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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가전 전술의 변화: 그로즈니 전투의 여파
시가전에서 러시아제 장갑차량의 취약성(재탕)에서 부연을 위해 트랙백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포트 레이번워스 소재 미국 해외군사연구국(FMSO)의 러시아군 전문가 래스터 그라우 중령(ret.)의 글입니다.

러시아 시가전 전술의 변화: 그로즈니 전투의 여파
* 필자: Lester W. Grau (Foreign Military Studies Office, Fort Leavenworth)
* 출처: INSS Strategic Forum, number 38, July 1995

도시에서의 전투는 어떤 군대에게도 쉬운 선택이 아니며 병참과 가용인력에 대한 과도한 요구를 발생시킨다. 소련 시가전 전술은 외국 영토에서 수행되는 대규모의 고속공세작전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방어되지 않는 적 도시는 행군하여 탈취하고, 방어되는 적 도시는 우회할 계획이었다. 적은 자기네 도시를 파괴하는데 동참할 의사가 없는 외국의 정규군이므로,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보느니 무방비 도시로 선언하는 것을 선호할 터였다.
시가전에 대한 소련군의 이러한 가정은 오늘날의 정치 군사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도시가 파괴되면 그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는 비정규군이 구소련의 영역 안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최근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벌어진 전투는 러시아 시가전 전술을 고쳐 쓰도록 만들었다. 러시아군의 첫 공격은 대재앙으로 끝났지만, 러시아군은 자신을 추스른 끝에 결국 그 도시를 탈취하였다. 그 이래, 러시아군은 느리게나마 효율을 개선하고, 군을 재교육하며, 전투를 종결짓는데 집중해왔다. 많은 것이 잘못된 이래, 러시아인들은 그 전투의 교훈을 연구하고 자신들의 시가전 전술을 갱신하는 중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는 달리, 러시아 언론은 이 전투의 진행에 대한 많은 소식을 보도하였다. 저자는 이들 기사와 참전병사와 기자들과의 대화도 참고하였으나, 이 글은 주로 Aleksandr Frolov, "Soldaty na peredovoy i polkovodtsy v Mozdoke"(전선의 병사와 모즈도크의 지휘관들), Izvestia(뉴스), 1995년 1월 11일, 4면; A. Kavashin, (심각한 시련을 겪은 끝에 부대는 성숙한 전투능력을 획득), Krasnaya zvezda(붉은 별), 1995년 3월 2일, 3면; Sergey Leonenko, "Ovladenie gorodom"(도시 탈취), Armeyskiy sbornik(육군 다이제스트), 1995년 3월, 31-35쪽 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처음에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러시아 육군은 돈도 없고 지원도 거의 받지 못했다. 육군은 연대 혹은 사단 급 야전훈련을 2년 이상 하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대대들은 야전훈련을 1년에 한 번 하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대대들은 병력이 정원의 55% 이하였다.
러시아 청년의 약 85%가 징집을 연기하거나 면제받았기 때문에, 육군은 범죄기록, 건강 장애, 정신적 무능력 등의 문제를 가진 징집병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육군은 장교용 관사도 부족하고, 병사들을 적절히 먹이고 월급을 주는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러시아 군은 적절한 지원 기지도 없이 온갖 어중이떠중이 부대를 긁어모아 체첸을 침공하였다. 체첸인들이 자기 땅을 지켜내자, 러시아군이 처한 현실이 온 세상에 알려졌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에, 체첸 현 정부에 대항하는 체첸 반군은 러시아군에 의해 훈련, 보급, 지원을 받았다. (85명의 러시아 병사를 포함한) 5,000명의 체첸 병력과 170대의 러시아 전차가 프라하나 카불에서 했던 식으로 돌진하여 그로즈니를 탈취함으로서 체첸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실패했고 시가전에서 67대의 전차를 잃었다.
기습 기회를 되찾기 위해 재편성하며 기다리는 대신, 러시아군은 체첸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러시아군에는 완편 사단이 없었기 때문에, 소부대들을 규합해 합성 부대를 만들어 싸우러 보냈다. 보병전투차량에는 승무원은 있어도 승차보병이 부족하거나 없었고, 몇몇 경우에는 병사들이 없어서 장교가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로즈니 시의 상황에 대한 첩보도 결여되어 있었다. 대축척 지도는 단 몇 장밖에 가용하지 않았으며, 전술지휘관을 위한 지도는 아예 없었다. 도시는 포위 봉쇄되지 않았고, 체첸 정부는 전투 중에도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1994년 섣달 그믐날에)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그로즈니를 포위하려고 시도했을 때, 그들은 충분한 지원 보병 없이 전차와 보병수송차만 갖고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
가용했던 보병은 한 덩어리로 투입되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동료 병사들의 성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들은 경찰 작전의 일부로 투입된다는 지시를 받았으며 몇몇은 무기도 없었다. 많은 병사들은 그로즈니로 달려가는 종대의 보병수송차 안에서 잠을 잤다. 전차병들에게는 기관총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이 돌격의 엉성한 준비상황은 그달 초에 1개 공수연대로 두 시간이면 그로즈니를 접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국방장관 파벨 그라체프 장군의 오만함을 반영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행군으로 시 중심부를 장악하고 정부권력을 접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로즈니로 돌진해 들어갔다. 이는 적이 미약하고, 방어를 준비할 시간이 없으며, 완전한 기습을 달성할 수 있을 때만 사용되었던 소련/러시아의 기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하나도 만족되지 못했다.

시가지에서 선행한 하차 보병의 엄호가 없는 전차와 보병수송차는 측면이나 상부를 향해 사격하는 대전차 사수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첫 러시아 장갑차량 종대는 시가로 밀려들어갔다가 그대로 체첸 사수들에게 박살이 났다. 결국 러시아군은 120대 중 105대의 전차와 보병수송차를 잃고, 한 집 한 집 소탕해 나가는 긴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퇴각하였다.


시가전 계획

러시아군 정보부는 체첸측이 그로즈니에 견고한 방어를 신속히 구축했다는 사실을 놓쳤다. 체첸군은 병렬적으로 진격하지만 상호지원하지 못하는 축인 러시아군 종대들을 절단하여 격파하였다.
이제 러시아군은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승차한 채로 신속히 돌격하는 전술은 이제 낡았으며, 현대적인 시가전은 신중한 점령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상세한 정찰을 수행하는 동안, 도시는 반드시 모든 접근로를 차단하여 봉쇄해야 한다.
둘째, 도시 외곽의 핵심 시설과 건물은 준비 포격과 돌격 지점의 점령을 수반해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셋째, 도시의 주거, 산업, 중심 지역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장악해야 한다.
넷째, 함정에 빠진 적 부대는 반드시 격멸해야 하며, 지뢰 제거, 무기 회수, 군사통제와 통행금지가 실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이 사는 우리 도시에서 싸울 때는, 외국 영토에서 싸울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수적 피해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전장 첩보수집

러시아군은 1:50,000과 1:100,000 지도 위에 초기 계획을 작성했다. 그들에게는 1:25,000이나 1:12,500 같은 필수적이고 상세한 대축척 지도가 없었다. 항공사진과 현황첩보도 작전계획을 세우는데 필수적이었으나, 러시아 위성은 돈을 아끼느라 꺼진 상태였으며, 항공정찰도 거의 실시되지 못했다. 하급지휘관들도 항공사진과 대축척 지도가 필요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첩보 상황은 매우 불명확했으나 작전입안자들은 체첸인들이 도시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를 예측하거나 기초적인 대응책을 취하는데 실패했다.
러시아군 종대가 그로즈니를 향해 접근함에 따라, 그들은 저격병이나 도로차단물 같은 도시를 사수하겠다는 체첸 측의 결의를 시사하는 징후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는데 실패하였다.
이제, 계획대로 러시아군은 도시로 진입하는 축선을 엄호하는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대형 산업시설들을 첫 번째 목표로 결정했다. 콘크리트와 석조 벽체, 지하실과 지하통로들을 가진 그러한 공장들은 길고 완강한 방어를 위해 이상적이었다.
도시 안에 들어서면 러시아군은 하차보병이 빌딩의 모든 층을 점령할 동안 모퉁이 빌딩이나 부서진 벽 뒤나 건물 모퉁이에 전차와 직사포가 배치된 것을 발견하리라고 예상했다. 저격병과 포병관측장교들은 일반적으로 고층 빌딩, 지붕, 탑 등에 배치되었다.


습격조와 습격대

소련/러시아의 전술은 시가전을 위해 습격조(storm group)와 습격대(storm detachment)를 편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습격조는 일반적으로 전차 소대, 포병 포대, 박격포 소대, AGS-17 자동유탄발사기 소대, 공병 소대와 화학대로 보강한 차량화소총중대였다. 이 부대는 엄호정리조(대전차포, 유탄발사기와 82mm 박격포로 강화된 차량화소총소대)와 장애물처리반(전투공병과 지뢰제거전차)과 함께 전진했다.
습격대(storm detachment)는 일반적으로 최소한 포병 1개 대대, 전차 1개 중대, 공병 1개 중대, 대공 1개 소대와 화염방사분대, 연막발생기반으로 강화된 차량화소총대대였다. 아울러 추가적인 포병과 항공지원이 사단 자산으로부터 가용하였다.
섣달 그믐날의 패배 후에 시가전을 위해 습격조와 습격대가 편성되었지만, 경험은 이들의 대형이 종종 반생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특별부대의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에 존재하던 부대의 일체성을 파괴했으며, 지휘관에게 적절히 배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부여하였다.
편제상의 전술제대를 사용하고 필요한 곳에만 선택된 무기 체제를 보강하는 것이 더 나았다. 예를 들어, 차량화소총소대로는 습격분대와 엄호지원분대를 배치할 수 있고 차량화소총중대로는 습격소대와 엄호지원소대를 배치할 수 있다. 습격부대가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원호지원 부대는 화력으로 적을 고착시킨다. 공격 후에는 원호지원부대는 예비병력이 된다.

러시아군은 돌격 중 아군오사를 방지하기 위해, 부대원들이 뚜렷이 식별되는 (그리고 쉽게 변경할 수 있는) 표식을 착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들은 건물을 탈취하기 위해 연막 사이로 공격하는 동안 체첸군을 고착시키기 위해 직사 포병, RPG, 자동유탄발사기와 기관총 화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돌입하기 전에 문과 창문으로 수류탄을 까넣었다. 공병은 벽을 날려 진입로를 만들었다. 2-3인으로 구성된 전투팀이 각 방을 소탕했다.
일단 건물을 탈취하면, 건물에 방어준비를 한 후 방어하였다. 하수도를 통한 접근로에는 지뢰가 매설되었고 적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접근로를 따라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었다.

도시 전투는 중단 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새 부대와 적절한 예비병력이 필요하였다. 소련군은 시가전에서 4:1의 병력 우세를 원했었다. 그로즈니 전투에는 약 6만명의 러시아군과 1만2천명의 체첸군이 참전했는데, 러시아군은 점령한 모든 건물에 수비 병력을 배치해야 했기 때문에 러시아 측의 5:1 우세조차 때때로 충분치 못하였다.


전술, 전기와 절차

소련/러시아 전술은 시가전에서 전차가 돌격을 선도하고, 보병전투차와 하차보병이 그 뒤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전차 종대는 기본적으로 시가 도로를 따라 헤링본(herringbone) 대형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전술은 러시아 전차포의 부앙각 제한 때문에 다층건물의 상층부나 지하실에 위치한 표적들과 교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갑차량을 위협하는 대전차 병기가 빽빽하게 깔린 그로즈니에서 싸우기에는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ZSU23-4나 2S6같은 대공포는 그러한 표적들에게 유효하였다.
공격 헬리콥터도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병기와 저격병들에게 사용되었다. 헬리콥터는 탈취한 고층건물 뒤에 숨었다가 ‘뛰쳐나와’ 이들 표적과 교전했다.
그로즈니에서 전차와 병력수송차는 기갑반(bronegruppa)을 구성해 탈취한 지역을 봉쇄하고 역습전력으로 이용되며 후방시설을 방호하고 적의 대전차화기의 사정거리 밖에서 전진하는 보병을 지원하는데 사용되었다.

러시아군은 아군의 전차와 보병수송차량을 방호하는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들을 보병 뒤에 위치시키고 장갑판에서 25~30cm 떨어트려 철망으로 일종의 우리를 쳤다. 이들 우리는 RPG-7 대전차 유탄발사기의 성형작약탄두를 막을 수 있었다.
체첸측은 상부 및 측후면에다 RPG-7 대전차로켓의 일제사격을 퍼부어 장갑차량을 격파하기 위해 차량 엔진 소음이 들리는 쪽으로 대전차 헌터-킬러 팀들을 전개하였다. 러시아군은 이들 대전차특공조에 대항해 사방 모든 접근로에 병력를 매복시키고 나서 미끼로 장갑차량을 미끼로 준비된 장소로 보내는 수법을 익혔다.

그로즈니에서의 시가전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양의 수류탄, 연막수류탄, 폭발물과 (미국의 LAW와 유사한) 1회용 대전차유탄발사기를 필요로 하였다. 보병 개개인에게는 건물에 진입하기 위한 갈고리달린 로프가 필요했다. 돌격하는 보병에게는 경량 사다리 또한 극히 유용했다. 훈련된 저격병은 핵심적인 존재였으나 공급이 부족했다.

전차에 탑재 혹은 탈거된 서치라이트는 도시에서의 야간돌격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탐조등(과 조명탄)은 일시적으로 적의 야시장비를 무력화하고 적 사수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이들은 돌격 중 아군오사를 줄이는 한편, 적에 대한 심리적 공격 효과를 만들어냈다.


포병

러시아군은 통상적인 포병 사격은 도시로 접근하는 동안, 그리고 도시 외곽을 점령하는 동안 사용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면 러시아군은 대부분의 자주포를 전차와 보병에 대한 직사화력지원에 투입했다. 대량의 포병사격이 부대가 통과해 전진하려는 바로 그 지역을 폐허로 만들기 때문에 직접사격이 바람직했다. 직접사격은 포, 곡사포, 다연장로켓발사기, 82mm Vasilek 자동박격포에 의해 수행될 수 있었다. 러시아군이 그로즈니에 도착했을 때, 그들에게는 화력지원조정관과 전방항공통제관이 거의 없었다. 차량화소총부대 장교들은 간접포병사격을 수정하는데 숙달되어 있지 않았지만, 직사화력을 조준하고 수정하는 것은 금방 해낼 수 있었다.


공군력

러시아군은 다수의 고정익 항공기를 운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즈니에서 제한된 전술적 가치만을 가졌다. 그들은 포병이 사거리 내로 이동하는 동안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들은 정밀공격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폭기들의 공격은 커다란 “무차별 사격” 지대에 집중되었다. 고정익 항공기는 도시 밖의 표적을 공격할 때 더 큰 가치를 제공하였다. 공격 헬리콥터는 훨씬 큰 가치가 있었으나 점령된 건물을 방호벽으로 삼아 교전지역 사이를 날아다녀야 했다.


연막과 최루 가스

연막과 백린탄은 그로즈니에서 극히 유용하였다. 폭발 후 불타는 백린탄은 연막 차장을 만드는데, 시가전에서의 이동에는 연막이 필수 불가결했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사격한 포탄 혹은 박격포탄 네다섯 발에 한 발이 연막이나 백린소이탄이었다. 러시아군은 백린 연막이 유독하며 방독면을 간단히 통과한다는 부수적 이점도 깨닫게 되었다. 백린탄은 어떠한 조약에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 최루 수류탄 또한 그로즈니 전투에서 극히 유용하였다.


결론

그로즈니 시가전의 실상은 소련군이 계획했던 시가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지형, 상황, 적이 모두 달랐다. 그로즈니는 우회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군은 그로즈니를 구하기 위해서 그 도시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에 직면하였다. 러시아군은 또한 136년 전에 체첸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웠을 때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문제에 봉착했다. 체첸인들은 도시, 마을, 촌락 하나하나를 요새로 탈바꿈시켜 러시아군 종대에 심각한 사상자를 야기했다.
두 경우 모두, 러시아군은 초반에 서투른 모습을 보였지만 적응하였고, 결국에는 시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최근 전훈은 러시아군 시가전 전술에 통합되었다.
by sonnet | 2006/11/21 21:49 | 정치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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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6/11/21 22:25
시가전에서 공격자의 전투분대가 다수의 1회용 대전차화기(러시아입장에선 RPG-18,22,26)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은 이라크전에서의 미군 역시 전훈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더군요. 접근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벽에 구멍을 뚫어 통로를 만드는게 주된 역할이라고 합니다.(역시 팔루자에서 미해병대가 다수의 AT-4를 주로 길 뚫는데 사용..)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6/11/21 23:23
사실 90년대 중후반경에 공개된 러시아 시가전 관련 논문에서 좀 의문스러운 것이...이같은 전술이 80년대까지 알려진 구 소련군의 시가전 전술과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서유럽 주요도시를 대상으로 한 구 소련군의 시가전 전술은 좀 더 거시적인 작전술 차원에서 볼때...일단 주력부대는 도시를 우회해서 계속 진격하고 2제대가 시가전 임무를 담당합니다. 시가전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므로 1제대가 직접 감당할 경우 전체적인 작전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죠.

시가전 임무를 맡은 제2제대는 대대급 지휘관의 통제 아래 중대급으로 수개의 강습단(Assault Group)을 편성합니다. 위에 나오는 이른바 Storm Group의 편성이 구 소련군의 시가전용 중대급 Assault Group과 완전히 동일하군요.

원래 기본적으로 정규전 시가전에서는 시가지 외곽에 방어거점이 편성되어 있는 상황을 상정합니다. 이 방어거점 격파는 특정 전술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되 외곽 방어거점이 격파될 경우 복수의 Assault Group을 독립적으로 작전시켜 시가지 주요 도로를 활용, 신속하게 기동시켜 도시의 중앙(상징적인 건물이 밀집한 곳)을 점령하는 거이죠.

이때 Assault Group은 저항이 약할 경우에만 장갑차량 탑승상태에서 기동할뿐 상당한 저항이 존재할 경우 보병의 도보기동에 의한 공격이 원칙이고 이때는 개별 건물은 보병을 one by one으로 공격하는 것이 또한 원칙입니다. 이런 공격은 원칙적으로 "slower pace and tempo"로 진행되는 것을 또한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시가전에서 전차가 집중 활용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외곽 방어거점 격파용이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차를 최선두에 세우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논문에 나오는 분석대로라면 시가전에서 전차를 앞세우거나 혹은 보병이 장갑차량 탑승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그냥 돌격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전통적인 구 소련식 시가전 개념이 아닌 것 같고 90년대 이후 러시아군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영된듯합니다.
Commented by gforce at 2006/11/21 23:33
결론은 IDF스타일(먼산)

...이스라엘은 3rd Reich인가!(퍽)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6/11/22 00:26
겨울전쟁을 다시보는것 같네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6/11/22 00:43
IDF야 어느새 그쪽 분야에 도가 터버렸으니[..]

(70년대만 해도 고지대의 요새를 공략하고 적의 기갑부대를 상대하는 정규전에 능한 IDF였지만 숱한 비정규전과 '테러에는 테러로' 대응하는 건국시기의 민병대 전술까지 되살리다 보니 정말 무궁무진한 군사국가가 되어버린듯[..])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6/11/22 00:53
ccc// 사실 어떤 의미에선 이색렬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함. 만약 1982년에 지금같은 3세대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대전차병기가 있었다면 꽤 많은 피해를 입었을 테니 말이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6/11/22 00:55
"그 도시를 구하기 위해 파괴해야 했다"

그 말도 참...^^

근데 이걸 어디서 처음 들었더라?
Commented by 행인1 at 2006/11/22 09:55
슈타인호프/ 베트남전중 데트공세 때 이야기 아니던가요? 조작이라는 말이 있던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6/11/22 09:59
라피에사쥬/ 확실히 이렇게도 저렇게도 쓸 수 있는 융통성이 풍부한 물건인 것 같습니다.

번동아제/ 말씀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1979년의 카불제압작전 같은 것과 비교해보면 "러시아군과는 다르다, 러시아군과는!"이란 느낌이 팍팍 옵니다.
첫번째 공격의 실패는 적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고, 이후 이어진 삽질들은 군의 준비태세나 훈련 및 장교들의 자질부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gforce/ IDF도 빈트 주베일에서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아텐보로/ 저때가 러시아군이 모든 면에서 바닥을 치던 시기입니다.

라피에사쥬/ 요즘 레바논 정세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서 IDF가 다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히즈불라가 집권한 레바논을 이스라엘이 묵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마왕/ 올 여름의 전쟁에서 IDF는 이상할 정도로 쬐끄만 마을들을 제압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이유가 뭘까요?

슈타인호프/ 하하. 칼리굴라 같은 느낌.
Commented by ssn688 at 2006/11/22 14:57
구하기 위해 파괴한다. 구정 공세 때 뺏고 뺏기는 격전이 있었던 월남 도시 "후에"를 두고 미 해병대 장교가 그런 표현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후에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 문화재도 많고 해서 "맘껏 싸우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도시였다죠.
Miltech에서 체첸에서 보인 러시아의 시가전술의 변화를 간단히 정리한 기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러시아의 결론은 "구하기 위해 파괴"로 귀결된 것으로 쓰더군요.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6/11/22 15:24
음 자세한 것은 전투양상을 봐야 하겠습니다만 부족한 정보에서 차이점만을 판단하자면 역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의 상대적 우열차가 줄어든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된 주된 원인은 전쟁인지 침공인지의 명분이 실제로 참여한 전투원 및 주변국들에게 필요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 두번째로 전투에 필요한 물리력 및 그 투사방법에 있어 히즈불라측이 1982년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아진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만 역시 어느 이유인지는 자세한 전투양상을 필요로 할 듯 합니다. (역시 20년뒤에나 알 수 있겠군요 -ㅂ-)
Commented by sonnet at 2006/11/22 18:02
ssn688/ 아 그렇군요. 저는 그런 유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우마왕/ 20년... 그렇게 흘러도 히즈불라측 정보는 안 나올테니 반쪽...
Commented by ssn688 at 2006/11/27 09:54
아, destroy to save의 과거 언급 사례에서 말씀을 잘못 드렸습니다. 기억에만 의지하니 실수했군요. 월남전 구정공세 때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Ben Tre라는 도시를 두고서 미군 장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베트남 10,000일간의 전쟁" 을유문화사 번역본 기준으로 363쪽에 있습니다. 이 도시의 위치는 지도상에서 못찾았는데, 문맥상으론 대충 사이공 남쪽 메콩 델타 지역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사처포 at 2007/09/10 23:35
우리 군도 공격과 방어훈련에..."시가전"을 가정하고 대비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전에는 자연장애물만을 가상하고 훈련했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7/09/12 19:24
사처포/ 그러려면 아무래도 대대급 정도가 들어가서 해볼 수 있는 시가전 세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예비군 교장에 있는 시가전세트 같은 거 말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 비슷한 것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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