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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무어 허쉬의 레바논전 관련 기사 요약
세이무어 허쉬는 월남전에서 밀라이 학살사건을 특종해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전문기자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인물이다. 우드워드가 정권측 인사들의 특별배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명 소식통을 이용한 책을 많이 쓰는 인사이더라면 허쉬는 전형적 아웃사이더 스타일로 익명을 조건으로만 이야기하는 소식통에 의존한다.
허쉬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러한 익명의 소식통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불만이 있어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편향된 의견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허쉬의 기사는 기밀문서들이 해제되지 않아 전모를 알기 힘든 최근의 사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가시가 있는 장미와도 같다. 가능한 다양한 출처들을 이용해 cross-check한다는 조건 하에서는 하나의 유용한 출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background briefing으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그러한 허쉬가 이번에는 이스라엘-히즈불라 전쟁에 관련해 기사를 냈다. 흥미롭지 않은가?
본문이 상당히 긴 관계로 요점만 발췌 정리해 둔다.

Watching Lebanon (New Yorker, 8월 14일, Seymour M. Hersh)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이란공격계획과의 관계
* 이란 핵시설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전쟁계획을 내놓으라는 백악관으로부터의 강한 압력을 받고, 미 공군의 고위 전략기획자들은 이스라엘 공군의 상대역들과 협의하기 시작했다.

* 미국 정부 내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의 연습경기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 전직 고위 정보관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계획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세우고 있던 계획의 판박이"였다. 공군은 이 계획에 열심이었지만, 육군/해군/해병대는 결국 지상병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며 이에 반대했다.

* "이 지역 최강의 군대 -이스라엘군-이 인구 400만에 불과한 레바논 같은 나라를 평정할 수 없다면 그런 수법을 전략적 종심도 있고, 인구 7,000만의 이란에 적용하는데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폭격이 달성한 유일한 효과는 민중을 이스라엘에 대항해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전 국무부 부장관 Richard Armitage)


하마스-헤즈볼라-이란-시리아
* "헤즈볼라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두세달에 한번 꼴로 작은 도발을 했었다. ... 그러나 그들은 병사들을 납치함으로서 판돈을 올렸다."

* 이스라엘군 신호정보부대 Unit8200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하마스-헤즈볼라-칼리드 메살 사이의 통화를 도청했다. 하마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부터 테러 전술을 축소했었다. 그러나 "테러를 줄였지만 얻은게 없으며 팔레스타인 민중들 사이에서 지지도만 떨어지고 있다며, 테러 사업으로 복귀해서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스라엘의 정책결정
* 이스라엘의 당면한 안보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원하던 원치 않던 히즈불라와의 대결을 불사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고 이스라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 7월 12일의 납치사건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스라엘은 히즈불라를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부시 행정부 관리들과 공유했다.

* 이스라엘은 고속도로, 연료저장소, 공항 활주로 등을 두들기면,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수니파 무슬림들이 히즈불라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믿었다.

* "이스라엘은 코소보 전쟁을 모델로 연구했다. 이스라엘은 콘디 라이스에게 '당신네는 70일 걸렸지만 우리는 절반이면 충분하오'라고 큰소리쳤다."

* 작전계획의 핵심 기획자는 공군출신의 IDF참모총장 단 할루츠 중장으로, 이란에 대한 항공작전 계획도 수립했었다. 예루살렘 시장 출신의 올메르트 총리나 노조지도자 출신의 페레츠 국방장관은 경험이나 전문성에서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 "내 평생에 전쟁에 뛰어든다는 결정이 이렇게 빨리 내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 우리는 보통 면밀한 분석을 통해 결정을 내리곤 했다." (전 모사드 요원 Uzi Arad)


미국의 정책결정
* 체니 부통령과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전부보좌관은 이스라엘의 계획을 지지했다.

* 엘리옷 에이브럼스가 이란 문제와 이스라엘-히즈불라 전쟁에 대한 핵심 정책결정자로 대두함에 따라, 라이스 장관의 입지가 퇴색했다.

* 8월 초에 라이스 국무장관이 시리아와 직접 대화를 해보자는 의견을 꺼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이라크전을 촉구하던 공격적인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럼스펠드 장관이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시사한다. 혹자는 럼스펠드가 이스라엘과 히즈불라 간의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부시와 체니의 입장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들은 한 팀이란 점에 변함이 없다.

* 히즈불라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잘 버텨내고 계속 반격하자, "백악관 내에서 이란 공격을 지지하던 파벌에게 이는 심각한 패배였고, (이란을) 폭격하면 이란 내부에서 불만세력이 터져나와 반란을 일으킬거라고 주장하던 세력들도 자세를 낮췄다."

* 사우디 외무장관 사우드 알-파이잘이 워싱턴에 찾아와 즉각 전쟁을 끝낼 것을 요청하자 백악관은 실망했다.


오판
* 이스라엘은 고속도로, 연료저장소, 공항 활주로 등을 두들기면,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수니파 무슬림들이 히즈불라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믿었다.

* 미 국무부 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레바논 정부가 히즈불라가 통제하고 있는 남부 지역을 장악할 수 있도록 레바논 정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 미 행정부 내에서 히즈불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하는 사람들 조차도 레바논 국민이 히즈볼라에 대립하도록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by sonnet | 2006/08/15 20:33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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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원칙을 굽히고 적들과의 타협을 모색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다. 게다가 타협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적들이 파타 대신 그들을 지지할지는 분명치 않았다. 반대편에는 늘 하던 대로 싸운다는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제2차 레바논 전쟁의 교훈은 이스라엘 군에게도 이길 수 있는 길은 있다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은 히즈불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히 ... more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6/08/15 20:55
도대체 적의 민간 시설을 폭격하고 두들기고 박살내면 전쟁 수행 의지를 저하시킨다는 환상은 왜 한세기가 지나도록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06/08/15 21:31
물과 물고기는 분리해야지만.....지금까지 제대로 성공한 나라가 있던가 모르갰습니다. 극동의 요상한 나라도 결국은 성공이라고는 못하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6/08/16 15:30
하얀까마귀/ http://sonnet.egloos.com/2588491 를 참고~

band/ 강철의 대원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동지나 사담 후사인 형제 정도면 성공이 아닐까요.
제가 받은 인상으로는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원주민이 원주민을 제압하는 것이 외세가 원주민을 제압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06/08/16 20:16
사담은 그나마 공공의 적이 있다는것이 다행이었갰죠. 국가개념보다 종교, 부족개념이 앞서는 동내니 한번찍힌넘은 영원히 찍어버릴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죠. 물론 그래서 공공의 적이 됬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6/08/17 18:20
band/ 사담이 걸프전 이후에 "위대한 앗시리아 제국의 재래"을 외치며 선전전을 한 건 한 편의 희극이었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족장들에게 특권을 주어 내정안정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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