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행정책임자 제이) 가너에게는 말하지않고 럼스펠드는 그를 현재의 가너보다 훨씬 강화된 대통령의 새로운 이라크 특사로 교체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새로운 특사는 초강력 행정관 내지는
총독(viceroy)에 가까운 존재가 될 것이었다.
4월 8일, 럼스펠드는 일군의 펜타곤 관료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한 후, 이 일을 스티브 허비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는 최선의 후보는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라고 적었다.
벡텔 사를 경영한 적도 있는 83세의 슐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세가중 한명이었다. 허비츠는 그를 세계적 대인
배라고 불렀다. 장점은 "언론이나 모든 협상을 요리할 수 있고, 국방부가 너무 나선다고도 너무 방치한다고도 욕먹을 일이 없을 것이란 것이었다."
단점 측면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
아마도 국방부보다 국무부 사람의 시각에 더 관용적일 것이며, 벡텔 사의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되었다.
그러나 허비츠는 이 일을 위한 다크호스 후보를 따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이라크를 경영하기에 최적의 인물은 폴 울포위츠였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에게까지 올라갈 수 있는 별도의 네 장 짜리 각서를 작성했다.
16개월 전에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향후) 두 세대에 걸친 전쟁에 들어갔으며
이라크부터 잡아야 한다'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블레처리 II 그룹의 멤버였던 허비츠는
성공이란 부시가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위한 모델"을 갖고 더 나아가 "이란을 전복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왜 대통령 특사는 국방부 부장관 울포위츠여야 하는가"라고 허비츠는 여기까지 치고, 새 단락을 시작했다. 울포위츠의 지명은
"이 지역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대한 국무부의 전통적인 저항을 꺾고(thwart)", 대통령의
자유에 대한 비전을 "세계 만방에 고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이미 국방부 부장관이기 때문에, 울포위츠는 "그의 현 직책에서 필요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폴 (울포위츠)만이 가진 장점이라면 그는 개인적으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문맥에서 "이라크인"이란 "이라크 망명객들", 특히
찰라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의 선정은 이라크 디아스포라의 중요성이 진정 핵심임을 명백하게 과시하게 될 것이다. 그는 총체적 전략을 장기적으로 상징할수 있는 최고의 심벌이다."
그리고 허비츠는 덧붙였다. "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플러스이다. 이는 종교에 대한 전쟁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며, 이 직위가 임시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나타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에서 대사직을 3년간 지냈기에 -울포위츠는 1986년에서 1989년 사이에
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냈다- , 문화적 민감성을 경험하였다.
다음날 오후, 허비츠는 이 각서를 럼스펠드에게 올렸다. 이 제안은 충격적이었고, 상궤를 벗어난 생각은 국방장관을 크게 감동시켰다. 럼스펠드는 비서를 불러 지시했다.
"여기서 허비츠의 이름을 빼. 그리고 표지를 덧붙여서 이걸 대통령의 개인 팩스에 넣어"
그는 훌륭한 친구들이 이 끝내주는 문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의 요약을 작성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각하께서 이 제안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시다면 저는 주말 아무때나 괜찮습니다."
주말에 허비츠는 점심을 함께 하며 AEI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체니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그의 울포위츠 각서 사본을 가지고 가서 건넸다.
"저는 각하께서 이걸 보셨으면 합니다. 왜냐면 각하 마음에 드실 것이거든요."
체니는 문서에 눈길을 한번 주더니 대답했다.
"이미 봤네."
"아.."
나는 어제 밤 저녁을 같이 먹으러 럼스펠드의 집에 갔었는데 그는 내가 그걸 읽을 때까지 밥을 안주려고 하지 뭔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흐릿한 미소를 덧붙이며 말했다.
"좋은 문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