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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굴욕
지난 수 년간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 함께 소위 EU3란 이름으로 미국을 대신해 이란과 핵 협상을 해 왔다.

그러나 이란의 새로 집권한 강경파 정권이 유리해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EU3와의 지리한 협상을 개무시때리고 핵 도박판의 판돈을 올림으로서 "양키와는 다른" 온건하고 합리적인 외교를 성공시키려던 이들의 체면을 구겨놓았다.

다음 두 글은 이러한 독일의 굴욕감과 분노, 그리고 지난 협상에서 얻은 그들의 교훈을 잘 보여준다.

이란 핵문제, 대타협 나서라(요슈카 피셔)

* 필자: 요슈카 피셔 (독일 전 외무부 장관)
* 출처: 중앙일보
* 일자: 2006년 6월 5일

이란 핵문제가 갈수록 불안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란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데는 이슬람권의 헤게모니를 쥐고 국제사회에서 수퍼파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열망이 깔려 있다. 현재 이란은 중동의 권력 판도에서 이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특히 테헤란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함께 레바논.시리아.이라크를 모두 활용하려 한다.

중동지역의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이란의 의지와 결합된 핵개발 야망은 극도로 위험하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폭탄을 획득하거나 생산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자신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란 핵무기는 유럽의 안보에도 위협이다. 독일.영국.프랑스는 2년 전부터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테헤란과 협상해 왔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을 보면서 이란의 지도자들은 서방세계가 이란의 선의에 기댈 정도로 약해진 것은 물론, 고유가는 서방으로 하여금 이란과 심각한 대결을 두려워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란 정권의 이러한 분석은 위험할 뿐 아니라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란의 핵개발은 조만간 '뜨거운' 대결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갈등의 핵심은 누가 중동을 지배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란인가, 아니면 미국인가. 내가 보기에는 이란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의 폭발성과, 핵개발을 막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 만약 미국이 유럽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그리고 비동맹 국가들인 77그룹의 협조를 얻어 이란에 '대타협(Grand Bargain)' 방안을 제시한다면 아직 외교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남아 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동결하는 대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아래 원자력 연구와 기술 개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만일 테헤란이 이 같은 제안을 거부하면 이란의 리더십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짐작하건대 앞으로 협상은 꿈꾸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서방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이란을 경제.재정.기술.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란의 선택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서방의 인정(recognition)과 안보를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완벽한 고립을 택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서방이 이러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란의 원유와 가스 가격 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란이 핵강국으로 등극하느냐, 혹은 이것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쓰느냐 하는 두 가지 다른 옵션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고유가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서방-이란의 군사적 대치가 몰고올 끔찍한 상황, 그리고 이란의 핵무장이라는 결과를 염두에 둔다면 미국도 협상 시나리오 없는 강경책을 밀어붙이거나 과거처럼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미국은 객관적이면서도 침착한 리더십을 발휘, 이란과의 협상을 단호하면서도 조화롭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협상이 성공하면 적절한 보장을 약속해야 한다. 모름지기 핵문제처럼 중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신뢰와 도덕성이 중요한 법이다. 미국과 이란의 '대타협'은 국제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킬 것은 물론 이란에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방안은 미국이 책임감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란 핵 문제의 실상(요제프 요페)

* 필자: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박신홍 기자
* 출처: 중앙일보
* 일자: 2006년 6월 7일

지난달 하순 미국은 이란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를 꾀했다. 유럽 동맹국인 영국.프랑스.독일과 이란의 핵 협상에 미국도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붙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란 정부는 먼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첫 대답은 "예스"였다. 하지만 곧이어 "노"라는 답변이 뒤따랐다. 대화하는 데는 찬성이지만 어떠한 전제조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시한 것이다. 유럽인은 지난 3년간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경험했다. 유럽연합(EU)의 세 나라는 이란에 "핵 개발을 제발 중단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해 왔다. 엄청난 규모의 당근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란 정부는 협상을 3년간 질질 끌었으며 그동안 집요하게 핵무기 개발을 계속했다. 결국 그들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며 협상을 거부해 EU 세 나라를 허탈하게 했다.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이란은 핵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고유가 시대는 당분간 계속된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라는 사실은 구조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도 이란에 경제제재를 하자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제재하면 이란 경제는 멈춰서겠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가가 폭등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아무 쓸모가 없다. 미국과 EU가 이론적으로는 이란의 핵 개발 시설을 파괴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동원해야 하고, 적잖은 후유증을 감내할 각오도 해야 한다.

이처럼 문제가 꼬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은 분명 잘못된 시기에 엉뚱한 대상을 공격했다. 전략적으로도 대실수였다. 미국의 이해와 중동의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은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이란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의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을 없애 버리겠다고 공언하며, 진짜 핵을 개발하던 나라는 이라크가 아니라 이란이었던 것이다.

황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후세인 제거로 이란의 전략적 가치를 10배 이상으로 높여놨다. 후세인은 1980년부터 8년간 이란과 전쟁을 치른 뒤 이란의 최대 라이벌이 됐다. 그런 후세인을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 없애줬으니, 이란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됐다. 더욱이 미국은 후세인 잔당을 소탕한답시고 이라크 내 시아파를 적극 지원했는데,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동지 관계다. 게다가 미국은 이라크에서 끝 모를 반정부 시위에 허우적대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이런 시위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란이 지금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자리 잡은 적은 없었다. 이란 정부도 이런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이 EU 3국에 "당근을 주든, 채찍을 쓰든 맘대로 하세요. 우린 신경 안 씁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은 "핵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중국과 러시아에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다. '석유 무기화'라는 카드를 이따금 흔들어 보이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이란이 잠시나마 핵 개발을 멈추고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뿐이다. 하지만 유가는 폭등하고,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이란이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맞다.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무력을 갖고 있어도 엉뚱한 놈을 붙들고 국력을 탕진하고 있어서는 될 일도 안된다.

시아파 거주지대

그런데 지금같이 서방이 약세인 상황에서 "인정과 안보" 따위로 테헤란의 지도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란은 "핵 없이도" (시아파를 대변하는) 지역 맹주의 지위를 확고히할 수 있음을 스스로 확신할 때, 비로소 핵무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엔 미국은 결국 테헤란을 리야드나 텔 아비브와 동렬에 올려놓고 모시는 방향으로 중동전략을 새로 짜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Viva Neoconne!
by sonnet | 2006/06/08 15:01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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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SoulTown - Down .. at 2008/08/13 12:49

... 게 개입을 하면서 간지나는 조정자☆로서의 일면을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독일과 영국과 함께 EU3랍시고 EU의 이름을 써먹어서 이란 핵사태에 조정자 노릇을 하려고 했다가 상대의 KIN을 먹은 굴욕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이래저래 미묘한 타이밍에 터진 이번 전쟁에서 사르코지는 EU의 장으로서 재빠르게 휴전협상안을 내놓았고, ... more

Commented by 보드뷰라드 at 2006/06/08 15:17
그러지 않아도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할것이냐 말것이냐 루머가 흉흉하게 들려오는데..먹구름의 징조일까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세는 소넷오빠네서 요긴하게 정보 얻고 있습니다. ^_^ 감사해용)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6/06/08 15:27
그냥 이락을 만나면 이락을 베고, 이란을 만나면 이란을 베고...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6/06/08 16:20
EU로서는, 특히 독일로서는 무력 자체가 받쳐주질 않으니 결국 협상력이 모자란 셈이고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저렇게 된 모양이군요.
카운터파트 쪽은 어차피 협상으로 얻기 보다, 협상판을 엎어버리는게 얻는게 많고(또는 그렇게 믿고) 하니 될리가 없어 보입니다. 또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전혀 다를테니....
정말로 Thanks Neoconne! 이군요.-_-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6/06/08 16:47
게게게 하는 신음소리만 나옵니다.
Commented by 로리 at 2006/06/08 17:09
네오콘 만세로군요..(어디가?)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6/06/08 19:06
정말 동감할수 밖에 없는..;;;;;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6/06/08 19:54
스카우크로프트가 여러 번 천명했고 톰 아저씨가 Executive Order에서 묘사한 것처럼 후세인이 제거되고 이라크가 몰락하면 그 공백을 메울 건 이란 뿐이고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강화될 거라는 건 뻔할 뻔자인 데..

뭐 이라크 전으로 젤 득 본 게 이란이고 미국이 친이란계 시아파 정권 수출을 대신한 셈이 되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죠. ( 뭐 일각에선 OSP 네오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살라비의 이란 커넥션을 들어 이라크 침공 자체가 이란의 정보모략일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는 판이니)
Commented by 길잃은 어린양 at 2006/06/08 23:13
상당히 흥미로운 상황이죠. 올 초만 하더라도 유가 100달러를 떠들어 대던 연구기관들도 있었으니. 앞으로의 사태 전개가 꽤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6/06/14 11:25
보드뷰라드/ 재미있게 봐 주니 감사~
최소한 6개월 정도는 전쟁이든 뭐든 나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군사적 대결이 있을지는 나도 예의주시하는중.

하얀까마귀/ 자기 손가락을 내려찍지 않아야 할 텐데요.

안모쿤/ 이라크에서 깽판 나기 전에는 회담장 밖에서 몽둥이를 들고 어르는 미국이 Bad Cop, 회담장 안에서 당근을 내미는 EU3가 Good Cop이라는 역할분담이었기 때문에 대충이라도 회담이 굴러갔던 건데, 그 구도가 깨진 거죠.

功名誰復論/ 동감입니다.

로리/ 반자이~ 우라~

루시앨/ 사실 저도 상당히 갑갑합니다.

腦香怪年/ 그 가능성을 웃어 넘길 수가 없죠. 브랜트의 이란 해법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한번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길잃은 어린양/ 무력충돌이 있기 전에는 세자리수가 되긴 힘들 것 같지만... 두고 봐야죠.
Commented by gforce at 2006/06/16 12:22
정말 비바 네오콘이군요ㄱ=;;

腦香怪年님 이글루에서 넘어왔습니다. 링크 신고드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6/06/16 21:18
gforce/ 어서오십시오.
저도 링크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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