유지할 권리와 군대를 유지할 권리조차 없는 것입니다. 한국은 임시정부의 적통을 잇고 한반도에서 유엔총선거를 거친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이것이 보수세력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반면에 북한은 애초에 권력을 잡는 과정이 흑백선거라는 부정한 선거를 거쳤기에 무효이고, 그러한 불법적인 권력으로 동족을 상잔하는 6.25를 일으키고 6.25 이후에도 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그 주민은 굶주리게 하고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했기에 결과적인 정당성도 없습니다. 실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의 적이요 같은 민족을 상잔하는 전쟁을 일으켰으며 북한지배하에 있는 우리 민족을 굶기고 인권을 유린한 민족의 적이며 세계평화와 인권보장추세에 역행하는 전 인류의 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대한민국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정해야 하는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사실이고 또한 외국인들이 유엔동시가입이라는 외형에 현혹되어 북한을 주권을 가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나서서 가르쳐야 할 사실인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전략전술에 대해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그 동맹국 미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서 강경책도 있을 수 있고 유화책도 있을 수 있으며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협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전술은 위에서 말한 명분의 확고한 바탕위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처럼 우리의 힘은 제약당하고 상대의 힘은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몇몇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동맹국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비판하면서 북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그것이 북한의 핵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동맹국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험하게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 만드는 것을 미국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항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sonnet님은 부시의 정책이 북한의 핵을 만드는데 김정일에 이어서 2번째로 책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전략전술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온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마치 김정일이 조건부로 정당성을 갖추게 되는 것처럼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부시가 쓴 정책을 쓸 때는 핵을 만들 정당한 권리가 있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핵을 만들 권리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논한 명분의 후퇴에 해당하며 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주장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은 부시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북한이 자위를 위해서 핵을 날려도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게 되는 아주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sonnet님이 그 주장의 확실한 뜻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부시가 북핵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북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까? 북한이 미국이 협상을 선택하건 전쟁을 선택하건 핵을 만드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사상검증성 질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명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저의 무례한 질문도 정당성을 가지리라고 봅니다.
by sonnet | 2007/01/23 09:52 | flame! | 트랙백(2)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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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몽상을 담아놓은 곳 at 2007/01/23 16:10

제목 : 제가 보는 명분과 절대적인 선악은 이렇습니다.
어제 받은 공개질의(?) 아담 스미스가 개인간의 거래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밝혔듯이, 국가간에도 서로간의 이익이 되는 일종의 거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호 호혜관계를 늘리는 것은 선, 줄이는 것은 악이라고 봅니다. 사실 아담 스미스가 이러한 관계를 밝히기 전에도 인간은 여러 가지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해 왔습니다. 국가가 바로 이러한 상호 호혜적 관계를 제도로 만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more

Tracked from a quarantine.. at 2007/01/25 03:48

제목 : 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
어제 받은 공개질의(?) (teferi) 에서 트랙백 0. 들어가기 전에 국제관계에서도 명분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유고 분쟁, 이라크전에서 밝혀진 사실이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teferi) 말씀해주신 내용을 곰곰히 읽어보았는데, '명분'이라고 하신 내용은 사실 '선전선동(propaganda)'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국제관계에서도 (그리고 ......more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7/01/23 10:47
'대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국가의 의사결정에 관한 부분이라던지, 명분을 강조하는부분은 어느정도 당위적 서술도 포함이 되어있다고 읽혀지네요. (제 독해력이 이상한가;;)

근데 마지막 문단은 확실히 teferi 님께서 sonnet님의 글을 잘못 읽으신듯 하네요. (국가간 정책 및 힘, 경제 등 여러 요소에 의한) 작용-반작용이라는 (국가의 행위의 인과관계를 판별하는) 기준상의 문제를 당위적 기준상의 문제로 바꿔치고 계시군요.
Commented by 444← at 2007/01/23 12:04
명분은 어디까지나 수단을 합법화하기 위한 구실이자 도구지 힘 그 자체이진 않죠-_- 명분이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만, 그만한 힘을 지니려면 그 나라의 국력이라던지 주변 정세라던지 이런저런 복합적인 제반사항이 갖춰져야 하는데, 저 분은 그런 요소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글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흑백논리도 그렇지만, 세상사란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게 아닌데 말이죠.

-뭐, 멀리 돌아갈 것 없이 명분이 그 자체로 힘이 되지 못하는 사례는 한국사에도 있지요. 이준 열사가 네델란드 만국평화회의에서 캐무시당하고 쓰러진 이유가 뭐겠습니까?^^
Commented by 카린트세이 at 2007/01/23 12:28
2차대전, 베트남전, 유고내전, 이라크전 등이 '국익' 때문이 아닌 단지 '명분'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기 힘들군요.. 히틀러나 토죠가 부르짖었던 레벤스리움이나 대동아공영권같은 허상의 낱말이건 아시아 공산화 저지라는 슬로건이였건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실행하는 나라들의 이익을 '보장' 하고 '증대'하지 않던가요?? 그것이 인민대중의 보편적인 이익이였건, 국가지도자들의 국정에 도움을 주는 행위였건 인민대중, 혹은 국가운영자들이 그것이 '자신들의 국가' 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들' 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어떤 정책에 호불호를 표한다면 이미 그 자체로 '국익을 위한 행동' 이 되지 않을까요??

2차대전이 악과 선의 대결이라고 표현하신것도 좀 걸리는군요.. 오랫동안 쌓여왔던 신흥세력의 불만이 구세력들에게 적나라하게 표출된것이 2차대전 아니였던가요...?? 단지 그 '신흥세력' 이란 자들이 사용한것이 '군국주의' 라는 도구일 뿐이겠지요.. 군국주의가 악이고 민주주의가 선이라는것에는 동의하겠습니다만 단지 그것들만을 보고 2차대전을 선과 악의 대립이라고 표현하는건 사태를 엉뚱한 시점으로 단순화하는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지킴이 at 2007/01/23 15:19
크게는 자유주의자 계파, 부분적으로는 스테이트 모랄리스트인가... 민주제가 독재제보다 덜 호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마이클 도일 말처럼 “민주국가는 다른 민주국가와 전쟁을 잘 벌이지 않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하긴 하죠. 원인이 정말 민주제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명분이 국제정치체제에서 현실적으로 유용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도덕은 현실적 권력입니다. 현대국제정치체제에서 “강자는 가능한 것을 주장하고 약자는 그에 따를 뿐"이라며 멜로스에 개입(이라고 쓰고 침공이라고 읽는다)하던 어떤 ‘민주주의’자들의 전례를 따르긴 힘들죠. 그러나 위의 주장이 “힘이 전부다.”는 일부 극단적 회의론자들의 주장보다 더 위험해보이는 이유는 절대악-절대선 개념 때문입니다. 배경 문화나 종교, 언어,민족 등이 천차만별로 다른 국가들끼리 어떤 공통된 가치관이나 공통된 선악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현실적으로 공통된 가치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면 초국가적 조정 기구에 대한 논의도 현실성을 가질 수 있겠죠. 궁극적으로는 군대가 아닌 말이나 증명으로 싸우는 국제사회체제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슈퍼리바이어던'의 세계라...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실효성을 가지는 도덕은 "니 일에 참견 안할테니, 내 일에도 참견마오"라는 국가주권 원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종종 무시되고 재해석되기 마련이고. 국가주권원칙을 부정하는 스테이트 모랄리스트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신선하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 기준을 모색해야만 하지 않겠느냐."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동의해드리겠습니다.그러나 개인들끼리의 폭력이 단순히 주먹으로만 행사되지않듯, 국가들끼리의 폭력도 단순히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ak소총 같은 물리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언어폭력도 있고 왕따도 있고 공개비난도 있고... 방법은 많죠. 명분은 현재 유효한 폭력 도구의 하나로 쓰이고 있습니다. 공통된 가치판단기준이 없기에-좀더 정확히 말하려면 공통된 가치판단 기준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초국가적 폭력주체가 없기때문에-제각각 자신의 가치판단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거죠. 이 또한 폭력의 다른 형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북한을 객관적 절대악처럼 규정한 님의 글이 그 한예가 될 수 있겠네요. 근데 왜인지 고도의 낚시에 걸린 것 같은 찜찜함은 뭘까.... ㅡ_-;;
Commented by rumic71 at 2007/01/23 16:00
'공통된 가치판단 기준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초국가적 폭력주체' 가 실존하지는 않지만, 웬만큼 힘있는 국가들은 다 그것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3 16:28
명분'만'으로는 힘이 될 수가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힘이 곧 정의다.'라는 주장이나, 명분이 마치 그럴듯하게 의도를 숨기는 것이나 자기를 정당화할 뿐이며, 다른 국가에는 다른 정의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3 16:33
그리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현재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영국이 이기고 냉전에서 미국이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옳은 것에 일종의 "힘"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즉 미국이 이겼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옳았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Commented by 444← at 2007/01/23 17:29
teferi님/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진 알겠는데, 근거로 드신게 굉장히 추상적이라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 2차 세계대전에서 옳은 것에 작용한 '일종의 힘'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수 없으신지요(혹은 예시라도).

-소년만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명제입니다만, 힘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하지만 힘이 없고(혹은 믿을만한 빽이 없고) 능력없는 자가 내세우는 정의는 무력하게 스러질 뿐이지요. 강대국이라면 모를까,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추상적인 정의를 관철하는 것보다는 자국의 이득과 보신을 우선하는 편이 100배 낫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전에 sonnet님이 쓰신

http://sonnet.egloos.com/2921959

이 포스팅에 언급된 것 같은 사태가 일어날수도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페페 at 2007/01/23 17:41
teferi 님의 말을 들으니 부쉬 대통령의 이 말이 떠오르는군요.

파월과 부쉬와의 대화에서..


부쉬는 다른 국가들이 대테러전쟁에 대해 조건을 제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리만 남아 있는 그런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

" 그래도 상관없소. 우리는 미국이니까."


- Bush at war -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3 19:04
444←/2차 세계대전에서는 확실한 명분이 미국 국민의 결집을 유도했다고 보았습니다.
힘이 없는자가 내세우는 정의는 스러진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례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고통을 받았지만, 역시 명분을 갖지 못한 소련도 고통을 받았죠.

페페/아들 부시는 미국의 명분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죠. 원래 미국을 강하게 만들었던 명분은 http://sonnet.egloos.com/2518052http://sonnet.egloos.com/2497122 에서 나와 있다고 봅니다. 미국 혼자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일방주의적 명분이 아니라, UN과 다른 국가들의 합의, 그리고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원칙에 기초한 명분이 미국의 힘이죠.
Commented by 페페 at 2007/01/23 20:23
teferi 님이 말씀하신 sonnet님의 링크 2개는 명분이 아니라 현실주의 외교논리에 근거한 견해인거 같습니다만?

저걸 정의라는 이름의 명분으로 읽으시면 sonnet님이 심히 곤란해 하시지나 않을런지 걱정이 슬쩍 됩니다.
Commented by 지킴이 at 2007/01/23 20:26
흠..."국제사회에서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이 이겼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옳았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라. 멋지군요. 로마인들이나 몽골인들이 들으면 무척 기뻐하겠는데요. "야, 옳았기때문에 이긴거래~." 강자의 승리와 기존 패권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사회적 다위니스트들도 차마 저런 도덕적 정당성까지 바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요, 카르타고 인들이 멸망한 것은 몰록신에게 아이들을 산제물로 바치는 비도덕적 만행을 저질렀기때문이겠죠. 국제사회에 절대선이나 절대악 같은것은 없습니다. 적과 친구(라고 쓰고 적의 적이라고 읽는다)가 있을뿐이지. 그것도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처칠이 말했듯이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하면 악마와도 동맹협정을 맺는 거죠.실제로 영국은 그렇게 했고. 명분은 게임의 도구일 뿐이지, 게임의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 스스로 내놓을 카드를 줄이는 플레이어는 영원한 초짜이자 봉일뿐이죠.
Commented by 어부 at 2007/01/24 00:09
teferi님의 질의를 보면서 찜찜한(uneasy) 구석이 든다고 생각하는 분이 저 말고 또 계셨군요.
국제 관계에서 '옳으니까 이겼다'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군요. 국가간 불간섭주의 또는 침략의 선후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른 편이 힘이 센'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겠죠. 전 그런 이유에서 '옳으니까 이겼다'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7/01/24 01:01
사실 처칠이 그리 한 덕에 영국이 나중에 뒤통수를 맞았습니다만...(미그기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4 10:07
읽으면서 뭔가 뒤죽박죽인것 같은 느낌이 오는군요....
확대해석과 아전인수의 결정판인건가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4 11:59
옳았기 때문에 이겼다는 표현이 오해를 낳은 것 같은데요. 단기적으로는 윤리와 명분이 효과를 가지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윤리와 명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로마인과 몽골인을 말씀하셨는데, 로마인은 패자조차 설복시키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지만 몽골인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몽골인은 짧은 기간동안만 패권을 유지했고 로마인은 긴 시간동안 패권을 유지한 것이죠.

마치 기업의 윤리경영과 같습니다. 윤리경영의 효과는 실증이 되어 있지요. 기업은 윤리를 기업의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돈을 벌려다 보니 윤리가 나오게 되었고 윤리를 신경쓰니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실증적 접근이 당위적 접근과 만난 것이죠. 국가 간의 관계도 이와 같아서, 장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니 윤리를 신경써야 하게 되고 윤리를 신경쓰니 장기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실주의 외교논리라고 하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장군의 핵정책이나 아버지 부시의 이라크정책도 역시 현실을 쫓아가니 명분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돈을 벌려니 윤리를 지키게 된 기업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미국은 핵위협을 받고 싶어하지 않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니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의 불만을 달래 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 핵을 막으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힘이 결국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현실을 관찰한 결과 알게 된 것인데, 이는 당위의 문제에서 따지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지 않습니까? 내가 핵으로 위협받고 싶지 않으면 남도 역시 핵으로 위협받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현실에서는 핵을 가지려는 욕구로 이어지고, 그러한 욕구를 막으려고 해도 단기적으로는 막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런 욕구의 분출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결국 핵을 가진 것이나 가지지 않은 것이 무차별해져야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가 굳이 핵을 가지려고 애를 쓸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고 또한 세계 각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에 있어서 절대적인 "선"이라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4 12:13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명분에 집착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명분으로 회귀하게 되는 동력을 알아야 하고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분을 가졌다고 자동적으로 힘이 주어지지는 않기에 우리가 힘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을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이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긴급상황에서는 모든 불법을 예방한다는 법 논리도 있기에 긴급상황에서는 유연한 대응을 해야 하지만, 황금률에서 벗어난 행위는 장기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힌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긴급상황에서 벗어나면 손상된 국익을 복구해야 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4 20:01
teferi/....;;;

거창한 단어는 굉장히 많이 사용하셨지만 대체...
Commented by gibril at 2007/01/24 22:17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지간히도 사악했던 모양이군요. 그러고보니 '아시아의 해방'과 '백인들의 야욕 저지'라는 정의가 있었기에 대일본제국이 아시아를 석권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근데 찜찜한것도 당연한게 '내가 당신 사상검증을 좀 해야겄는데 다 나라 위해 그러는거니까 닥치고 참으삼' 같은 소리가 곱게 들리면 그게 이상하죠.

하기야 생각해보면 sonnet님이 참 매국적인(?) 발언을 많이 하셨습니다. 당장 생각나는것만 쳐도 -
: 바로 아랫글에서 현 집권세력을 '덜 노골적'이라고 말하며 친북 노선을 외치는 극좌파와 분리해서 카테고라이징하셨음.(노빠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친북 좌익 정권을 옹호하려는 교묘한 술수)
: 어느분과의 논쟁에서 왜 김정일 정권과의 협상해야 하는가를 강조(개정일과 협상해서 개정일 정권을 연명시켜주자는 수작. 골수 친북의 본색을 드러냈다!)
: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의심할 여지 없는 반미주의자!)

이와같이 반미친북노빠를 고루 갖추셨으니 이 어찌 매국이 아니겠습니까(웃음) 구태여 성향으로 따지면 저쪽과는 반대편에 가까운 제가 보기에도 그런데 업계 전문가들의 눈으로 보면 더욱 많이 나오겠지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4 22:49
gibril/ (^_^)b 멋진 분석(?) 이십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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