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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lassified sample
우연히 이런 쪽 취미 이야길 했더니 너무나 즐거워하시는 분이 있어 look&feel을 공개하기로 함. "읽기도 하시나요?"에 대한 답이 될라나?
(이런 거 너무 궁금해 하면 개조당하는 수 있으니 주의)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겼다구 생각하면 됨.



위 글의 내용(번역: sonnet)

■■■■■■■■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30009
Washington D.C. 20504

2001년 1월 25일
■■■■■■■■■■■           NSC 기밀해제 검토(E.O. 12958)
기밀분류자: Richard A. Clarke /X/ D.Sanborn에 의해 일부를 제하고
이유: 1.5(d) (x6) 보이는 것처럼 수정됨 일자:2004/04/07

기밀해제일자: 2025년 1월 25일
출처: 복수의 원천

정보
콘돌리자 라이스를 위한 각서

발신: 리처드 A. 클라크(Richard A. Clarke)
제목: 대통령 정책 이니셔티브/리뷰 -- 알 카이다 네트워크

오늘 스티브가 우리에게 주요 대통령 정책 검토나 이니셔티브를 제안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알 카에다 네트워크에 대한 그런 장관급 정책검토를 시급히 필요로 합니다.

그저 어떤 테러리스트 그룹인가?
당신에게 올린 브리핑에서 우리가 언급한 것처럼, 알 카이다는 더 큰 지역 정책에 포함되어야 할, 그저 그런 협소하고 사소한 테러리스트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여러 가지 지역 정책을 알 카이다 네트워크에 의해 야기되는 우리 이익과 미국에 대한 과도기적 도전을 중심으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GCC, 북아프리카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정책 검토를 진행하게 되면, 우리는 알 카이다에 대한 포괄적이고 다지역적인 정책을 위한 필요성을 부적절하게 다루게 됩니다.

알 카이다는 활동적이고, 잘 조직된 일급 세력으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매개체로 뒤틀린 버전의 이슬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 무슬림 세계에서 미국을 몰아내기 위해, 모로코에서 인도네시아까지의 나라들에서 우리의 군사적 경제적 존재를 철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것
-- 무슬림 국가들의 온건하고 근대적인 서방식 정권을 탈리반 노선을 따르는 신정 국가로 교체하는 것

알 카이다는 주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 대한 우리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자들은 알 카이다를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조직의 네트워크의 힘은 우호적인 아랍 정권들이 이라크 정책과 중동 평화 프로세스를 포함한 일련의 미국 정책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의 범위를 제약합니다.
만약 우리가 알 카이다가 야기하는 도전을 과소평가하거나 알 카이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온건하고 우호적인 정권들의 안정성을 과대평가한다면 우리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연기된 시급한 결정들

클린턴 행정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알 카이다에 관한 두 가지 정책결정이 연기된 채 부시 행정부로 넘어왔습니다.

-- 첫째, 아프간 북부동맹을 탈리반/알 카이다에 대한 실질적인 대항세력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게 충분한 원조를 제공하여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는 북부동맹이 겨울이 지나 전투가 재개되는 올 봄에 사실상 무력화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 탈리반을 위해 싸우는 핵심 전투부대였던 알 카이다 제55여단이 자유롭게 되어 그 병력을 그들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투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지원이건 봄 전투에 영향을 주기 위해 제때 도착하려면 지금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 둘째, 알 카이다/IMU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지원을 증가시켜야 하는가? ■■■■■■■■■■■■■■■■■■■■■■■■■■■■■■■■■■■■■■■■■■■■■■■■■(작전에 대한 세부사항, CIA의 요청으로 삭제됨)■■■■■■■■■■■■■■■■■■■■■■■■■■■■■■■■■■■■■■■■■■■■■■■■■■■■■■■■■■■■■■■■■■■■■■■■■■■■■■

그 외, 현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세 가지 다른 문제들이 있습니다.

-- 첫째, 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 카이다 은신처(sanctuary)를 끝장내는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탈리반과 파키스탄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는 전부터 개별적으로 양 쪽에 강력한 메시지를 제기해 오고 있습니다.

-- 둘째, CIA에 의한 반 알 카이다 작전과 국무부와 CIA에 의한 대테러 훈련과 지원을 위해, 02회계연도 예산에 현저한 프로그램 증액을 제안할 것인가?

-- 셋째, USS 콜(Cole) 호에 가해진 공격에 대해 행정부는 언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결정은 명백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것 같은 몇몇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만, 이제 콜 호에 대한 더 어려운 결정에 직면할 차례입니다.
콜 호 사건의 경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장소,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정책을 사용해야만 하며, 무릎반사를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
■■■■■■■■■■■

아래 첨부된 것은 당신께 드리는 지난 행정부에서 개발된 알 카이다에 대한 2000년 연말의 전략입니다. 1998년 전략도 함께 첨부합니다.
둘 다 “비밀 작전(covert operation)으로만 한정”된 접근이 아닙니다. 양쪽 모두 외교, 경제, 군사 그리고 공개 외교와 첩보 수단들을 통합한 계획입니다. 우리는 2000년 문서를 기반으로 삼아 장관급 검토회의를 위한 정책결정 문서/지침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알 카이다에 대한 장관급 회의를 즉시 개최하여 다음 주제들을 다룰 것을 권고합니다.

1. 위협의 강도: 알 카이다 네트워크가 일련의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일급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각료들이 동의하는가?
아니면 이 분석이 “쓸데없는 기우(chicken little)”를 과장한 것이며, 우리는 주요한 새 정책 없이 이 문제를 보다 일상적인 방법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인가?

2. 전략: 만약 이것이 시급한 문제라면, 기존의 전략을 어떻게 수정하거나 강화할 것인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지지 못한 기존 전략의 두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알 카이다의 자금 추적, b) 알 카이다의 선전선동에 대처하기 위한 공공홍보

3. 02회계연도 예산: 02회계년도에 알 카이다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설계된 국무부와 CIA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증가시켜야 하는가?

4. 즉각적인 ■■■ 결정: 우리는 북부동맹과 우즈벡에 대한 ■■■ 자금지원을 시작해야 하는가?

당신이 그러한 결정/토론 문서를 원하시거나 배경 문서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시다면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

동의함: Mary McCarthy, Dan Fried, Bruce Reidel, Don Camp

첨부
Tab A 2000년 12월 문서: 알 카이다 지하드주의자 네트워크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 현상과 전망
Tab B 1998년 9월 문서: 알 카이다에 대한 정치-군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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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1] Steve Hadley 국가안전부보좌관. 현재는 Condolezza Rice의 뒤를 이어 국가안전보좌관으로 승진
[역주2]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 IMU)


그러나...

(미 상원 iraq WMD 보고서 中)

이런 게 몇 페이지씩 나오기 시작하면 많이 난감하다.

이런 자료를 볼 수 있는 배경인 美국립문서보관소(NA)와 美정보자유법(FOIA)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참고]미국의 정보 공개제도(신복룡)

3) 미국의 정보 공개
미국에 소장된 한국 관계 자료를 논의하자면 우리는 동학(同學)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소위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NA)의 역사와 기구, 자료 보존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런 연후에 소장 자료의 내용과 그 접근 방법을 살펴보아야 한다.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는 1934년에 설립되어 193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세워진 것이 지금 일반적으로 국립문서보존소라고 불리고 있는 건물이다. 이 기구는 1950년에 제정된 연방기록법(Federal Records Act)에 따라서 각지에 (Federal Records Center: FRC) 9개소를 확장했다.

이때까지 국립문서보존소라는 조직으로 존재해오던 체제는 정확히 말하면 1949년 설립된 국가문서기록관리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Service: NARS)을 말하며, 이 조직은 대통령 직할의 연방재산행정청(Federal Properties and Administrative Services: FPAS)에 속하는 하나의 부국(部局)이었다. 1955년에 연방재산행정청법(FPAS Act)이 개정되어 대통령기념도서관이 NARS의 관할로 이관됨으로써 연방기록보존소는 더욱 확장되었다. NARS는 1985년에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National Archives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의 본청 건물을 상징적으로 의미할 뿐이고 national archives라고 할 경우에는 ‘영구 보관 문서’라는 보통 명사로서 그 보다 한 격(格)이 낮은 ‘기록’(records)의 비교 개념일 뿐이다.

이 밖에도 16개소의 연방기록보관소(FRC)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워싱턴 국립기록보관소(Washington National Records Center: WNRC)이다. 이곳은 연방기록보관소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NARA의 공간이 부족하여 그 확장고로 1950년에 매릴랜드 주의 수틀랜드(Suitland, MD)에 설립된 것으로서 NARA의 많은 문서들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일약 유명해진 곳이다. 원래 워싱턴에 있는 NARA의 본관에는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워싱턴의 본부가 자료의 수량과 이용객의 증대로 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자 지상7층 건물의 각층을 다시 2층으로 나누어 14층으로 만들어 자료를 수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장소가 협소하게 되자 일반문서들(General Archives Division)을 수틀랜드의 WNRC로 이전했다가 최근에 다시 칼리지 파크(College Park, MD)의 제2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II)로 이전했다. 1994년에 완공된 칼리지 파크의 문서고에는 이전에 수틀랜드의 WNRC에 보관되었던 자료와 워싱턴의 국무성 자료. 1930년대 이래의 군사 관계 자료가 이관되어 1995년부터 열람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수틀랜드는 폐쇄되었다. 워싱턴의 본관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 자료가 보관되어 있으므로 한국 현대사 자료는 주로 칼리지 파크에 보관되어 있다.

문서의 수장 상태를 살펴보면, 각 문서에는 우선 문서군(Record Group: RG)의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1994년 현재 가장 나중에 번호를 부여받은 문서군은 번호 525의 ‘국립지형조사국 문서(Records of the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로서 장래에 받을 문서를 위하여 번호만 배당되었을 뿐이지 이와 관련된 문서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이유로 폐기된 문서군의 번호는 10년 이내에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문서군은 다시 문서명(File)으로 분류되며, 파일은 다시 상자(Box)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영구 보존 문서(archives)는 약 39×13×26cm의 작은 카본 박스에 담고, 기록(records)은 약 39×30×26cm 크기의 마분지 박스를 사용하고 있다. 한 개의 박스에 담긴 자료의 분량이 1입방 피트이기 때문에 NARA에 있는 약 100만 입방 피트의 문서가 소장되어 있다는 말은 박스의 숫자가 100만 개라는 뜻이다. 한 개의 박스에는 약 2천500매의 서류가 담겨 있지만 양면에 인쇄되어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1박스의 쪽수는 약 3천 페이지이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할 때 NARA에는 약 30억 쪽의 문서와 기타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각 박스에 담긴 문서는 다시 문서철(Folder)로 분류된다. 대체로 한 문서철은 단일 문건일 경우가 많다.

1987년 현재 NARA에는 약 100만 입방 피트의 기록 이외에 1,500만 장의 지도, 20만1천 릴(reel)의 마이크로필름, 4만 3천 릴의 영화 필름, 452만 3천장의 사진, 2천400만장의 공중 촬영 사진, 6만6천500장의 음반이 소장되었다. WNRC에는 1만여 개의 마분지 상자에 문서가 담겨 있다. NARA에는 석, 박사 출신의 전문 인력 1천2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미국의 자료는 비밀 해제 자료(declassified documents)와 미공개 자료(classified documents)로 나뉘어 있다. 미공개 자료는 다시 기밀문서(Confidential), 비밀문서(Secret), 극비문서(Top Secret)로 나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통상 사건이 발생한 지 25년 후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라는 것에는 다소간 조작이 들어간 것이 있고, 특수한 정치 목적에 부응하기 위하여 동시에 존재하던 상반된 의견 중의 하나를 의도적으로 공개하는 수가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한국전의 극비문서들, 이를테면 세균전(細菌戰) 등에 관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문서가 공개되었고, 중요도나 우선순위 또는 일손의 부족 등으로 공개되지 않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정보자유법(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 Public Law 89-487, 현재의 U.S. Code 552호)에 의해 학자들에게는 불편 없이 공개됨으로써 한국의 분단사 연구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정보자유법은 1966년에 제정되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정보 처리 관행을 뒤엎은 이정표적인 법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공표 당시에 많은 저항에 부딪혀 실효를 거둘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서 1972년에 하원의 행정부운영위원회(House, Government Operations Committee)는 ‘연방 관료 기구에 의한 5년 동안의 지연 때문에 정보자유법의 효율적인 운영이 방해받아 왔다.’고 결론짓고 「행정 명령 제11652호」(Executive Order No. 11652)를 발동하여 정보자유법의 충실한 실시를 행정부에 권고하는 한편, 포드(General Ford)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릅쓰고 1975년에 1966년의 법을 수정했다. 개정된 정보자유법에 의해서 일반 대중은 비밀이 해제된 문서 중에서 요청자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행정부 실무 부처의 현존하는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 법안은 정부가 열람자의 요청에 대하여 10일 안에 회신하도록 시간제한도 설정해놓았다.

정보자유법이 발효되었다고 해서 모든 자료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도 열람 제한 사항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사항이 이에 해당된다.

(1) 미국의 방위와 외교 정책을 보호하기 위해 행정 명령으로 특별히 금지된 사항
(2) 어느 기관의 인사 규정이나 관행에 관한 사항
(3) 법령으로 특별히 공개를 금지한 사항
(4) 특별한 권한이나 기밀취급자가 업무상 취득한 무역, 상업, 재정에 관한 정보
(5) 어느 정부 기관과의 소송 당사자가 아닌 자에 대한 그 부서의 비망록이나 서한 공개
(6) 개인의 사생활을 명백히 침해할 수 있는 인사 및 의료 기록
(7) 소송당사자가 아닌 자에 대한 법 집행의 수사 기록
(8) 재정 기관의 규제나 감독에 책임이 있는 기관이 사용하기 위해 작성된 고시(考試), 운영, 조건에 관한 정보
(9) 유정(油井)을 포함하여 지리 및 지구물리학에 관한 정보나 통계 자료

이상과 같은 조건 때문에 비밀 분류에서 해제될 수 없는 문서는 상자에서 빼내고 그 대신 ‘열람 불가 카드’를 넣어둔다.

NARA는 비밀 분류 해제에서 아무런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문서를 생산한 부서에서 비밀 해제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 분류 해제 요청은 문서 생산 부서에 제출해야 하며, 이것이 기각되었을 경우에는 그 부서의 심사위원회(Review Committee)에 재심을 요청할 수 있고, 재심에서도 거부되었을 경우에는 비밀 해제에 관한 부처간심사위원회(Inter-Agency Classification Review Committee)에 상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영주권을 보유한 미국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가진 연구자(Scholar and Professor)에게는 그가 대학이나 연구 단체에 소속(Affiliated) 되어 있다는 사실의 확인과 함께 열람증(Clearance)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그 연구자의 글이 미국의 국익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그 열람증이 회수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도 끝까지 공개되지 않은 문서는 전체의 5% 이하이다.

NARA의 자료를 열람하고자 하는 연구자는 우선 방문하기 전에 서면으로 요청함으로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열람자는 열람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는 신청 즉시 발급된다. 열람증의 시효는 3년이지만 연장될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단지 일손이 부족하여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를 열람하고자 할 경우에는 해당 데스크에 열람을 신청한다. 한국 현대사에 관해서는 Freedom of Information/Privacy Office, U.S. Army Intelligence and Security, Fort Meade, MD. 20755-5995의 주소로 직접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신청 방법은 성명, 출생 연월일, 사회보장번호를 기재해야 하며, 인적 문제가 아닌 사안에 대해서는 사안이 관련된 조직(기관), 사건, 활동, 일자, 문건번호 등을 기록해야 한다. 비밀이 해제된 문건의 경우에는 연구자의 청구에 따라 서고에서 도착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곳의 자료만으로 한국 현대사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중요한 것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A, Fort Meade, MD), 중앙정보국(CIA, McLean, VA), 국방성전사편찬실(Office of the Chief of Military History: OCMH, Department of Defense, Washington, D.C.), 국무성자료실(Library of the Department of State), 맥아더기념박물관(MacArthur Memorial Museum, Norfolk, VA), 트루먼기념도서관(Truman Memorial Library, Independence, MO), 국립문서보관소 캔자스시티분소(National Archives/Kansas City Branch, MO)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의 휴전에 관한 문서는 주로 미국육군군사연구소(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 Calisle Barracks, PA)에 소장되어 있다.

(신복룡, 한국분단사연구, p.36-41)
by sonnet | 2006/03/15 10:39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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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장갑냐옹이 at 2006/03/15 12:43
건전한 취미생활로 여가를 선용하고 계시군요. 게다가 잘 하면 공짜로 개조 수술(?)도 받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알 카에다 제 55여단 그런 게 있기는 정말 있습니까? EBS에서 웃기다 못해 눈물까지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6/03/15 13:59
장갑냐옹이/ 중동의 정치세력들은 산하에 영어로 여단이라고 번역되는 무장집단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 하마스(팔레스타인): 알 카삼 여단
* 파타운동(팔레스타인):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
*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이라크): 바드르 여단
등.
이들은 규모나 성격이 매우 다양한데, 저는 알 카이다 55여단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2001년의 미국-탈리반 전쟁 당시, 탈리반은 북부동맹을 서부전선(마자르 이 샤리프-탈로칸)과 남부전선(쇼말리 평원) 양면에서 압박하고 있었는데, 양쪽 전선 모두에 아랍자원병 부대들이 있었음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됩니다.
병력은 수천(약5천?)명 수준입니다.
이들 아랍 부대는 적이 아무리 강해도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기 때문에, 탈리반 부대들은 종종 야습으로 동료 아랍전사들을 학살하고 나서야 투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6/03/15 14:08
음 클라크 문서군요. 저거시 궁금헀던 것 중 하나가 클라크가 언급한 알 카에다 위협 지역 중 보스니아 코소보 같은 발칸 쪽의 이슬람 과격 세력들은 -아마 알 카에다와 연루 가능성이 있는- 언급이 별로 없어서 좀 의아하더군요. 사실탈레반이 아프간 장악 이전, 제 1차 아프간 전쟁 이후 무자헤딘들이 국제적으로 몰려들었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는 데...( 확실히 당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 방향과 생각하면 뭔가 잼있는 것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은..)
그나저나 개조수술이라뇨 (윽 그럼 입국을 위한 검역소라는 건 혹시 쇼카에의 입국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쇼카의 충실한 부하를 모병하기 위한 위장 모병소? 역시 이곳은 위험천만한 곳이었군요)
Commented by 카린트세이 at 2006/03/15 14:36
겔쇼카는 이미 30년 전에 멸망한줄 알았는데..... (...)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6/03/15 16:07
보스니아 코소보 전 당시 미국과 국제 이슬람 무자헤딘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http://www.senate.gov/~rpc/releases/1997/iran.htm

http://www.senate.gov/~rpc/releases/1999/fr033199.htm

여기를 참고하시길( 저 게 공화당 정책위원회 보고서라는 게 더 깹니다)
Commented by 쿨짹 at 2006/03/17 03:49
으하하하 너무 즐거워요. ㅋㅋㅋ 정말 읽기도 하시는군요. ㅎㅎ 전 저 마지막에 세줄만 나온 페이지가 맘에 드네요 ㅡㅡb
Commented by 쿨짹 at 2006/03/17 03:51
근데 정말 이런게 떠돌아다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ㅡㅡ;; 갑자기 무셔워졌음..
Commented by sonnet at 2006/03/17 19:56
腦香怪年/ 역시 그렇죠? 다른 문서들에도 코소보를 언급한 건 별로 못봤습니다.
하지만 동-서 유럽의 무슬림 사회들을 징검다리로 삼은 몇 차례의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전쟁주도세력 보다는 support cell base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카린트세이/ 재방이 있지 않삼!

쿨짹/ 마지막이 맘에 드시면 천축에 가서 손오공이 받았다는 글자 없는 불경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다니긴 엄청 돌아다닙니다. 일부는 소련처럼 적이 망하거나, 또 일부는 아직 공개하기 이르지만 워싱턴의 정쟁에 휘말리는 과정에서 공개되기도 하구요.
제일 웃겼던 건 작년에 미국이 기존에 공개했었던 문서를 비밀로 재지정했던 사건입니다. 국무부 공식자료집인 FRUS(Foreign Relations of U.S.)에 이미 실려서 전 세계가 다 본 50년전 문서를 비밀분류하면 어쩌잔 건지...
Commented by 장갑냐옹이 at 2006/03/22 20:09
그런 식으로 조직에 번호(단대호?)를 매기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시 투입된 부대에 관해서 그저 탈레반이니 아랍이니 이런 것만 알았지, 이런 식으로 단대호 혹은 부대 명칭을 매겨서 정규군 취급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민간 테러분자를 척살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봤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이쪽 분야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개념부터 부족한 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6/03/24 20:13
장갑냐옹이/ 55여단이 왜 55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 다른 단대호를 갖는 부대가 있는지도 들어본 바 없습니다.

2001년의 탈리반 전쟁을 다룬 몇몇 책들을 읽어본 느낌으로는 알 카이다 산하의 아랍인 부대들은 대략 중대급 단위로 탈리반군 곳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2001년 전쟁의 경우에는 아프가니스탄 전토의 지배권을 놓고 탈리반 대 북부동맹이 전선이 형성된 정규전을 벌이고 있던 중에, 갑자기 미국이 강력한 공군을 갖고 뛰어들어서 탈리반군 진지를 산산조각내고 북부동맹이 그 패잔병을 추격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게릴라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Commented by 장갑냐옹이 at 2006/03/25 13:48
역시 알아야 사는 거 같습니다. 저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네트님의 이야기에 상당 부분 놀랐습니다. 일부 언론 매체에서도 수박 겉핧기식으로 이야기 해주니 따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겠더군요.

근래 히스토리 채널에서 베트남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68년 북베트남의 구정 공세에서 미국이 패배한 줄 알았는데, 실질적으로 미국의 승리였더군요. 그 짧은 기간에 수만명의 북베트남 정규군이 전사했고 군사적으로 미국은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럭저럭 버티다 아크라이트 작전으로 대규모 전술폭격을 거듭(대규모라기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폭탄의 위력이-_-;;), 그걸 바탕으로 군사적 우위를 점했죠.

결국,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제대로 알고 싶으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소네트님의 이야기는 유익한 부분이 많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6/03/26 21:23
장갑냐옹이/ 말씀 감사합니다.
음.. 그건 전술적으로는 늘 이기는데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적을 패배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없었다라는 데 문제가 있는 거지요.

반대로 구정공세는 미군이 전술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심리전 측면에서는 미국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어 승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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