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도 종종 들려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teferi씨께서 모 게시판에서 제 앞으로 다음과 같은 공개질의서를 올려놓으셨더군요.
읽어보았더니 우선 예로 들어주신 사건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이상하더라는 것이 저의 첫 감상입니다. 어쨌든 제가 업무상 오늘은 좀 바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평은 내일 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핵문제에서 명분의 중요성과 sonnet님에 대한 질문
국제관계에서도 명분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유고 분쟁, 이라크전에서 밝혀진 사실이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군국주의라는 절대악과 반 파시즘이라는 절대선이 대결한 전쟁이 아니었다면 과연 미국과 영국의 국민이 전쟁을 하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소련이 단지 스탈린의 공포정치 때문에 국민들을 모질게 전쟁에 내몰 수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에서는 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에 연합국의 전 국민은 일치단결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베트남 전쟁에서는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옳았지만, 그 명분을 알리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전쟁을 버텨낼 수가 없었고 전쟁에서 행동도 베트민을 공격하지 못하고 호치민 루트도 직접 봉쇄할 수 없는 제약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처럼 전 국민의 합의 하에 전시체제에 들어가고, 베트민과 라오스로 쳐들어갈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면 베트남전쟁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냉전과 유고 분쟁은 그에 반해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에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은 악의 제국이 맞았고, 그렇기에 전 국민과 미국의 동맹국이 일치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유고 분쟁도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들로 인해서 비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은 세르비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종청소를 당해서 죽었을 것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인 것 입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명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전쟁에 협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로도 이라크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나, 그 이유 자체가 미국 국민들과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기 때문에 언급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가이성으로 국가이익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다는 가설은 위에 열거한 전쟁에서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냉전시대에 도미노현상을 막기 위해 일으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 이익 자체가 실존하는 지도 알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시민 자체가 그런 국가 이익에 대해서 자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주국가의 시민을 동원하려면 전쟁에 나서는 드러난 이유, 즉 대의명분이 온전해야 하며, 국가의 힘은 그러한 명분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명분은 그 명분을 보는 다른 나라의 행동도 제약합니다. 명분은 국가이익의 추구를 합리화하려는 자기합리화의 구실뿐만이 아닙니다. 명분이 곧 힘인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핵위기에서도 역시 명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명분과 전략전술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북한에 명분이 없더라도, 북한에 대해서 전략전술적인 유연함을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악의 제국인 소련과 협상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소련은 무너뜨려야 할 악의 제국이었더라도 전략전술적으로 국가안보라는 상위의 목표를 위해서 협상해서 안보위협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아무 정당함이 없고, 대한민국과 그 동맹국 미국에 안보위험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과 하는 것이 동일하다면 북한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서 전쟁쪽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정당하며 북한이 그에 대해 반격을 하는 것조차 부당한 일이라고 할 지라도 현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안보위험을 가지기 때문에 북한과 협상해서 전쟁위험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명분이 확실하다는 것이 전략전술적으로 유연함을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될 수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략전술적으로 유연함을 추구하는 것이 명분의 후퇴를 의미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애시당초 핵을 만들 권리가 없었고, 정권을 유지할 권리와 군대를 유지할 권리조차 없는 것입니다. 한국은 임시정부의 적통을 잇고 한반도에서 유엔총선거를 거친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이것이 보수세력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반면에 북한은 애초에 권력을 잡는 과정이 흑백선거라는 부정한 선거를 거쳤기에 무효이고, 그러한 불법적인 권력으로 동족을 상잔하는 6.25를 일으키고 6.25 이후에도 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그 주민은 굶주리게 하고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했기에 결과적인 정당성도 없습니다. 실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의 적이요 같은 민족을 상잔하는 전쟁을 일으켰으며 북한지배하에 있는 우리 민족을 굶기고 인권을 유린한 민족의 적이며 세계평화와 인권보장추세에 역행하는 전 인류의 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대한민국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정해야 하는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사실이고 또한 외국인들이 유엔동시가입이라는 외형에 현혹되어 북한을 주권을 가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나서서 가르쳐야 할 사실인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전략전술에 대해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그 동맹국 미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서 강경책도 있을 수 있고 유화책도 있을 수 있으며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협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전술은 위에서 말한 명분의 확고한 바탕위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처럼 우리의 힘은 제약당하고 상대의 힘은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몇몇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동맹국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비판하면서 북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그것이 북한의 핵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동맹국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험하게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 만드는 것을 미국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항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sonnet님은 부시의 정책이 북한의 핵을 만드는데 김정일에 이어서 2번째로 책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전략전술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온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마치 김정일이 조건부로 정당성을 갖추게 되는 것처럼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부시가 쓴 정책을 쓸 때는 핵을 만들 정당한 권리가 있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핵을 만들 권리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논한 명분의 후퇴에 해당하며 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주장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은 부시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북한이 자위를 위해서 핵을 날려도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게 되는 아주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sonnet님이 그 주장의 확실한 뜻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부시가 북핵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북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까? 북한이 미국이 협상을 선택하건 전쟁을 선택하건 핵을 만드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사상검증성 질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명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저의 무례한 질문도 정당성을 가지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