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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
어제 받은 공개질의(?) (teferi) 에서 트랙백


0. 들어가기 전에

국제관계에서도 명분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유고 분쟁, 이라크전에서 밝혀진 사실이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teferi)

말씀해주신 내용을 곰곰히 읽어보았는데, '명분'이라고 하신 내용은 사실 '선전선동(propaganda)'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국제관계에서도 (그리고 물론 국내정치에서도) 선전선동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열거해 주신 사례들은 그 자체로 주장하시는 내용을 반박하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결론을 정해놓고 자료들을 마음에 드는 쪽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지요.


1. 첫번째 예시, 2차대전

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군국주의라는 절대악과 반 파시즘이라는 절대선이 대결한 전쟁이 아니었다면 과연 미국과 영국의 국민이 전쟁을 하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소련이 단지 스탈린의 공포정치 때문에 국민들을 모질게 전쟁에 내몰 수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에서는 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에 연합국의 전 국민은 일치단결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teferi)

우선 영국과 미국은 1차대전 때 파시즘-군국주의를 상대로 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군이 솜(Somme)전투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학살극은 2차대전 때의 그 어떤 전투도 따라오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과연 미국과 영국의 국민이 전쟁을 하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란 의문에 대한 답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카이저의 제국이 짜르의 제국보다 더 악랄하다고 하긴 힘들겠죠.

게다가 2차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은 스탈린의 소련과 손을 잡았지요. 단지 히틀러를 공동의 적으로 두고 있다고 해서 스탈린이 절대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즉 이미 말씀하신 '명분'이란 것은 실제로는 필요에 따라 조작되는 전형적인 '선전선동'임이 잘 드러나는 셈입니다. 미어셰이머의 책에는 미국의 경우 이와 같은 선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에 조금 소개해 봅니다.

권력적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원칙과 엇갈리는 경우, 보도담당 보좌관들(spin doctors)이 자유주의적 원칙과 합치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보자. 19세기 말엽 미국의 엘리트들은 독일을 진보주의적 헌정(憲政)국가로서 모방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미국과 독일의 관계악화로 말미암아 1차 세계대전 이전 약 10년 전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1917년 4월 미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당시 미국은 독일을 유럽의 다른 적대국들보다 더 독재적이며 군국적인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많은 미국인들은 스탈린의 살인적인 국내정책과 더불어 1939년 8월 스탈린이 나치독일과 체결한 독소 불가침 조약에 영향을 받아 소련을 악마의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년 말 미국이 독일제국과 전쟁에 빠져들게 되자 미국은 새로운 동맹국이 된 소련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전개했으며 소련을 자유주의의 이상과 양립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될 수 있게 하였다. 소련은 이제 민주주의의 한 전형으로 인식되었으며, 스탈린은 “조 아저씨”(Uncle Joe)가 되었다.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78-79)



2. 두번째 예시, 베트남 전쟁

반면에 베트남 전쟁에서는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옳았지만, 그 명분을 알리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전쟁을 버텨낼 수가 없었고 전쟁에서 행동도 베트민을 공격하지 못하고 호치민 루트도 직접 봉쇄할 수 없는 제약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처럼 전 국민의 합의 하에 전시체제에 들어가고, 베트민과 라오스로 쳐들어갈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면 베트남전쟁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teferi)

베트남전은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 지도부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오판이었고, 그 실패는 선전선동을 하는데 소홀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베트남전의 설계자로 악명을 떨친, 당시 미국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베트남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우리([케네디-존슨 행정부]의 사람들)는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지정학적 의도와 행동이 [미국]에 초래하는 위험을 과대평가했다... 우리는 [베트남] 정부의 정치적 능력을 전적으로 오판하고 ...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민족주의 운동을 전적으로 과소평가했다... 우리의 오판은 지역민족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정치에 대한 무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군사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에 [베트남]에의 개입에 관한 솔직한 논의에 [미국민]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개입 후에도,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무서운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Robert McNamara with Brian VanDeMark, In Retrospect: The Tragedy and Lesson of Vietnam, Random House, New York, 1995, pp. xvi, 321-322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솔직하게 미국민에게 제대로 알렸다면 빨리 포기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을텐데 끝까지 부인하며 우기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다는 것이 맥나마라의 결론입니다.

주어진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 나는 우리가 디엠 대통령의 암살로 들썩이던 1963년 말이나, 남베트남에서 정치적 군사적 취약성의 증대에 직면했던 1964년 말에서 1965년 초 사이에 철수할 수 있었고 철수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왼쪽 표에 정리해 놓았듯이 철군이 정당화될 수 있는 최소한 세 번의 기회가 더 있었던 것이다.

McNamara, Ibid, pp. 320

미국이 베트남의 주변국까지 전장을 무제한으로 넓혔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 이야기는 지금 이라크의 게릴라전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란과 시리아에까지 쳐들어가면 이라크전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주장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50만이 넘는 병력을 배치하고도 고질적인 병력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전장을 그보다 훨씬 넓혔다면 병력부족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그러한 확전이 냉전 당시 최대의 기피대상이던 강대국간의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능성은 단순한 추측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상대측으로부터 공개적인 위협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미국이 중국과 대전을 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과 미 국방부의 결정에 달렸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에 그 어떤 환상도 갖지 않는다. 미제국주의가 한사코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하려 한다면 일찍 쳐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이 내일이라도 쳐들어오면 환영하겠다. 모든 반동파들이 그들과 함께 오라고 하라! 최종 승전할 자는 우리다. 우리는 미제국주의가 쳐들어오기를 16년동안 기다리느라 머리가 다 희었다. 미제국주의가 중국 대륙으로 쳐들어온다면 우리는 모든 필요한 수단을 취하여 그들과 싸워 이길 것이며 그때 전쟁에 그 무슨 한계가 있을 것인가?"
(1965년 9월 29일 중국 외교부장 천이의 내외신기자회견 중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외교적 위협을 무시하고 38선을 넘었다가 대대적인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패를 당한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었지요. 따라서 베트남전에서는 신중한 타협으로 나왔고 바르샤바 미-중 대사급 회담 등 다각적인 외교접촉을 통해 양국이 개전으로 확대되지 않는 베트남전 지원 수준에 대한 양해사항을 상호확인하는 절차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주효해 베트남전이 미-중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중국이 감히 미국에 맞서 정말로 전쟁, 특히 핵전쟁을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핵전쟁의 가능성이 5%도 안된다고 생각되던 쿠바 사태 당시에도 정면 충돌은 옵션이 아니었던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수십 년간의 내전 끝에 피폐해진 중국을 간신히 통일한 직후, 핵무장도 못한 상태에서 미국과 전쟁에 나섰던 지도자 마오쩌둥이었던 것입니다.


3. 세번째 예시, 냉전

냉전과 유고 분쟁은 그에 반해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에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은 악의 제국이 맞았고, 그렇기에 전 국민과 미국의 동맹국이 일치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teferi)

...... 그런 식이라면 이 세상 모든 걸 전부 다 명분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군요.(한숨)

레이건이 냉전 말기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신냉전의 회귀는 데탕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서유럽 동맹국들과 미국 사이에 상당한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80년대 서유럽은 중성자탄의 서유럽 배치에 격렬히 반대해서 이를 관철시켰고, 중거리 핵무기 분야에 있어 NATO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지상발사 토마호크(GLCM)와 퍼싱2 미사일 배치에 대해서도, 소련과의 군축협상을 병행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관계를 본다면 80년대 전반의 신냉전이 동맹의 일치단결을 일궈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아, 하긴 레이건의 행동이 어떤 동맹국 지도자들에게는 가뭄 끝의 단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지 얼마 안 되어 미국의 공개적인 승인표시를 갈망하던 전두환 장군 같은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주한미군의 철수 결정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한미관계가 레이건의 전두환 정부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함께 호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었을 뿐이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전반적 관계나 세계적 냉전의 흐름에서도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미국과 소련이 힘을 겨룬 냉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가장 대결이 격렬했던 것은 194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이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가 아닙니다. 80년대에는 정상회담을 위시한 외교도 활발했고 무역도 계속 증가했으며 군축협상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냉전의 위대한 승리자로서 떠받들어진 레이건 신화는 사실 수상쩍은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4. 네번째 예시, 유고 내전

유고 분쟁도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들로 인해서 비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은 세르비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종청소를 당해서 죽었을 것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인 것 입니다. (teferi)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던 인종청소 분쟁들, 예를 들면 르완다 학살이라든가 다르푸르 사태 등에도 그런 설명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무정부상태에 빠진 민중들을 돕는다는 좋은 명분을 갖고 있었지만 꼬리짜르고 도망가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소말리아 개입은 또 어떻습니까?

유고 내전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유고연방이 유럽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었더라면 아무도 본격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명분보다 지정학이 훨씬 결정적이었던 전쟁이었습니다.


5. 다섯번째 예시, 이라크 전쟁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명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전쟁에 협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로도 이라크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나, 그 이유 자체가 미국 국민들과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기 때문에 언급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teferi)

이라크 전쟁의 문제는 명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사담 후사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지만 걸프전은 성공한 전쟁으로 추앙받고, 이라크전은 수렁에서 허우적대면서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걸프전 때 제거하지 못했던 잔인한 독재자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것이 바로 이라크 전쟁 아니었던가요?

그것은 전쟁을 제때 끝낼 수 있는가 하는 점과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원래 전쟁이란 것은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은 법이지요.
걸프전은 전쟁의 목적을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낸다"라는 것으로 좁고 명확하게 정의해서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지만, 이라크전은 민주화된 이라크를 만들겠다는 추상적이고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끝내기 힘든 것입니다.
군대는 적군을 살상하고 파괴하는 것이 본업이지 말도 잘 안통하는 이방인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나라를 세우는 것이 본업은 아닙니다. 미군은 확실히 전문적으로 훈련된 우수한 군대이지만 전적으로 부적절한 과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저렇게 곤혹스러운 상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이 왜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부시행정부의 국무부 정책실장이었던 리처드 하스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는 결코 제국의 역할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국민들은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불가피한 전쟁'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더라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한 지나치게 값비싼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한, 보스니아와 코소보 개입과 같은 '선택에 의한 전쟁' 역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값비싼 '선택에 의한 전쟁'은 결코 지지받을 수 없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고, 현재 이라크 전쟁 역시 그럴 조짐이 보이고 있다.

Haass, Richard N., The Opportunity: America's Moment to Alter History's Course, Public Affairs, 2005
(장성민 역,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 서울, 김영사, 2005 p.33)

teferi씨는 '명분'을 선전선동해야 하는 이유를 들면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처럼 전 국민의 합의 하에 전시체제에 들어가고, 베트민과 라오스로 쳐들어갈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었으면 베트남전쟁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2차대전은 세계의 운명을 건 강대국들의 결전이라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했던 반면, 미국인들이 실제로 경험했듯이 베트남전은 때려치고 나온다 하더라도 본토의 미국인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게 될 불가피한 전쟁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알량한 명분을 아무리 선전해 봐야 장기적으로는 먹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6. 중간정리: 그럼 우리는 선전선동 대신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자 이렇게 확실한 명분=선전선동이 승리의 첩경이라며 teferi씨가 제시했던 예들을 하나 하나 검토해 본 결과,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신빙성있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근거로 제시된 베트남전 등은 요란한 선전으로 주입되는 소위 '명분'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는 남 베트남의 민중과 지도자들을 우리 자신의 경험을 잣대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들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그 나라의 정치세력을 완전히 오판하고 말았다.

McNamara, Ibid, pp. 320

결국 자신들이 선전했던 '명분'을 어느 새부터 진실이라고 믿어버렸던 것이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횡액을 가져다주었던 셈입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다음은 레바논 내전에 말려들어 수백 명의 해병대원이 폭사하고 치욕적인 철수를 단행하기에 이른 사태에 대한 콜린 파월 장군의 회고입니다.

국무부 사람들이 말한 소위 '중재 병력'으로서 해병대가 베이루트 공항 근처에 배치되었다. 해석하자면 해병대는 레바논 군대와 이에 맞서 샤우프 산맥에서 시리아를 업고 싸우고 있는 시아파 군대라는 두 화약통 사이에 끼여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와인버거는 처음부터 해병대를 몰아넣는데 반대했지만 백악관의 정책 논쟁에서 맥팔레인과 슐츠 국무장관에게 지고 말았다.
나는 군대가 피를 흘리는 결과를 낳게 마련인 외국에 대한 간섭을 국무부 관료들이 '주둔', '상징', '신호', '선택의 여지 제시', '신뢰 회복' 따위의 말들로 말끔하게 표현하는 것에 강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속에 확고한 임무가 숨어 있다면 이렇게 표현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마치 진흙을 깨끗하게 보이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사용된 적이 너무 많았다.
(중략)
국방부 내 자리에서 볼 때 미국은 그저 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벌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해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 적어도 부모나 부인, 혹은 자손들이 왜 자기 가족이 죽어야 했느냐고 물을 때 그들을 쳐다보고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인명을 담보로 삼아서는 안된다.

Colin L. Powell, My American Journey, 1995
(류진 역,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p.468)

진흙을 깨끗하게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말처럼 선전선동에 이용되는 대의명분을 잘 묘사하는 말도 찾기 드물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대신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성공적으로 끝난 대규모 군사작전의 사례인 걸프전을 봅시다. 걸프전 성공의 배경에는 처음엔 와인버거의 원칙(파월은 와인버거의 군사보좌관이었음), 그리고 나중에는 파월 독트린으로 더 유명해진 보수적인 즉 신중한 군사력 운용의 원칙이 있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레이건이 재당선된 후 와인버거는 11월 28일,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했다. 나는 '언제 미국 전투 병력을 해외에서 활용할지를 고려할지'에 관해 그가 제안한 기준들을 직접 듣기 위해 동행했다.
(1) 우리[미국]나 우리[미국]의 동맹국의 중대한 이해가 위태로울 때 투입한다.
(2) 투입하게 될 경우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3) 뚜렷한 정치적, 군사적 목표가 있을 때에만 투입한다
(4) 전쟁이란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목표가 바뀌면 병력 투입에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5) 미국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입한다.
(6) 최후의 방편으로서만 미국 병력을 투입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의 이해가 위태로운 지경인가 물어서 대답이 예라면 들어가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에 머문다는 것이다.

Colin L. Powell, ibid, pp.412-413

한번만 살펴보면,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은 결국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대의명분이나 선동성 구호, 국익에 치명타를 가할 수 없는 작은 문제들에게 휘말려들어 수렁에 빠지는 사태를 극력 피하기 위해 설계된 원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앞서 보았던 레바논 내전에 대한 파월의 경험, 그리고 스스로 참전했었던 베트남전에 대한 반성이 깊게 반영되어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럴 듯한 혹은 설득력있는 명분을 내세운 선전선동술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꼭 필요할 때만 쓴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전선동술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 지옥행 편도티켓으로 작용하곤 했습니다.

저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은 명분을 선전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가 시도하는 명분을 내세운 선전선동에 쉽게 속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신중함과 건전한 회의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7. 끝으로

쓰다보니 꽤 길어진 감이 있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대망의 제2부 충격! sonnet 사상검증(?)편에서 하도록 하지요.
by sonnet | 2007/01/25 02:10 | flame!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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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이얼레인의 얼음집'▽'♡ at 2007/01/25 08:09

제목 : 명분이란 말이 싫어요.
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에 대한 트랙백. 뭐 간단한 이야기지만. 올바른 판단은 올바른 근거들이 논리적으로 결합될 때만 나옵니다. 대부분의 propaganda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일부의 근거들을 생략하고, 일부의 근거가 잘 보이도록 압축해서 사용되었던 게 보통이었습니다. 대중에 대한 설득의 도구로서 효율-_- 적인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편한 길 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니까요. 하지만......more

Tracked from 몽상을 담아놓은 곳 at 2007/01/25 15:49

제목 : 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보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teferi씨께 답하다 #1 사례검증편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은 명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분 [名分] [명사] 1 각각의 명의(名義)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군신, 부자, 부부 등 구별된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을 이른다. 2 일을 꾀하는 데에 있어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 ≒이름 국제관계에 있어서 명분이라고 함은 2번의 뜻이 되겠지요. 즉 어떤 일을 행할 때 내......more

Linked at 아이군님의 이글루 : 진보 진.. at 2010/01/22 18:03

... 박근혜가 야당처럼 보이는 이유이 글에 대한 반론은 사실 http://sonnet.egloos.com/2952424 http://sonnet.egloos.com/3030707이것과 거의 일치 합니다. 노정태 님이 원칙 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의 상당수는 사실 ... more

Commented by 에이왁스 at 2007/01/25 09:47
선전선동술, 명분의 제공 등은 전쟁(또는 전투)라는 비이성적이고 동물적이며 폭력적인 행동을 견뎌낼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입하는 마취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 처럼 선전선동술은 제공받는 사람에게 있어서 '지옥행 편도티켓'이 될 확률이 매우 높지요. 내가 믿는 사상과 신념이 누군가의 목적달성에 도구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서늘함과 불쾌함을 느낍니다.

정의의 편에 섰다는 것만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나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5 10:06
생각해보니 파월 독트린은 지도자동지에 의해 참 깔끔하게 무시 되었군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7/01/25 10:27
확실히, 선전선동은 누군가가 그것이 단순히 "도구"임을 잊어버리고 "주화입마"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구로서도 상당히 위험하군요.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7/01/25 10:48
"도구"로서 잘 쓰여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냈다면" 잘 된거겠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그 때부터는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늘어나고,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와, 그 사례로 말미암은 결과들이 지극히 부정적이라는 점이 안습이구요 ㅡㅜ 하지만( '') 일단 우리 교육에서부터 "도구 이상"의 것으로 가르치고 있고(초등교육부터!!!) 더해서 국가보안법은 도구를 도구로'만' 보면 여차할 경우 위법행위로 몰아갈 수 있는 애매함을 가지고 계시니 우울할 뿐입니다.

...뭘 해야 이걸 좀 해결할 수 있을까효. 아호.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7/01/25 10:51
서유럽의 중성자탄 배치 극렬 거부 이야기를 들으니, 83년인가 국내 신문 사설에 나온 중성자탄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_-;;;
Commented by shaind at 2007/01/25 11:12
윤민혁 // "중성자탄이라서 괜찮다"는 사설 말이죠? 이 블로그에도 올라온적 있는 것 같은데...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07/01/25 11:23
페페님/"프로파간다에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핵무기보고 선이니 악이니 정의하는거나 똑같죠." 멋지신 표현입니다-_-b
Commented by 페페 at 2007/01/25 11:34
하이얼레인 < 아..이런 리플을 지웠는데 제 리플에 코멘트를 다셨네요. 복잡한 감정을 지닌 리플이라서 삭제 해버렸는데...;

핵무기보고 선이니 악이니 정의 한다라는 표현은 제 고유의 표현은 아니고 상국의 고승께서 먼저 설하신 법문입니다.

대승께서 가로되....

핵무기는 야훼께서 상국에게 내리신 축복이니 그것은 틀림없는 선이라고 논하셨죠.


다시 신께서는 스탈린과 모택동에게도 축복을 내리셔서 불신자들에게도 변함없이 따뜻한 그분의 사랑을 재차 증명하셨다고도 합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07/01/25 12:37
레이건 신화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인 SDI의 실제적인 효과는 어땠을까요? SDI를 통해 소련을 재차 군비경쟁에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소련의 붕괴를 불러일으켰다는 게 통설(신화)인데, (일본 전문가이긴 하지만) 찰머스 존슨은 '제국의 슬픔'에서 SDI는 소련이 1/10만 공격무기에 투자해도 돌파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낭비이자 신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존 루이스 개디스는 "새로 쓴 냉전의 역사"에서 냉전의 장기적 승패는 소련이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양대 산업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는 순간 결정지어졌다는 의견을 피력하더군요.

개인적으로, 레이건은 단순히 냉전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 즉 미국이 승리하는 순간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상당히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지킴이 at 2007/01/25 13:13
sonnet/ 와, 2편 사상검증편 기대합니다. 난 (타인의) 색깔검증이 제일 재밌더라. 특히 자아비판은 더더더. 구경만 하면 되니까요. 그래요, 저 사악합니다. :P

sonnet님의 해석에 동의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teferi님이 자신의 글에서 사용한 명분이라는 용어는 차라리 프로파간다로 치환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한정적 의미에서 명분=프로파간다 라고 쓰신 것이라면 동의하지만, 혹시 "명분이 곧 프로파간다다."라고 주장하신 것이라면 그건 반대합니다.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딴지 걸자면. 허구나 환상일 뿐이라도 사람들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것은 현실적인 힘을 가지죠. 더구나 그것이 정말 허구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정치에도 미약하게나마 도덕의 여지는 있어요. 명분이 단순한 '포장'이나 겉껍데기,구실, 또는 동원령에 불과하다면 지금까지 국제정치에서 작게나마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국가주권원칙이나 국제법, 관습 등 몇가지 원칙은 작용하죠. 현재 국제사회에서 공통가치기준에 대한 합의가 극도로 희박하고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국제기구들이 극도로 취약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공통가치기준이 존재한다고 믿고싶어합니다. 또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르고. 하버마스던가요? 보편이익은 허구나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보편이익이 존재한다고 전제하지않는다면 이런 토론이나 대화,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고. 국제사회에 프로파간다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특수이익뿐만이 아니라 보편이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서로의 믿음을 전제로 하는 거죠. 아니면 그냥 "내 이익을 위해서 닥치고 죽어주삼. 즐~."이러고 말지. 그렇다고 해서 명분으로 하는 싸움이 총칼로 하는 싸움보다 더 도덕적인 것은 아니지만요. 보편적으로 널리 퍼진 문화양식과 사고방식,정보기술 등은 현재 미국의 주요 권력자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명4 보세요. 헐리우드는 펜타곤만큼이나 강력한 '원더'입니다. :P
Commented by 페페 at 2007/01/25 15:37
지킴이 < sonnet님의 문맥적으로 보면 한정적인 의미로만 쓰신거 같다고 생각드는군요. 사실 명분론에 관해서 짤막한 리플을 저도 남겼다가 지워버렸는데 이러한 주제는 너무 거대하고 또 짧게 다루기에는 떡밥 분위기가 많이 나는 논의라서 한마디 하는 것 조차 너무 버겹더군요.

개인적인 가치관하에서 정의와 신념 그에 따른 행동사이에 모순점이 없다면 그 가치를 타인이 쉽게 재단하기 어렵죠.

어떤 것이 정의라고 분류하기도 어려운데 그러한 각자의 정의들의 집합..


" 정의의 집합은 과연 정의인가? "


정도의 논의까지 들어가면 말이 간단해서 좋지 최소 2천년은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로 밀어넣은 거대한 떡밥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teferi at 2007/01/25 16:19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서로 win-win을 하게 한 것이 바로 도덕과 윤리, 법이라고 봅니다. 윤리적 가치 역시 실리가 될 가치가 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리를 명분과 일치시키는 것이 현대민주국가에서 필요한 일인데, 그러한 일도 역시 윤리적 가치를 국가가 추구한다면 쉽게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미국이 단기적으로 볼 때는 베트남을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아무리 남베트남 사람들이 멍청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잔악하고 흉포한 공산주의자들 앞에서 수십만명이 재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살당하게 내버려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일까요.
Commented by 지킴이 at 2007/01/25 19:22
/페페
그렇죠?

/teferi
“윤리적 가치 역시 실리가 될 가치가 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리를 명분과 일치시키는 것이 현대민주국가에서 필요한 일인데, 그러한 일도 역시 윤리적 가치를 국가가 추구한다면 쉽게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일단 ‘국가가 추구해야 될 윤리적 가치’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대로 합의된 적도 없고. 합의된다 하더라도 실리와 명분을 일치시키는 것이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국제정치에서 실리와 명분은 대립관계는 아니지만 교환관계입니다. 정도의 문제죠.) 그리고 개인차원의 윤리와 국가차원의 윤리는 전혀 다릅니다. 님의 글에서 종종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국제공법과 국내법, 전체윤리와 개인윤리를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놓고 생각하시는 경향을 발견하는데, 각자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살인은 개인차원에서 별로 권장되지 않지만 국가차원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요.국제사회에서 몇가지 존중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이 있긴한데 그마저도 강제력을 가지진 못합니다. 정치적 비용을 증가시켜 방향성을 유도하는 간접적인 효력을 가지긴 하지만. 국내정치체제의 정부처럼 정통성을 가진 폭력주체가 없어요. 준무정부체제와 정부체제를 같은 연장선상에 놓을 순 없죠. 국내법적인 개념이나 제도를 국제법이나 국제제도에 단순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처럼 님의 글에서 종종 ‘정의로운 목적’을 위한 ‘개입’을 선호하는 경향을 발견하고 놀라고있는데, 국제사회에서 그나마 존중되는 명분이 있다면 국가주권원칙과 그에 따른 비개입원칙입니다. 솔직히 서로 윈윈하자며 명분과 윤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좋은 목적'을 위한 국가간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은 여기서 처음 보는군요. 비슷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국가주권원칙을 거의 신성불가침한 원칙처럼 생각하시던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5 22:46
에이왁스/ 예. 사실 저는 선전선동을 이겨낼 수 있는 백신 같은 것이 있었으면 할 때가 많습니다.

행인1/ 파월 독트린 자체를 구식군대나 하는 소심한 전술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곤 했죠.

shaind/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하이얼레인/ 해독제를 빨리 개발해야지.

윤민혁, shaind/ http://sonnet.egloos.com/1503220 를 말씀하시는군요.

BigTrain/ 기술적으로는 지금의 MD의 성과를 보면 20년 전의 SDI의 성공가능성은 역시 낮았다는 것이 될테고, 군비지출 면에서 보면 소련의 70년대 말과 80년대 군비지출은 급등세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평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CIA 소련분석국 요원 두 명이 소련붕괴후인 1990년대 중반에 쓴 Soviet Defense Spending -A History of CIA Estimates, 1950-1990-에 그 이야기가 상세하게 다루어지는데 제가 그 책을 본 느낌으로는 역시 별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킴이/ 이런 엔터테인먼트 제공입니까 (웃음)
그 질문은 전자가 맞습니다.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명분과 프로파간다의 관계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어와 동사의 관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의 머리 속에 숨어 있던 생각이나 신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국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명분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보면 역시 선전선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페페/ 떡밥을 잘 끊고 적당한 자리에서 정리를 해야겠지요 ^^

teferi/ 개인의 이상적인 희망과 국가와 사회가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좀 분리해서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t 2007/01/25 23:26
전 윤리니 명분이니 하는 것에 집착해 대실패한 사례가 바로 이라크전이라고 봅니다. 부시 대통령은 '악(evil)의 축'이라는 상당히 종교적, 도덕적 느낌이 드는 용어로 비난한 나라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다며 쳐들어가셨지만 결과적으로 자국 국민들을 3,000여명이나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1/26 09:33
펼/ 이라크 국민들도 수십만명을 하늘나라로 [해방]시켜 주셨지요.
Commented by Luthien at 2007/01/27 13:03
...고생하십니다. (후)
Commented by sonnet at 2007/01/27 16:56
펄/ 저도 동의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정치지형상 보수우익으로 분류되지만 그것은 미국 국내정책의 관점일 뿐이고, 대외 정책의 성향은 급진 이상주의의 그것입니다. 보수성향은 결국 status quo(현상유지)를 선호해야 하는데, 중동의 현상유지는 잘못이며 이를 홀딱 뒤집어놓겠다고 덤비고 있으니까요.

Luthien/ 회사에서 현시연동아리나 운영하지 말고 좀 도와 주던가(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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