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히요)에서 트랙백
이 논쟁은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히요),
허, 군국주의라고?(sonnet) 등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0. 들어가기 전에내가 군국주의적이라고 판단한 것을 누군가는 군국주의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해도, 별 상관없다. 그 사람의 기준이 내 기준과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니까.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입장이 다른 두 글의 논거를 읽고, 자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겠지. 토론은 좀 더 많은 의견과 정보를 끌어내어 제3자로 하여금 자기 판단을 내리는 데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히요)
군국주의 논쟁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자면 기준이 완벽하게는 일치하지 않느냐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기본개념 파악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토론진행이 힘든 상황이다. (하나 하나 개념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그러고 남는 논거가 뭔지 찾아보면 없기 때문에) 그래도 제3자를 위해 적절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토론의 중요한 목적이라는데는 동의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어나가볼까 한다.
이번 글에서는 군국주의라는 황당한 누명을 써야 했던 현실주의와, 난데없이 끌려들어와 이용당한 군국주의에 대해 살펴본다.
1. 현실주의대북정책이나 핵문제는 군사적 관점 이외의 정치적, 국제적 관점에서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 인터뷰이는 군사적 관점 이외의 것은 고려대상에 올려놓지 않고 있다. (히요)
하아? 이 필자야말로 국제(관계/정치)적 관점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전형적인 국제정치적 관점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국제정치를 논할 때는 대체로 이 영토국가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국제정치를 보편적인 주권이 존재하지 않고 국가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도 없는 정치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국제정치는 종종 무정부상태라고 불린다. 무정부 상태는 지배자의 부재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정치는 자구체제(self-help system)이다. 17세기의 영국 철학자인 토머스 홉스는 그런 무정부 체제를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불렀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호의적인 혹은 관대한 것이 아니다. 질서를 강요할 수 있는 상부의 지배자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만인 대 만인의 전쟁상태인 것이다. 홉스의 유명한 선언과 같이, 그런 세상에서 인생은 비열하고, 야만적이고, 짧을 가능성이 높다.
무력(force)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서 다른 역할을 한다. 질서가 잘 잡힌 국내 정치체제에서는 정부가 무력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반면 국제정치에서는 무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어느 누구도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제정치는 자구체제이며,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무력이 강하기 때문에, 전자가 힘에 의존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무력의 행사가 불가능하지 않는 한 그 결과는 불신과 의심이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연구의 지배적인 전통이 되어 왔다. 현실주의자에게 국제정치의 주요 문제는 전쟁과 무력의 사용이며 주요 행위자는 국가이다. 이 입장은 근대 미국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그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의 글과 정책으로 대변된다고 할 수 있다. 현실주의자는 국가들의 무정부체제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키신저와 닉슨은 미국의 권력 극대화와 다른 국가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의 최소화를 도모했다. 현실주의자에 의하면 국제정치란 시작부터 끝까지 개별 국가가 다른 국가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Joseph S. Nye Jr.,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Longman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한울 아카데미, 2000, p.18-19)
이 책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조지프 나이가 국제정치학에 입문하는 학부생들을 위해 쓴 교과서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의 목표는 학생들이 냉전 이후 점점 부각되고 있는 자유주의이론이나 상호의존이론, 제도주의 이론 등으로 관심을 돌리기 전에 전통적 현실주의 시각에 대한 견실한 기초를 다질 수 있게 함으로서 그들에게 국제정치의 복잡함을 소개하는 것이다.사실 나이는 자유주의 학파의 대표적 연구자로 전통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주요한 업적은 현실주의 이론에서 덜 중요하게 평가되던 상호의존성이나 소프트파워 같은 분야를 개척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국제정치학에 입문하는 학부생이라면 딴 걸 배우기 전에 현실주의적 기본관점부터 탄탄히 다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는 국제정치학의 2대 학파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조차도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현실주의 이론부터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실주의가 갖는 압도적인 우세를 잘 보여준다. 국제정치를 담당하거나 훈련받은 외교관, 군인, 학자라면 대부분 이러한 현실주의적 시각에 정통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실주의자의 구체적 입장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어판에 드리는 저자 서문
현대 역사에서 한국과 폴란드는 가장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었던 나라들입니다. 두 나라는 모두 시기는 다르지만 두 나라를 지배하거나 점령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에 이웃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고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이던 시절 오스트리아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폴란드가 게걸스런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지도 위에서 사라져버린 적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은 왜 국제체제란 심술궂고 잔인한가, 왜 강대국들은 과거 그토록 자주 한국을 희생물로 삼았는가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은 바로 이같이 중요한 문제점들을 살펴보기 위한 책입니다. 이 책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국제정치라는 위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과 권력(힘)을 위해 경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평화롭게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나라들 조차도 권력추구를 위한 끊임없는 싸움에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국가들 간에 안보경합의 근원적 이유는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위협을 당했을 때 이를 호소할 수 있는 권위있는 상부의 조직이 국제정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국제체제에 보안관은 없습니다. 더구나 국가들은 상대방 국가가 자신에 대해 적대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결코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들은 위험이 어느 곳에서부터 연유하던 그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나라는 우리나라의 친구일까? 오늘의 친구는 내일 적국이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공격을 막을 만큼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상대방 국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국가들은 가능한 한 많은 힘을 보유함으로서 다른 나라가 공격적으로 변할 때 자신을 스스로 방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국제체제의 패권국이 되는 일입니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국력을 보유한 국가의 경우 그 나라의 생존은 거의 확실하게 보장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 국가가 허약하다는 사실은 골칫거리를 유발하게 됩니다. 강한 나라는 허약한 나라로부터 이득을 취하려 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과거 강대국들로부터 얼마나 혹심한 고통을 당했는가를 생각할 때, 한국의 독자들은 이 같은 관점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7-8)
내가 글을 읽어보건대 트랙백해온 글의 필자는 이같은 입장을 군국주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관계/국제정치 관련 연구자들이 가장 널리 쓰는 분석의 틀이자, 전 세계의 외교관들을 길러낼 때 쓰는 이론이다. 아무도 이것을 갖고 군국주의라고 부르진 않는다. 물론 모든 현실주의 논객들이 말을 미어셰이머처럼 직설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개인윤리 차원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특히
국제관계를 감정적, 도덕적으로 재단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이 이러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를 해석하고 예측할 때 가장 뛰어난 적실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미어셰이머의 말을 빌려 보자.
세상을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고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의 세계는 결국 현실주의적인 세계로 남아 있다. -
존 미어셰이머, 시카고 대학 정치학 교수
2. 군국주의설명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백과사전의 해설을 하나 소개하고 시작할까 한다. 백과의 항목은 전문연구서의 그것처럼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개념을 잡기 위한 출발점으로는 그럭저럭 편리한 경우가 많다.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는 Wikipedia:
Militarism등이 있다.)
軍國主義 militarism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며 군대에게 우월적인 지위를 주어 정치·경제·사회의 전영역을 군사화하려고 하는 사상 및 체제. 이 체제는 국민의 비판적·합리적 정신의 성장을 제압하여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군국주의의 고전적인 예는 BC 5∼6세기의 스파르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대국가가 성립한 후 군국주의의 전형적인 예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세계대전 말기까지의 독일제국과 만주사변에서부터 제2차세계대전 종전까지의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발견된다. 근대군국주의는 근대국가와 보조를 맞추어 생성·발전했다. 그 관계로는 ① 절대군주에 의한 예비군의 창설, ② 미국독립전쟁에서부터 프랑스혁명전쟁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된 국민군의 등장, ③ 나폴레옹전쟁 이후의 군대의 조직화, ④ 총력전의 출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에 민족국가의 형성과 방위에 군이 행했던 역할은 높이 평가된다. 비스마르크의 독일통일전쟁과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의 징병령 등에 관해서도 이런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국수주의(國粹主義)가 제국주의적 침략이데올로기로 전화한 이면에는 군의 정치적 기능의 중대한 전환이 있었으며, 이를 기초로 침략전쟁을 위한 반동적 의도를 가진 군국주의가 성립되었다. 근대 군사기구의 확립이 초래한 군의 비인격화(인격을 갖지 않은 도구로서의 병사라는 이상형)와 <국민개병제도>는, 총력전이라는 새로운 전쟁형태를 출현하게 했고 <고도국방국가>에로의 요청이 높아짐에 따라 그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냈다. 더욱이 오늘날은 과학병기의 비약적인 발달에 따른 전쟁의 위기와 군산(軍産)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강화가 군의 정치적 지배의 강력한 유인으로 되고 있다. 근대군국주의의 전형적 현상으로는 ① 내정면에서 민군관계(民軍關係)의 파탄과 민간주도에 대한 군부의 지배권 확립, ② 외교면에서의 호전적 주전론(主戰論)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지탱하는 사고·행동양식으로서, 군인적 관념(충성·헌신·용감 등의 도덕관, 영웅숭배, 군기 등 상징의 물신화 등)과 군대적 행동양식(엄중한 위계질서, 절대적인 명령복종관계, 권위주의 등)이 국민 전체에 확산·침투하여, 일반적인 사회관계도 군대조직을 모델로 형성하는 것이다. 파시즘적 전체주의는 근대군국주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자발성·능동성을 경시하고 물리적 강제력의 행사·위협에만 의존하는 군국주의적 지배권력에는 불가피하게 위기가 발생한다. 군대적 획일주의에 기초한 정신주의와 형식주의의 폐해가 그 위기에 박차를 가한다. 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나 한국의 유신체제는 결국 국민총동원과 체제유지에 성공하지 못하고 붕괴한 전형적인 예다.
(군국주의 항목, "파스칼 대백과사전", 동서문화사, 1999)
그럼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히요)라는 비난을 받았던
우리에겐 왜 한미연합사가 필요한가?(김재창)이 이중 어떤 부분에 해당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1)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며대개 영토확장이나 식민지 확보 등을 노리는 것을 말한다. 해당없음.
2) 군대에게 우월적인 지위를 주어해당없음
3) 정치·경제·사회의 전영역을 군사화하려고 하는해당없음
4) 국민의 비판적·합리적 정신의 성장을 제압하여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절대복종을 강요사실 이것만 보면 권위주의에 더 어울리는 설명이지만, 군국주의도 이런 측면을 공통적으로 보이긴 한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반론을 펴는 것을 보면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은 아니지 않을까? 해당없음.
5) 군산(軍産)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강화가 군의 정치적 지배의 강력한 유인한국의 경우 방위산업 자체가 국가정책에 큰 영향을 줄만큼 대규모도 아니고 크게 재미보는 분야도 아님. 해당없음
6) 내정면에서 민군관계(民軍關係)의 파탄과 민간주도에 대한 군부의 지배권 확립해당없음
7) 외교면에서의 호전적 주전론(主戰論)두 번째는요. 북한 설득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평화적으로 하겠다고 했으니까, 북한에서 그냥 한 반만 동의하면 나머지 반은 까짓것 확 무력으로 해치우자 이렇게 생각하면 이야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거 아닙니다. 반이 반대하더라도 우린 좀 기다리자. 이게 지금 우리의 국가 목표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남북을 관리하려면 이게 긴 시간이 필요하고 확고한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설득을 시키려고 해야지 엇비슷하게 뭐 이렇게 감정으로 민족 운운한다고 그래가지고 그래라 미국 빼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하면 이거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에 맞지 않습니다. 남북관계의 평화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동맹체제는 필요합니다.(김재창)
과 같이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함을 볼 수 있다. 해당없음.
8) 군인적 관념(충성·헌신·용감 등의 도덕관, 영웅숭배, 군기 등 상징의 물신화 등)과 군대적 행동양식(엄중한 위계질서, 절대적인 명령복종관계, 권위주의 등)이 국민 전체에 확산·침투하여, 일반적인 사회관계도 군대조직을 모델로 형성군부정권을 오래 겪은 한국 사회에 이런 측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엄중한 위계질서나 연공서열 같은 측면들은 빠르게 해체되어가고 있다. 어쨌든 본문에는 이런 것을 요구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해당없음
결국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백과사전마다 군국주의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충 두세 가지라도 맞아들어가야 군국주의라고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필자가 주장하는 군국주의는 뭔가? 그나마 좀 관련이 있어보이는 발언을 몇 개 찾아보았다.
* 군국주의는 군사력의 지향성이 어디냐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군사 이외의 영역의 역할과의 비중 문제입니다.
* 군사 이외의 방법으로 효율적이고 평화적인 전쟁 억제책을 도모할 수 있는데, 다른 사안들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군사력 증강으로 해결보려는 것이 바로 군국주의입니다. (히요)
군사부문의 비중 문제군사부문과 민간부문의 역할의 비중 문제는 군국주의 국가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차이가 잘 드러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DP(GNP) 대비 국방지출 비중은 국가의 총 생산 중 군사부문의 비중을 나타내는 통계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수치이다. 이 수치는 국민이 국방을 위해 치르는 기회비용의 손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수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최근 수 년간의 대한민국의 GDP 대비 국방지출은 3% 이내로 세계적으로 보아도 군비지출비중이 특별히 큰 나라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군국주의 국가였던 프로이센, 나치 독일, 대일본제국 등과 비교해보면 더 떨어진다.)
사실 최근 GDP 대비 국방지출이 늘어날 조짐을
약간이나마 보이기는 했다. 그것은 주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2020 플랜 및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보완조치와 관련해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사 이외의 방법으로 효율적이고 평화적인 전쟁 억제책을 도모할 수 있다?이와 비슷한 주제, 즉 대안적 안보 수단은 서유럽에서 수십년 전부터 모색해왔던 사안이다. 이들은 NOD(Non-Offensive Defense) 및 CBD(Civilian-Based Defense)같은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실제로 현실에 적용해 본 것은 거의 없으며, 현실에 적용된 CBD 같은 개념도 전통적인 국방계획에 "추가로" 적용된 것이었지, 전통적인 국방계획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유럽은
자국의 존망을 이런 불안한 계획에 걸어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냉전이 끝난지 십수년인 지금도 감히 실험해볼 용기를 못 내고 있다.
우리부터 모르모트가 되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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