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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들어간 소련군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다음 두 장의 지도를 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와 간선도로가 표시된 지도이고, 두 번째는 소련군의 초기 아프간 침공 경로와 전쟁기간 중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빗금친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

아프간의 주요 도시와 간선도로(클릭하면 확대)

소련 침공로와 점령지(클릭하면 확대)

이 두 장의 지도(특히 두번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이 한 일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두번째 지도의 소련군 점령지역(빗금친 부분)은 첫번째 지도의 "간선도로" 및 "비행장"과 그대로 일치한다.

즉, 그들 대부분은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보급로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보완하는 다른 증거가 있다.
다음은 같은 기간(1980-1981) 동안 아프간 주둔 소련군제한분견대를 임무구성별로 구분해 본 것이다.

주둔군 총 기동 대대: 73개
보급선 경비 임무를 수행한 대대: 20개
비행장 경비 임무를 수행한 대대: 14개
핵심도시 경비를 맡은 대대: 4개
아프간 정부 공공청사 경비를 지원한 대대: 11개
거점, 주둔지 등을 경비한 대대: 16개
전투임무를 위해 가용한 대대: 8개


무자헤딘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소련군도 이에 대응해 병력을 증강하면서 80년대 중후반에는 전투임무가용(즉 무자헤딘 소탕) 대대가 점차 늘어나지만, 전투임무가용 대대는 가장 많을 때도 전 부대의 30%를 넘은 적이 없다.

이 전쟁에 익숙치 않은 분들께는 놀라운 결론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련군은 주로 경비를 섰다는 것이 이 전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다.
by sonnet | 2006/09/26 07:43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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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 quarantine.. at 2006/09/26 14:37

제목 : 아프간 출병: 소련군 참모본부의 견해
앞서 포스팅했던 아프간 전쟁의 전개에서는 서방연합군의 병력이 너무 적어 '소탕 후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었다. 그렇다면 1979년에 아프간을 침공했던 소련군의 판단은 어떠했을까? 예전에 정리해 놓았던 글인데 참고 삼아 올려놓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1) 아프간 파병 병력은 왜 그 정도 규모로 결정 되었는가 2) 아프간 파병 소련군이 경비 임무에 주로 투입되었던 이유 3) 파병 결정을 놓고 벌어졌던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8/12/16 18:48

... 경비)에만 맡으면 된다. 나머지는 아프간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희망적인 가정을 하였다.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의 교훈 즉 아프간에 들어간 소련군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이 주로 경비를 서게 된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평정작전에 필요한 3,40개 사단의 병력을 동 ... more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6/09/26 11:37
아프가니스탄 "침공작전"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수호작전"이로군요 -_-;;
Commented by band at 2006/09/26 12:27
시속 '15km'대의 '우랄케러번'을 지킬려면 그만큼 많은 역참이 있어야죠, 뭐 역참들의 평균속도가 700년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문제니까..
Commented by 愚公 at 2006/09/26 13:54
좀더 정확하게는 아프가니스탄 주준 소련군 수호작전이겠죠.

베트남전 당시 미군은 어땠는지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6/09/26 14:31
슈타인호프/ 맞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주"(공산) 정권 수호작전이지요.

band/ 그 별명이 우랄 캐러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소련군들의 기록을 보면 구급차의 기동속도가 딱 시속 15km정도에 불과해 환자 수송이 매우 어렵고, 수송헬기가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합니다.

愚公/ 공산정권 보위작전에 좀 더 가깝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은 좀 성격이 달랐는데, 학생이 너무 못하니까 선생이 직접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Commented by 愚公 at 2006/09/26 14:36
sonnet / 뭐, 미군은 '경비'병력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거죠.
Commented by band at 2006/09/26 15:10
우랄이 러시아의 주요 트럭메이커중 하나이던가 합니다. 낙타가 트럭으로 바뀌였을뿐이니...경비부대나 하라고 맏긴 정부군은 1:서로 치고박고 싸우거나 2:출발할때는 정부군인대 중간에 무자헤딘이 되서 고대로 들고 튀거나..3: 중간에 짜웅한다고 몇대 주저앉치기를 너무나도 잘한다는 거였죠. 출처불명의 수송단의 보고는 1:소련의 아프간 상주병력수는 수송능력을 고려할때 15만 이상은 안넘을 것이고 2: 무자헤딘이 계속활보하는 이상 소련국내경제의 압박으로 10년내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올것이고 3:그 최대요인은 물자수송비용때문이다..라고 했다고 하지요..-;-..보통 2~30대의 케러번이 지역토호(무자헤딘으로 부르고 싶지만..정부군도 가끔가다 습격했다더군요..--..--)들의 등쌀에 100여대의 대장정으로 늘어지고 낙후된 도로사정과 각종 장해물, 운전병들의 피로와 운전미숙으로 기준속도(30km/h가 당이 교시한 것)의 절반이하로 밖에 못움직였다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6/09/26 21:31
愚公/ 글쎄 저도 당장 수중에 그렇게 정리된 자료는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band/ 예. 대부분 소련군 참모장교들이 말한 전훈과 일치하는 이야기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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