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히요)에서 트랙백
이 논쟁은
우리에겐 왜 한미연합사가 필요한가?(김재창)에 대한 논평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히요)에 대해 일련의 반박과 재반박 -
허, 군국주의라고?(sonnet),
군국주의(히요),
현실주의, 군국주의(sonnet),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sonnet),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1 (sonnet),
전시작통권 소유상황에 관한 질문.(히요),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2 (sonnet),
작통권 환수 논쟁에 관하여. (히요),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3 (sonnet),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4 - 등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0. 들어가기 전에"상대 진영 무선 침묵. 참호선에도 병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호오, 잔반은 치우고 갔던가?"
"......"
1. 경제적 협력은 안보의 대안인가?정치/경제적 접근으로 '공생이 상호이익' 이 되도록 관계를 만들어 놓으면, 자기 이익을 놓치기 싫어서라도 공격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도발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일은 가급적이면 삼가고, 상호이익이 될만한 일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 전쟁 억제를 위해 더 효율적입니다. 그렇다고 군사력이 하나도 안 중요하단 말은 아니고, 다른 방면의 전쟁 억제에 주력하며 그와 함께 군사력은 북한보다 좀더 우위인 정도만 유지하면 되고, 작통권 돌아와도 쳐들어오면 미국은 개입하니까 보험도 그 정도면 됐다 이거지요. (히요)
이와 같이 경제적 협력으로 안보문제를 해결하고 전쟁억제를 효율적으로 달성한다는 구상이 히요씨가 지금까지 내놓은
유일한 구체적 정책이다.
그럼 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한 세기 전에 들불처럼 유행하다가 사멸한 이론이라고 본다.
19세기에 유행했던 철학사조인 고전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는 전쟁이 그들의 사업에 주는 악영향을 고려해 평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영국의 보호무역제도였던 곡물법을 500년만에 폐지시킨 리처드 콥든은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교역을 통해 번성하는 편이 낫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1840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세계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나는 세계가 무역을 통해 이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자유주의적 견해는 제1차세계대전 전야에 매우 고조되었다 노먼 엔젤의 고전을 포함한 많은 저서들은 전쟁의 비용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자유주의적 시각은 제1차세계대전으로 심각하게 신뢰를 상실했다. 은행가와 귀족들이 국경을 넘어 빈번하게 접촉했고 노동자들 역시 초국경적 접촉을 가졌으나 그 어느 것도 유럽의 국가들이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Joseph S. Nye Jr.,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Longman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한울 아카데미, 2000, p.71-72)
이러한 유행의 헛점에 대해서는 제프리 블레이니가 상세히 분석하고 있으니 한번 살펴보자.
19세기의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보급된 이 평화론에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다른 많은 설명들과 마찬가지로 이 이론은 너무나 많은 부분을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워털루 전투 이후 3세대에 걸쳐 지속된 장기간의 평화에 대해 사람들은 경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이 평화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즉 그들이 주목한 것은 국제평화가 산업주의, 증기기관, 해외여행, 더욱 자유롭고 번창하는 상업, 그리고 지식의 발달 등과(우연하게도) 일치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가 평화를 촉진하는 특수한 과정들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우연의 일치를 인과관계로 결론지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설명은 한 가지의 예 혹은 한 시대의 평화에만 근거한 것이었다. ...1848~1871년의 기간동안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들에 대한 그들의 설명도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 기간들의 전쟁들은 상대적으로 단기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워털루 전투 이후의 동세기에 발생한 대부분의 전쟁들이 단기전의 성격을 띠었던 것은 유럽에서 호전적인 정신이 퇴조해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대부분의 전쟁들이 단기전으로 그쳤던 이유는 문명적 요소들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평화의 철학자들이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했던 특수한 정치상황 그리고 새로운 기술적 요인들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평화의 철학자들은 전쟁을 간과함으로서 이러한 실수를 범한 셈인데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평화를 무시하고 전쟁을 연구하는 경향에 대한 중요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19세기에 평화의 원인으로 환영받은 대부분의 변화들은 오히려 평화의 결과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상과 사람, 상품들이 국경을 넘어서 쉽게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흐름이 평화를 촉진한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평화로운 시대가 부여한 혜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낙관적인 평가 그리고 문명이 승리하고 있다는 믿음 등도 19세기가 향유하고 있던 상대적인 평온함에 의해서 조장된 측면이 강하다. 만일 전쟁들이 좀더 길었거나 좀더 참혹했더라면 낙관주의가 그렇게 만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맨체스터 평화론은 목동의 뺨이 불그스레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목동이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돌팔이 의사의 진단과도 같다고 하겠다. 병든 목동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의 뺨을 붉게 만들기만 하면 된단 말인가?
국가간의 긴밀한 접촉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증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국가들을 연결하는 신속한 의사소통이 반드시 평화를 촉진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3세기 동안 대부분의 전쟁이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들 사이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인접한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논박하기는 어렵다. 내전의 발생 빈도를 보아도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끼리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쉽게 깨어지고 만다. 맨체스터 신조의 대부분의 변형들의 특징이기도 한 이상주의의 계보도 평화를 선호하는 영향력으로 쉽게 규정될 수 없다. 아마도 그 신조는 실제로는 이상주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38년 독일에 대한 체임벌린의 양보는 결국 부분적으로는 점증하는 독일의 국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그의 양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이상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론은 자명해진다. 맨체스터 신조는 전쟁과 평화 이론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맨체스터 신조가 강조하는 그러한 영향력들이 실제로 전쟁보다 평화를 더 촉진했는지의 여부도 확신할 수 없다.
영국계 미국인 경제학자 케네스 보울딩(Kenneth Boulding)은 분리되어 있는 지식의 영역들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을 연결하는 교량을 훌륭하게 건설한 사람이었는데, 멘체스터 형제애의 딜레마를 간접적으로 조명해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기술한 바에 따르면 “교환체제(exchange systems)가 경제학의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협 체계(threat systems)는 정치학의 기초이다.” 멘체스터의 이상주의자들은 교환을 강조하면서 위협의 중요성은 극소화했다. 그들은 인류가 악보다는 훨씬 더 많은 선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점차로 문명화되어가고 있는 세계에서 위협이 불필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들은 위협이란 허물어져가고 있는 전제적인 구질서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에 의해서 무기로 사용되는 공개적인 또는 은밀한 위협들을 경멸했다. 따라서 그들은 무력이나 위협에 의존하는 짜르나 독재자에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 같은 이유로 노예제도, 농노제도, 군국주의 그리고 가혹한 형벌 등에도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지옥이라는 관념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는데, 지옥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협이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비록 전제국가보다는 훨씬 더 은밀하고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민주적인 국가들도 위협이나 무력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강성하고 해양의 존재로 인해서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만이 지성적이고 상업적인 자유가 가장 잘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민주적인 정부형태에 대한 앵글로색슨 민족의 선호 경향은 해양이 제공해 주는 군사적인 안보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영국은 강력한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에는 잠정적으로 많은 민주적 절차들을 포기했다.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처칠과 그의 전쟁내각은 18세기의 전제정치시절 만큼이나 많은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제적인 사건들은 몇몇 선호된 지역의 사건들에서 발견되는 업적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라는 맨체스터 신조의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맨체스터의 신사들은 국제평화의 성지를 향해 꾸준히 행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나긴 행렬에 경의를 표하면, 성화 봉송자의 횃불은 보고 있었지만 그 뒤를 따라서 행진하는 검투사들의 밀집 대열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Geoffrey Blainy, The Cause of War, Macmillan
(이웅현 역, 『평화와 전쟁』, 지정, 1999, pp.52-55)
양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처럼 무역과 경제적 이익이 안보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잠꼬대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소멸했다고 보면 된다. 현재 학계에 남아있는 가장 그럴듯한 자유주의적 주장은 "꼭 무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수단을 중심으로 국가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이 주장 조차도 의심스러워 한다. 미국의 군사적 보호가 없었더라면 일본이 경제적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걸프전 때 수표책 외교라는 비웃음을 받는데 충격을 받은 일본은 꾸준히 군사적 제도와 무장을 강화하여 국가 위상에 맞는 무력을 갖춘 보통국가로 회귀하고 있다. 모델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생이 상호이익' 이 되도록 관계를 만들어 놓으면, 자기 이익을 놓치기 싫어서라도 공격할 일이 없어집니다.란 히요씨의 주장은 틀렸다. 이 주장은 역사적, 경험적으로 뒷받침될 수 없다. 그 주장이 맞았다면 유럽 강대국들이 비참하고 파괴적인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몰락해 미소 양대국의 똘마니로 전락하고 만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관점은 단순히 남북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남한-중국-미국은 무역와 경제적인 분업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 만약 '공생이 상호이익'이 전쟁을 막아준다면 일본-남한-중국-미국 간에 군사적 충돌은 앞으로 오랫동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게 그렇겠는가?
2. 이란 핵협상의 교훈평화적 핵협상을 추구하다 겪는 치욕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슷하게 무력행사를 배제한 안일한 접근을 하였던 EU3국 -영국, 프랑스, 독일- 또한 이란에게 처참하게 농락당하였다. 디 차이트 발행인 요제프 요페는 독일의 굴욕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지난달 하순 미국은 이란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를 꾀했다. 유럽 동맹국인 영국.프랑스.독일과 이란의 핵 협상에 미국도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붙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란 정부는 먼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첫 대답은 "예스"였다. 하지만 곧이어 "노"라는 답변이 뒤따랐다. 대화하는 데는 찬성이지만 어떠한 전제조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시한 것이다.
유럽인은 지난 3년간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경험했다. 유럽연합(EU)의 세 나라는 이란에 "핵 개발을 제발 중단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해 왔다. 엄청난 규모의 당근도 제시했다.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란 정부는 협상을 3년간 질질 끌었으며 그동안 집요하게 핵무기 개발을 계속했다. 결국 그들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며 협상을 거부해 EU 세 나라를 허탈하게 했다.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이란은 핵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고유가 시대는 당분간 계속된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라는 사실은 구조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도 이란에 경제제재를 하자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제재하면 이란 경제는 멈춰서겠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가가 폭등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아무 쓸모가 없다. 미국과 EU가 이론적으로는 이란의 핵 개발 시설을 파괴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동원해야 하고, 적잖은 후유증을 감내할 각오도 해야 한다.
(중략)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이란이 잠시나마 핵 개발을 멈추고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뿐이다. 하지만 유가는 폭등하고,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이란이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요제프 요페,
이란 핵 문제의 실상, 중앙일보, 2006년 6월 7일
원래 이란과 EU3국간의 핵협상의 뒤에는 '달래는 형사/어르는 형사(Good Cop, Bad Cop)'라는 협상 전략이 있었다. 협상테이블 밖에서는 험상궂은 형사(미국)가 커다란 몽둥이를 든 채 어슬렁대고 있고, 협상테이블에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착한 형사(EU3국)가 내 말을 잘 들으면 험상궂은 형사에게 좋게 이야기해주겠다고 깡패(이란)를 말로 설득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몇 년 동안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험상궂은 형사가 창 밖에서 노려보고 있는 동안에는 북한과 이란이 적어도 심각한 행동을 보류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험상궂은 형사가 바쁜 일이 생겨 딴 곳으로 떠나면서 일이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하였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북한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깊은 수렁에 빠짐으로서, 이란이나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여 행동을 포기케 만드는 미국의 능력이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란과 북한은 자주 오지 않는 이런 기회에 강수를 두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몽둥이를 갖고 있지 않았던 달래는 형사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들은 깡패의 방약무인한 행동을 손가락만 빨며 지켜 보아야 했다. 굴욕적이기 짝이 없었다. 나름대로 유서깊은 강대국이라고 자부하던 영국, 프랑스, 독일의 자존심은 묵사발이 난 것이다.
요페는 "애걸하다시피 해 왔고, 엄청난 규모의 당근도 제시했지만...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란 핵협상에서 배워야 하는 제일 큰 교훈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EU3국은 겨우 3년이지만 우리는 10여년간 끌려다니며 애걸했다. 당근을 제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것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얻은 것이 별로 없다.
경제규모라든가 인구 같은 객관적 기준에서 우리는 북한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 동맹국의 지원을 감안한다면 군사력도 그들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우월한 기초체력을 갖고 얻은 것이 별로 없다.
왜 그러한 월등한 능력들이 협상에서 우리의 우월한 지위와 상대의 양보를 가져다주지 못할까?3. 완패를 보증하는 히요씨의 협상 구상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
전쟁이란 단순히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고 설파하였다. 앞서 인용했던 보울딩의 금언 “교환체제(exchange systems)가 경제학의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협 체계(threat systems)는 정치학의 기초이다.”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즉 일상 정치와 전쟁, 보유한 군사력과 이를 이용한 노골적인 혹은 암묵적인 위협은 서로 연속된 정치행위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히요씨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친미를 강화하고 북한을 도발하며, 북한을 때릴 수도 있다는 부시의 말에도 편들고, 경제적으로 각종 원조 끊고 지원 줄이고 압박한다는 미국의 정책을 따르며, 우리의 이익과 북한의 이익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분리한 상태가 지속된 채, 북에 대응해 군사력 증강에만 목매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북한을 더욱 더 무력전쟁으로 몰아가는 일일 겁니다. 상호이익이 없고 혼자 맞아죽을 판이면 혼자 죽기보단 같이 죽자고 나설 가능성이 커질테니. (히요)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자. 그런데 다음을 보자.
정말로 이해 못하는 건가? 핵을 가지고 있으면 주변국과 미국 등등이 북한을 주목하고, 그리하여 협상에서 여러 가지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핵을 개발하는 게 북한에게 유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텐데. 군사적 관점으로만 보자면, 어차피 핵 개발한다고 해서 전쟁에, 미국에 이길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대북정책이나 핵문제는 군사적 관점 이외의 정치적, 국제적 관점에서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 인터뷰이는 군사적 관점 이외의 것은 고려대상에 올려놓지 않고 있다. (히요)
여기서 히요씨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길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 협상에서 여러가지를 얻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다. 핵무기로 협상에서 뭘 얻어낼 수 있는 이유는 말을 굳이 안해도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위협을 상대에게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핵무기를 보유해 협상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것은 군사력을 이용한 위협을 이용해 상대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다.놀랍지 않은가? 히요씨는 북한이 군사력을 이용한 위협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그 동맹국 미국)이 군사력을 위협한 위협으로 북한의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한국(과 그 동맹국 미국)은 무조건 불리해진다. 저쪽은 협상에 무력에 의한 위협을 동원할 수 있지만 이쪽은 동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친미를 강화해도 안되고, 북한을 위협하거나 북한을 때릴 수도 있다는 부시의 말을 이용해도 안되며 경제적으로 각종 원조 끊고 지원 줄이고 압박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양 손을 다 등뒤에 묶어두고 어떻게 핵무기를 들고 흔들어대는 북한과 협상을 하란 말인가?
이쯤 되면 남한측의 군사비 지출이 북한보다 많으므로 남한이 더 강하다 같은 논리는 나올 필요도 없어진다. 강하고 말고 간에 우리쪽은 아무런 협상카드도 쓰면 안되고, 저쪽은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해도 되는데 더 강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앞 절에서 제기하였던 나의 의문을 다시 떠올려 보자.
경제규모라든가 인구 같은 객관적 기준에서 우리는 북한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 동맹국의 지원을 감안한다면 군사력도 그들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우월한 기초체력을 갖고 얻은 것이 별로 없다. 왜 그러한 월등한 능력들이 협상에서 우리의 우월한 지위와 상대의 양보를 가져다주지 못할까? (sonnet)
이제 답은 명백해졌다. 경제력, 인구, 군사력 같은 우리측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협상에서 우리가 밀리는 이유는
양 측이 지키는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쪽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더라도 우발적인 분쟁의 확대를 피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경제력이 월등하지만, 그 경제력 중 비교적 작은 부분만 군사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저 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우리에게 부과된 규칙을 완화해서 우리의 우월한 잠재력을 실질적인 협상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규칙을 바꿀 수 없을 경우, 그러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건설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둘은 배타적이 아니며 서로 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건
결과적으로 북한의 양보를 강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강요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지겹게 경험해 온 것처럼 북한은 강하게 압박하지 않으면 제발로 양보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북한이 양보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또한 우리가 실제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미 경험시켜 주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한 것이다.
4. '달래는 형사/어르는 형사'는 평화적 협상술인가?평화적이란 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 협상술이 전쟁을 피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음은 확실하다. 반대로 협상이 목적이 아니고, 전쟁과 응징이 목적일 경우, 그 행동은 누구의 눈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1991년의 걸프전이나 2003년의 이라크전을 생각해 보자.
이들 전쟁의 경우 미국은 이라크에게 싸우지 않고 패배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싸워서 패배당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강요하였다. 미국은 단기간 동안 현지에 강력한 병력을 집결시켰으며, 적국에게 병력 집결이 완료될 동안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은 협상에 주어진 시간이라기 보다는, 어짜피 전쟁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니까 항복권고에 사용했을 뿐이다.
미국도 전 세계에 흩어진 군사력을 한데 모아 전쟁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한번 준비를 마치면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일단 칼을 뽑으면 쉽사리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이다.
진짜로 전쟁을 제1의 정책선택으로 골랐다면 그 결정은 길어야 1년 정도 안에 행동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으며, 우리의 눈에 포착되지 않을 수 없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우리가 미리 전쟁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반면 '달래는 형사/어르는 형사' 협상술은 이와는 매우 다르다. 사실 1994년의 1차 북핵협상 당시에도, 미국과 북한의 협상팀은 모두
전쟁이 제1의 선택이 아니란 사실은 서로 꿰뚫어보고 있었다.
제네바 회의(1994년 9월 23일-10월 21일)가 재개되기 전날 밤 미국 팀은 협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 했던 일이 역시 터졌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져 협상준비에 타격을 준 것이다. 회담이 열리기 직전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론 즐라테퍼(Ron Zlatapor) 제독이 미군 일간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와의 인터뷰에서 항공모함 「키티호크」(Kitty Hawk)호의 동북아시아 배치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 목적이 최근 아이티에 대한 개입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군사력으로 외교를 지원한다"는 외교의 원칙을 따른 것이라고 한 것이었다. 사실 키티호크 호의 동북아 배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의 일정에 따라 훈련에 참가했고 그 결과의 하나로서 동북아에 계류 중이었던 것이다. 한 장군은 즐라테퍼 제독의 발언은 일종의 쓸데없는 "호언장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외교의 다른 원칙, 즉 "큰 채찍을 가진 채 조용히 말하라"는 것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아니나 다를까 키티호크 호가 계류하고 있던 동해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제네바에서 회담이 열리자 북한측은 바로 즐라테퍼 제독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북한의 입장에서 항공모함의 이동은 항상 초미의 관심사였다. 수백 대의 항공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은 미군의 공군력을 크게 높여주고 따라서 미국의 전쟁계획의 중요한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항공모함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바로 키티호크 호가 동해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후에 한 북한측 참석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항공모함이 세계 곳곳을 항해하는 것을 알고는 있소.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군부가 매우 불안해한다오."
협상단이 자리를 마주하기 전에 수석대표인 갈루치와 강석주가 커피를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누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항상 부드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강석주가 일종의 "경고"를 했다. 즉 틀라테퍼 제독의 말과 키티호크호의 동해배치 문제로 발언을 시작할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준 것이었다. 제네바에서 협상이 열리는 시점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을 미국측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갈루치는 "항모의 배치와 제독의 발언은 곧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북한측도 알아야 한다"고 받아쳤다. 곧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관계라는 엄연한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석주가 미리 언질을 준 것은 그로 인해 회담이 지장을 받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몇 분 후 참석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착석하자 외교전이 시작됐다. 강석주와 갈루치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공식적으로, 보다 길게 개진했다. 강석주는 미국이 "한 손에는 우정을 다른 한 손엔 권총을 들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갈루치는 미국 정부는 자국과 동맹국들의 안보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행동할 뿐이라고 응대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국방부는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에 모두들 "입을 닥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북한도 이 사건을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이 일을 비판했지만 크게 문제를 삼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공식적 입장과는 별도로 감정은 삭이지 못한 것 같았다. 북한 언론은 툭하면 이 일을 거론했다. 강석주도 그랬다. 갈루치가 북한의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그가 회담을 교착시켜 전쟁준비의 빌미로 삼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참다못한 갈루치가 강석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말 잘 들어. 우리가 너희 나라와 전쟁을 하려고 들면 준비 따위는 필요도 없어!" 강석주는 뒤통수를 한방 맞은 듯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Witt, Joel S., Poneman, Daniel B., Gallucci, Robert 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서울, 모음북스, 2005, pp.359-360)
사실 갈루치가 위협하긴 했지만 미국이 준비없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긴 말이 안된다. 강석주 또한 항모 문제가 별 문제가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꼬투리를 잡아 협상에서 미국측을 비난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 또한 이것은 미 국무성과 국방성, 북한 군부와 북한 외교부 협상팀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부각시키는 쟁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북한과 맺은 가장 쓸만한 협정이었던 94년의 북핵합의(Agreed Framework)조차도 이처럼 군사적 위협이 늘 배경에 깔린 채로 협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던 북폭계획 같은 것도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압력수단의 일부였다.
5. 이번 편을 끝마치면서이번 편에서는 경제적 이익의 공유가 대안적 안보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히요씨의 관점이 왜 틀린 것인지, 그리고 히요씨가 지금까지 말해온 이야기가 북한과의 협상을 좌절로 이끌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동맹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들을 약간 설명하고 히요씨가 전부터 제기해 온 어떤 시점이 되면 연합사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인가 하는 쟁점에 대한 나의 답변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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