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히요)에서 트랙백
이 논쟁은
우리에겐 왜 한미연합사가 필요한가?(김재창)에 대한 논평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히요)에 대해 일련의 반박과 재반박 -
허, 군국주의라고?(sonnet),
군국주의(히요),
현실주의, 군국주의(sonnet),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sonnet),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1 (sonnet),
전시작통권 소유상황에 관한 질문.(히요),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2 (sonnet),
작통권 환수 논쟁에 관하여. (히요),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3 (sonnet) - 등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0. 들어가기 전에반론을 펼치거나 말거나 sonnet님 자유입니다. 하지만 도무지 작통권 환수에 대한 결정적인 문제들에서는 진전이 없네요. 북한은 위험하다, 그러니 우방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따로 된 것보다 하나로 된 게 전쟁수행에 효과적이다, 이건 대한민국 설립이래 보안정국을 외치던 권력자들로부터도 질리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히요)
우리는 자라나면서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의 잔소리도 질리도록 많이 듣기 마련이다.
그런데 질리도록 들었다고 그게 무조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지겹게 들었다고 반발심만 앞세우지 말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 냉정하게 한번 따져 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성인이 되고 많은 지식 경험을 쌓아 부모님이나 선생님 못지 않은 판단과 처신을 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잔소리 들을 일도 줄어들게 된다. 그때쯤 되면 어떤 잔소리는 들어야 하고, 어떤 잔소리는 무시해도 될지 저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마련이다.
이번처럼 안보에 관련된 문제도 마찬가지다. 안보, 외교, 군사 문제에 관해서는 선인들의 수많은 경험과 연구를 집대성해서 학생들이 단기간에 섭취할 수 있도록 풀어써 놓은 좋은 교과서들이 있다. 나는 기본개념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절정고수들이 쓴 교과서에 기가막히게 해설해 놓은 이야길 왜 내가 짧은 글빨로 재탕을 해야 하나 환멸을 느낀다. 내가 한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은 사실 교과서를 한번 읽어 보았으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사족이었다. 지금 토론이 늦게 진행되는 이유는 상대 토론자의 개념이해 부족으로 기본개념의 복습과 토론을 병행해 나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번 글에서는 예고했던 대로 북한과의 협상 및 대결에 대한 히요씨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1. 대등한 협상상대로의 북한게다가 이 토론 중에서 발견한 한 분의 의견으로는 북한을 '동등한 상대자' 로 봐줄 수 없는 '깡패국가' 라고 하데요. 군사외적 접근을 하려면 상대방을 동등한 상대자로 간주하는 게 전제되어야 하고, 그리고 휴전문제에 관해선 '종전' 을 서둘러야 하는 거지 '통일' 을 해야 하는 게 아니겠지요. 즉, 북한이 있는 한 군사력에 대해 우위여야 한다 - 가 아니라, 현 휴전상태를 종전상태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그러자면 휴전결정을 내린 당사자들이 모여 종전합의를 해야 하는데, 우리 나라가 현재 전작권이 없어서 그 종전합의에 참가할 수 없다더군요. 그러니 전작권이 되돌아와야 6/25 전쟁의 한 주체로서 종전회담을 이끌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북한을 없애버려서 평화를 구하려 하는 게 아니라, 북한과 공존하면서 평화를 구해야 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한 대응책은 바람직하지 못하거니와 평화와도 요원하지요. (히요)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와 다른 현실주의자들, 대부분의 남한 관료들과 외교/안보/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을 우리와 대등한 협상상대로 100% 인정하고 있다.
현실주의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미국과 한국이 입을 모아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것을 종용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시리아를 보라.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덜 삽질을 하도록 돕겠다고 여러 차례 제안을 했지만 미국이 단호하게 무시하고 있다.
이란은 어떤가? 미국 국무장관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을 했지만, 미국 외교관이 이란을 방문해 그와 같은 대우를 해준 적이 없다. 미국은 북핵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다. 이란과 EU3(영국-프랑스-독일)이 하는 이란핵협상에는 EU3국이 미국보고 제발 좀 참여해 달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이란 핵협상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망나니짓은 북한이 이란보다 훨씬 더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대접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왜 김정일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인가? 그가 영리하거나 도덕적으로 탁월한 인물이어서? 그가 북한의 지배자로 정통성이 있다고 우리가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김정일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이다. 김정일은 북한 정권을 장악하고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가진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 개인에 대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건 간에 김정일의 주먹을 우리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북조선 60년 일자전승의 암살권 수령의 권™이 무섭긴 하다)다음과 같은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나 김정일이 어딘가에 감금되고, 군부의 장군 하나가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 보자. 우리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고, 김정일보다 더 말이 잘 통하는 상대일지, 아니면 더 잔혹하고 엽기적인 인물일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가 김정일이 아니니까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종종 다른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하듯이 쿠데타를 비난하며, 정통성있는 정부가 아니므로 모든 외교협상과 경제협력 관계를 단절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고 시도할 것인가? 아마 그런 멍청한 제안을 하는 관료는 없을 것이다.
현실주의자로서 말하자면 우리는 무조건 그와 협상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지도자의 인품이나 식견을 인정해서 그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먹을 인정해서 협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자가 주먹을 장악한다면 지체없이 협상 상대를 바꾸어야 한다. 만약 김정일이 역 쿠데타로 권력복귀에 성공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걱정 마시라. 그때 가서 썩은 미소를 날려주고 나서 다시 김정일을 상대하면 된다.
김정일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북한 외교를 몸으로 겪으며 냉혹한 권력정치의 속성을 마스터한 인물이다. 절대로 그런 사소한 사건에 연연해 대세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인정해줄 수 있다. (
이 말은 내가 현실주의자로서 김정일을 대등하거나 더 비범한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찬사의 의미이다. 히요씨가 이 점을 놓칠까봐 특별히 강조해 둔다.)
아마 이렇게 설명해 주어도 히요씨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보다 믿을 만한 나라라고 전제하는 시점에서 이미 합의점에 이를 여지가 희박해 보이는군요. 그렇다고 미국과 북한에 대한 국제정세를 논할 차례라면 영원히 정치블로그가 될테고. 그냥 그리 생각하십시오. 저는 이리 생각하겠습니다. 향후 뉴스나 책을 보고 이런 저런 정보를 익히고 하면서 잘못된 쪽이 바로잡아가면 되겠지요. (히요)
여기서 '믿을 만한 나라'의 속뜻에 대해서는
uriel씨께서 잘 지적해 주신바 있다.
그런데 정작 히요님의 글을 계속 읽어 본다면 믿을만한 나라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좋아하는 나라로 바꿔 읽는게 더 적절하더군요. 이 경우는 완전히 개인적 선호도의 문제가 아닌가요? 누가 특별히 특정 국가를 더 좋아해서 더 믿는 것이야 개인의 취향 문제이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그 나라가 더 믿을만한 나라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uriel)
즉 히요씨가 이야기하는
'동등한 상대자'란 것은 협상을 대등하게 한다는 게 아니고
내가 북한을 좋아해주면 북한도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에 가깝다. 냉혹한 현실정치와 전혀 무관한 짝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김경원 전 주미대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 우리 정부가 과연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 6자 회담의 틀에 너무 안주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정부도 뭘 하긴 하는데 대담하지 못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합리적인 방법으로만 다가가는데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부시 대통령이나 김정일은 파워게임을 할 줄 안다. 한국도 뭔가 역할을 하려면 ‘이럴 바에는 다 때려치우자’는 자세로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배짱과 뚝심이 있어야 한다. 관료적 합리성으로는 한계가 있고 상상력과 배짱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김경원,
"부시·김정일은 파워게임 할 줄 알아 한국 대북정책 상상력·배짱 있어야", 주간조선, 2004년 9월 30일
즉 노련한 외교관의 눈으로 볼 때 벼랑끝 전술을 쓰는 공갈협박의 달인 김정일이나, 일방주의 외교와 선제공격 전쟁으로 욕을 얻어먹는 부시도 냉혹한 무법천지인 국제정치무대에서 파워게임을 구사할줄 아는 기본기를 갖춘 선수라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 정부야말로 이런 권력정치의 기본기, -두꺼운 낯짝, 시커먼 뱃속, 능청스러운 언변, 필요할 땐 수틀리면 다 죽는다고 위협하는 배짱- 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논객은 대부분 김정일을 아주 싫어한다. 당연히 김정일을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보수논객이
김정일은 협상을 어떻게 하는 줄 아는데 우리정부는 김정일만도 못하다라고 말할 정도면
사태는 무진장 심각한 것이다.
자 정리해 보자.
현실주의자들, 대부분의 남한 관료들과 외교/안보/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을 우리와 대등한 협상상대로 100%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김경원 대사나 나 같은 사람들은 김정일이 우리와 대등한 상대일 뿐 아니라 차라리 낫다고 대놓고 인정한다.
차라리 김정일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라. 그게 적어도 지금보다 못하진 않다. 눈뜨고 있어도 코베어가는 국제정치무대에서 지금처럼 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북한을 상대로 뚝심과 배짱있는 외교를 구사하라.
이래도 우리가 북한을 대등한 상대로 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북한을 터프한 협상상대로 200% 인정한다. 다만 북한을 짝사랑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2. 히요씨가 생각하는 협상의 구도와 그 문제점들정치/경제적 수단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북한을 '동등한 상대방' 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동등하게 봐주지 않는다면 대화는 불가능하지요.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는 말은 곧 정치적 회담이나 협상, 경제적 교류 등을 정상적으로 나눌 대상으로 탈락이란 의미가 됩니다. 그럼 뭐가 남을까요? 정치/경제적인 합리적 접근으로 될 상대가 아닌, '비합리적인 상대방' 이라고 간주한다면,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북한을 무력점거하자는 주장은 우리 나라 국민 내부에서도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다가 저의 입장은 물론 반대입니다. (히요)
앞서 지적한 것처럼 히요씨는 '동등한 상대방'='내가 북한을 좋아해주면'이란 뉘앙스를 담아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라면 상대방을 좋아하지(동등하게 보지) 않는다고 해서 대화가 불가능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2차대전 이래 50년간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사실 깊게 불신하면서도 끊임없이 또한 정기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하였다. 그리고 SALT나 ABM, NPT 같은 다수의 군비통제협상을 성사시킨 바 있다. 따라서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는 말은 곧 정치적 회담이나 협상, 경제적 교류 등을 정상적으로 나눌 대상으로 탈락"이란 말은 한마디로 틀렸다.
또한
"정치/경제적인 합리적 접근으로 될 상대가 아닌, '비합리적인 상대방' 이라고 간주한다면,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과 같은 주장도 틀린 주장이다. (여기서
'정치/경제적 접근'이란 말은 유화책이란 말을 돌려 쓴 것임에 주목하자)
우선 정치/경제적인 접근만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봉쇄, 억지정책 등도 전략적 사고에 입각한 합리적인 접근이다. (예를 들어 게임 이론의 발전은 핵억지정책의 개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이론이 비합리적인 접근방법일까?) 그러니 정치/경제적 접근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를 비합리적인 상대방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비합리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면 6자회담 같은 회담은 뭐하러 하는가? 비합리적인 상대와 회담하면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겠는가? 회담을 종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합리적인 존재로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히요씨는 중대한 비약을 하나 한다.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라고.
즉 자신이 제시한 유화책과 전쟁 중 택일하라는 식으로 독자에게 제시한다. 이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전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이란 구도는 한마디로 협박에 굴복한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이 지적은 정말 통렬하다. 94년 북핵합의의 미국측 당사자였던 갈루치 조차도 이 말이 옳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1994년 마지막 두 달 동안 갈루치와 폰먼은 (1994년의 북핵합의를 설명하기 위해) 공화당의 내로라하는 외교정책 전문가들을 모두 만났다. 콜린 파월, 제임스 베이커, 로렌스 이글버거,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아놀드 캔터, 제임스 슐레진저, 캐스퍼 와인버거, 헨리 키신저, 폴 울포위츠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
전직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도 같은 입장이었다. 한 때 갈루치의 상관이었던 베이커는 전술적 식견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였던 갈루치에게 제네바 합의를 옹호할 때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조언까지 했다. 그때까지 갈루치는 외교적 해결, 군사행동,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 세 가지 대안을 열거하고 그 중 외교적 해결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옹호하는 방법을 썼다. 군사행동을 취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경제제재를 취해봤자 북한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등. 베이커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이 틀렸다고 했다.
문제를 전쟁과 평화간의 양자택일로 만들수록 행정부는 협박에 굴복한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라고 했다.
대신 제네바 합의가 제재를 추진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등 강력한 행동을 취한 결과 얻어 낸 것이라고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좋은 조언이었다. 그리고 사실 맞는 말이었다.) 사적으로 그와 같은 친절한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커는 공개석상에서 제네바 합의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꾼 것"이라고 공격했다.
Witt, Joel S., Poneman, Daniel B., Gallucci, Robert 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서울, 모음북스, 2005, pp.409-410)
그러나 실제로는 유화책과 전쟁 사이에는 억지와 봉쇄와 같은 중간 선택이 있다. 억지(deterrence)와 봉쇄(containment)는 둘 다 상대국과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선택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냉전기간 동안 파멸적인 핵전쟁을 막아낸 가장 성공적인 정책이었다.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김재창 장군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두 번째는요. 북한 설득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평화적으로 하겠다고 했으니까, 북한에서 그냥 한 반만 동의하면 나머지 반은 까짓것 확 무력으로 해치우자 이렇게 생각하면 이야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거 아닙니다. 반이 반대하더라도 우린 좀 기다리자. 이게 지금 우리의 국가 목표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남북을 관리하려면 이게 긴 시간이 필요하고 확고한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설득을 시키려고 해야지 엇비슷하게 뭐 이렇게 감정으로 민족 운운한다고 그래가지고 그래라 미국 빼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하면 이거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에 맞지 않습니다. 남북관계의 평화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동맹체제는 필요합니다.(김재창)
김 장군의 인터뷰 내용중 상당부분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다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그리고
억지는 설득을 위한 출발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설득이라는 말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예를 들어 남북협상에서 우리가 북한의 요구에 휘둘려서 북한의 수령체제 하에서 통일을 하겠다고 합의한다면 큰일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협상에서 설득당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협상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설득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북한도 그들 자신을 위한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남북협상은 그 어떤 것이건 치열한 대결이 될 수 밖에 없다.
약간의 경제적 이익이나, 군사적 긴장 완화 같은 것은 주고 받기식 협상을 할 수도 있으나 근본가치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주고받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전쟁을 피하면서도 상대의 의지를 꺾고 상대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근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대북중대제안을 북한이 가볍게 무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대한민국 외교의 치욕이었다. 그럼 당근 말고 채찍이 필요할까? 사실 당근과 채찍으로도 힘들다.
스테이크와 쇠망치 정도는 있어야 이야기가 될까말까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미국이 낳은 전설적 외교관 조지 케난이 한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도움 없이 혼자서 공산주의 운동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서 소련의 권력을 빨리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특정한 상황에서 소련의 정책 실행에 엄청난 긴장을 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 크렘린이 보여준 행동보다
훨씬 많은 절제와 신중함을 강요할 수 있으며,
이런 방법으로 미국은 소련이 결국 권력의 붕괴로 나아가는 경향 또는 소련이 점진적인 성숙 쪽으로 그 배출구를 찾게 하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다.George Kennan,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s, 1947년 7월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케난의 제언 -봉쇄정책- 은 40년 이상 미국의 대소정책의 근간이 되었고, 냉전의 평화로운 종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케난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도 훨씬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의 정책은 결국 소련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케난의 대소구상은 많은 비전문가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온건하며, 80년대 레이건과 강경파들이 보여주었던 신냉전식 대결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결국 이렇게 살펴보면
"정치/경제적인 합리적 접근으로 될 상대가 아닌, '비합리적인 상대방' 이라고 간주한다면,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란 히요씨의 이야기는 문제를 평화와 전쟁의 양자택일인 것 처럼 포장해 제시함으로서, 잘 모르는 독자로 하여금
유화책을 택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전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3. 이번 편을 끝마치면서이번 편에서는 북한과의 협상 구도에 관련된 히요씨의 관점을 검토하여 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현실주의자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다음 편에서는 이번 편에서 다루지 못한 북한과의 협상에 관한 세부적 관점들을 하나씩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