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에 관한 논고
사회과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근원을 다룬다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에 대하여 자연과학보다 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인하여 사회과학에 대한 설명은 과학일반의 발전을 사회의 발전과 연관시키려는 포괄적인 시도 속에서 행해져야 될 것이다. - J.D. Bernal


0.들어가면서
과학자란 말 자체는 결코 오래된 것이 아니다. 1840년에 처음으로 휴웰(William Whewell)이 그의 저서 『귀납적 과학의 철학』(Philosophy of the Inductive Science)에서 과학자(scientist)란 말을 만들어내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과학의 육성자(cultivator of science)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명칭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과학자(scientist)라고 부르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알 수 있다.
1) 과학(science)이란 말은 과학자보다 (상당히) 먼저 존재했다는 것,
2) 그리고 19세기 중반이 다 되어서야 과학자라는 말을 따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

1.과학=철학(=계몽 학문)
과학(science)이 과학자보다 훨씬 오래된 용어라는 것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르네상스의 대표논객 라블레(François Rabelais;1494-1553)는 가르강츄아(Gargantua)에서 중세의 현학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별력 없는 과학(science)은 영혼의 파멸일 뿐이다.
(Science sans conscience nest que ruine de lame)

라블레의 글에서 과학(science)은 폭넓은 의미의 체계적 지식을 지칭하는 말로 철학(philosophy)으로도 바꿔 쓸 수 있는 단어였다.

이와 비슷한 용법은 훨씬 후대인 19세기에도 발견된다.

1823년, 버크벡(George Birkbeck)과 호지스킨(Thomas Hodgskin)이 '밤에 공부하자'란 모토를 내걸고 런던 직공학교(London Mechanics Institution - 후의 Birkbeck 대학)를 설립했을 때, 그 설립 목적은 노동자들에게 '화학 및 기계 철학(chemical, mechanical philosophy)의 사실들과 부의 창조 및 분배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과 관련하여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2.제도로서의 과학=과학자의 탄생
현대 과학은 장기간의 훈련과 견습 기간을 포함하는, 배타적인 직업이 갖는 많은 속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기에는 과학이 무엇인가 보다는 과학자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보는 쪽이 훨씬 쉽다. 실제로 과학에 대한 한 가지 손쉬운 식별기준은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과학자란 전문직, 그리고 그 전문직을 필요로 하는 집합적 조직체로서의 과학이란 제도는 새로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과학이다.
그러나 종전, 과학이 제도화 되기 이전, 과학이 개개인의 독립된 노력에 의해 진보하던 시대에 과학은 대체로 부유한 유한계층, 혹은 오랜 역사를 지닌 직업에 종사하는 유복한 사람들의 비상근 직업이 아니면 여가거리였다. 따라서 직업으로서의 과학자란 말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란 말이 탄생하기 전이건 후건, 과학/과학자는 특수한 경제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과학이 기술과 생산에 응용되어 많은 부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특정한 직접적 응용을 제외하면 과학의 생산물은 낱낱으로 떼어서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예전부터 과학자들의 첫째가는 관심사였으며, 그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었던 점이 과학의 진보를 더디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정도는 덜 하지만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산업/기술사학자들은 근대 기술발전에서 과학의 기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적다는데 동의한다. 즉 과학적 원리가 먼저 규명되고 나서 그것이 기술로 응용된 것이 아니라, 기술이 먼저 발명되고 그 이후 이를 설명하는 과학적 연구가 뒤를 따르거나, 과학적 선행연구에 해당하는 것이 있더라도 기술개발은 그와 무관하게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과학이 기술발전에 중요한 비중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는 제도화된 과학의 성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1940년대의 원자폭탄 개발은 제도화된 과학의 존재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의 제도화가 먼저 일어나 기술발전을 촉진했는지(공급견인), 기술발전의 필요성이 과학의 제도화를 이끌어냈는지(수요견인)는 분명치 않으나 둘이 긍정적인 피드백 관계를 형성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3. 좁은 의미의 과학, 자연과학의 탄생
그런데 과학자란 말이 생겨난 19세기에 과학의 의미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판자의 입을 빌려 보도록 하자.

하이예크(Friedrich Hayek)는 자신의 책 『과학의 반혁명』(Counter-Revolution of Science)에서 두 가지 의미의 과학, 즉 오래되고 폭넓은 의미의 과학새롭고 좁은 의미의 과학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는 "사심없는 탐구 정신(general spirit of disinterested inquiry)을 갖고 세상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연과학이 지배하는 학문이란 것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과학이란 용어는 오늘날 쓰이는 것처럼 아직 좁은 의미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으로 한정해 특별한 권위가 부여되지도 않았다.
19세기 전반에 새로운 태도가 나타났다. 과학이란 용어는 점점더 물리학이나 생물학 류의 학문으로 한정되었으며, 동시에 그들은 특별한 엄밀함과 확실성을 가진 학문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들과는 구별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성공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을 강렬히 유혹했고, 그들은 (좁은 의미의 과학의) 용어와 교수법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좁은 의미의 과학의 방법론과 기법들이 그 이래 다른 학문들에게 폭정(tyranny)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이예크가 주장하는대로 그것이 '폭정'인지는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하이예크는 자연과학을 모방한 주류의 방법론이 자신의 학문적 방법론과 심각하게 충돌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과학이 좁은 의미의 과학으로 한정된 것은 앞서 말한 제도로서의 과학이 성립한 것, 또 과학자란 말이 만들어진 것과 한 덩어리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과학자'라고 하면 그것은 당연히 '자연과학자'이고, '경제학자'는 자신을 그냥 '과학자'라고 소개해서는 안 되고 '사회과학자'라고 소개해야만 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4. 사회과학의 역사적 전개
사회과학은 인간 생활의 물질적 측면을 좌우하는 생산방법의 변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정치·경제적인 제도상의 변화에 자연과학보다 훨씬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또한 사회과학은 전과학시대의 전통적인 종교적 및 철학적 이데올로기들과 보다 명백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점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중세 스콜라 철학 최대의 논쟁들에는 주로 사회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통치권 문제에 관한 것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교황권과 황제권이 각각 어떤 영역을 차지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곤 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성경』과 이성에 합치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양 중세에는 사람들이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신학, 즉 크리스트교 철학·윤리 등이 답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했다. 교회는 또한 고도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자금, 행정조직, 전문연구자 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세 말에 교회의 힘이 쇠퇴하면서 여기에 중요한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어렵게 세속권력이 교회의 힘을 밀어낸 이상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다시 교회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해결사로서 인문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등장하자마자 스콜라 철학을 맹공격하기 시작했지만, 교회가 거의 천년에 걸쳐 만든 정교한 체제를 단번에 대체할 논리와 체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교회 이전 시대의 연구성과들 -그리스 철학, 로마법 같은- 을 재발굴해 무기로 삼고자 하였다. 이것이 고전학예의 부흥(renaissance)이다. 그러나 교회의 빈 자리를 메우는 일은 한 두 세대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사회현상을 「신(神)의 소업(所業)」에서가 아니라, 인과관계로 설명하려고 시도했고, 근대국가, 근대법, 근대경제, 근대사회를 규정하는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학자들과 연구결과들을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사회계약론』(The Social Contract, or Principles of Political Right; 1762)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
로크(John Locke; 1632-1704): 『인간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도덕과 입법의 제원리서설』(Introduction to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1789)

홉스, 볼테르, 몽테스키외, 베이컨, 흄, 콩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며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도 중요하다.
그로티우스(Grotius: 1583-1645): 『나포의 법적 권리에 관해』(De iure praedae; 1604)

이들은 후대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같은 분과학문을 따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종합(또는 미분화된) 사회과학을 계몽철학에 관한 저술(essay) 형태로 내놓았다. 이들의 저작을 현대의 분과학문의 범주에 두들겨 맞춰 생각하면 당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이들의 방법론에는 현대의 과학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연역논리에 의존하는 이론전개가 많다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과학에서 강조된 귀납적 연구방법론은 아직 대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귀납적 연구가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런던의 무역상 그론트(Graunt:1620-74)가 만든 『사망률표에 대한 고찰』(Remarks on the Bills of Mortality)이다. 이 책으로 그는 국왕의 특별한 윤허를 받고 왕립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것이 생명통계의 시작이었고, 핼리(Edmond Halley)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그론트의 뒤를 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넬리어스 드 유(Cornelius de witt:1623-72) 같은 관료들이 할리의 생명표를 이용해서 유리하게 연금을 팔아 네덜란드 재정을 위기로부터 구했다. 바로 여기에서 거대한 보험산업이 비롯되었다.

또한 페티 경(Sir William Petty)은 경제통계학에 해당하는 것을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이라는 저서에서 창시했다.

이후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좁은 의미의 과학=자연과학이 성가를 올릴 때쯤, 사회과학은 현재와 비슷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으로 빠르게 분화되었다. 이러한 분화의 시기에 걸쳐 있었던 인물이 칼 마르크스로, 오늘날에도 그의 저술들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전형적인 종합사회과학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5.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점을 사회과학에 관한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사회과학의 조상이 과학(science)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르네상스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일로 좁은 의미의 과학이 정립되기 훨씬 전이다. 이들이 과학인 이유는 중세 신학과 결별하고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학문을 재구성한 계몽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며, 같은 시기에 현대자연과학의 조상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과학의 일원이 되었다.

(2)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이 과학이란 이름을 독점하여 좁은 의미의 과학으로 정립되던 시기, 사회과학은 여러 분과학문으로 쪼개지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3) 분과학문으로 나뉘어진 이후, 이들 사회과학의 분과학문들 중 일부는 하이예크의 말처럼 "(좁은 의미의 과학의) 용어와 교수법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반면 정치학처럼 그다지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수용하지 않았거나, 윤리학, 법학처럼 좁은 의미의 과학과 잘 맞지 않아 오히려 스스로를 과학이라고 잘 주장하지 않게 되어버린 사례도 등장하게 되었다.

만약 사회과학의 제 분과학문을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연과학의 기법을 도입해 얼마만큼 자연과학에 가까워졌느냐로 규정"한다면, 그 각각의 분과학문을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묶기는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다.


버날의 글로 시작했으니 그의 글로 끝을 맺도록 하자.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다를 게 없는 척 하려는 시도는 아직 시기상조이고 기껏해야 착각이겠지만, 때로는 의식적인 기만행위이다. 이런 점을 깨닫지 못하고 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건 순전히 시간낭비다. 그러한 가르침을 전수받게 되면 거짓된 지식획득감만 팽배할 것이며, 그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학생의 직관에 떠올랐을지도 모르는 기초적인 것들도 못 깨닫게 될 것이다. - J.D. Bernal
by sonnet | 2006/10/31 07:07 | 과학기술 | 트랙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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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entalese at 2006/11/26 03:11

제목 : 단순성과 적합성
과학, 수학 그리고 모형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단순한 모형(왼쪽)보다 복잡한 모형(오른쪽)이 더 다양한 자료를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모형에서 단순성과 적합성은 교환된다. 바꿔말하면 모형이 복잡해질 수록 더 적합해진다. 누구를 진료하든지 "병에 걸렸거나 걸리지 않았습니다. 죽거나 사실 겁니다."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면 이 의사의 진단은 항상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진단이 이런 식으로 정확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 마찬가지로 모형......more

Commented by at 2006/10/31 10:26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말고 심리학과 언어학은 어떻습니까?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6/10/31 10:31
과학적 방법론이 사람 여럿 잡는군요. 과학이라는 이름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학정의 희생자라기 보단 학정의 전초기지쯤 되겠습니다.

사실, 요즘은 또 학제간 연구같은게 유행을 타고 있고 숫자놀음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많은 느낌이죠. 클래식이 왕도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뭐, 저야 "순수"하다는 학문과는 거리가 먼 입장이니 그렇겠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6/10/31 10:39
논외자의 입장이긴 하지만, 심리학이라는 분과의 주된 도구는 근래 들어서는 수학, 그중에서도 통계학에 가까운 편이죠. 응답지를 놓고 도수분포, 상관분석, 요인분석, ANOVA 등등 여러가지를 해서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는 방식을 취하죠.

그런데, 정작 심리학이라는 영역을 규정한 초기의 대가들은 통계적 도구에 의존하진 않았죠. 융은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프로이트 같은 경우에는 전형적인 질적연구(라기에는 좀 체계성이 없지만)를 했으니까요.

오히려 통계적 도구에 의존하기 시작한건, 저도 잘 찾아본건 아니지만, 산업심리학 연구들 -경영학 애들이 잘 배우는 호손실험 같은- 이 시초라면 시초죠. 그 연원에는 테일러같은 과학적 방법론 신봉자들(이라고 하기엔 테일러라는 사람은 기계공학 연구자죠)이 있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at 2006/10/31 13:26
아무 심리학 책이나 펼쳐보시면 심리학의 시점을 Wundt가 Leipzig 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을 창립한 1875년으로 잡습니다. 초기 심리학은 Wundt, Pavlov 같은 생리학자나 Helmholtz 같은 물리학자들이 정립했고 오늘날의 심리학도 그 전통 위에 있습니다. 요인분석도 근래들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Spearman이 지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기법입니다. 이 시기엔 1/1000초 단위로 측정하는 실험을 수 만 번씩 해서 정확한 반응 함수를 구하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지금이야 온갖 하위 분과들이 생겨나서 설문지 같은 거 돌리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덧붙여, Freud는 이들보다 한 세대 다음 사람입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6/10/31 14:38
Wundt를 뺄 뻔 했군요. 비전공인 영역이다 보니.... 그런데 생리학이나 의학의 인접학문으로서 말하는 심리학과, 프로이트 같은 사람이 말하는 문화인류적인 관점의 심리학은 좀 핀트가 다르다고 봅니다만.

반응 실험 같은거야 과학에 근접할 수 있긴 합니다만... IQ같은 지능지수 이론쯤 되면 정말 "과학의 탈을 쓴" 이라는 말에 근접하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늘 논쟁의 한 구렁텅이에 있는 것이 지능지수와 지적능력의 상관관계이니 말이죠. 이걸로 발달심리 같은데 있는 양반들 논문 날로 먹기도 많이 하고요-_-.
Commented by sonnet at 2006/10/31 16:24
귤/ '12-3'은 12를 잘못 읽고 쓴 것으로 보여서 좀 부연해 봤습니다.

"사회과학이 사회라는 대상의 연구에 자연과학의 기법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주장"(귤)
"자연과학이 자연철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같은 계몽주의적 방법론을 도입해서 사회과학이라는 장르를 발전"(sonnet)
는 분명히 다른 거죠. 시기적으로나 내용적 양면에서.

19세기의 주류였던 비교언어학 등은 위 이야기에 잘 맞지 않나요? 심리학은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인지 잘 모르겠군요.


안모군/ 학제간 연구란게 유행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학문을 잘게 쪼개 놓으니 시야가 좁아지고 저절로 경계선 부분의 연구가 시원찮아진다는 측면을 땜질해야한다는 요구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페페 at 2006/10/31 17:48
원 주제가 된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다시 리플을 답니다. ^^;

처음에는 얼래 최근의 경향은 학제간 통합기조가 있고 그런 일부 분야에서 본다면 어느정도 자연과학적인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할 뻔 했는데.....

그게 핵심이 아니였군요. ^^;

당연하신 소리에 약간의 예외 사항을 왜 안넣으셨나 했더니 이유를 금새 깨달았습니다.

예외는 예외고 주류는 주류겠죠.

그럼..
Commented by 페페 at 2006/10/31 17:49
사족으로 원글에 대한 링크가 있었다면 불필요한 오해가 줄었을거 같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6/11/03 10:23
페페/ 원래는 standalone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잘 안됐나 봅니다.

이런 각도에서 돌이켜보면 사회과학(정확히 말하면 그 전신인 계몽사상)이란 건 교회와 싸운다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매우 실용성이 높은 학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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