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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절거래는 도서유통을 구할 수 있는가?
루나벨양의 포스팅을 트랙백.

루나벨양에 따르면, 도서 유통의 위탁판매는 좋지 않다고 한다.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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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탁판매 위주의 유통체제에 의거한 폭리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체제에서는 좋은 책이 나오기 어려운게, 일단 출판사가 책을 직접판매하는 유통업체의 요구와 수익에 매우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만드는 책들도 지극히 시장성에 맞춘 책들이 됩니다. 게다가 더 곤란한건, 출판사들이 반품 부담비와 (사실 안 해도 되는)초과생산비와 유통업체가 맡긴 보증금에 대한 부담금을 몽땅 책 가격에 포함시킨다는 겁니다.
(중략)
유럽의 출판-유통시장은 위탁판매와 매절판매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매절판매라는건 유통업체측에서 출판사의 상품을 일정값을 치루고 '구입'하는 것이고, 남는 재고는 반품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 서점이 취하는 방식이죠. 당연히 가격은 더 쌉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의 부담은 훨씬 적어져서 이런저런 책을 부담없이 구입하기 쉬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측이 유통에 대해 지는 부담이 위탁판매체제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대중성이 좀 적더라도 다양하고 문화적으로 발전적인 책들을 출판하기 더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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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루나벨양에게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주장은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과 논리전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몇가지 수상쩍은 논리에 대해서 지적하기로 한다.


1. 위탁판매에서는 '출판사가 책을 직접판매하는 유통업체의 요구와 수익에 매우 의존'하게 된다?

수익 분배의 비율이 어떻던 간에 책의 제조와 판매에 따르는 수익은 출판사와 유통업체간에 배분된다. 즉 책이 더 많이 팔리게 되면 출판사와 유통업체는 모두 수익이 증가한다. 책이 더 팔려서 유통업체의 이익은 늘어나는데, 출판사의 이익은 한푼도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맞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판매의 방식이 위탁이건 매절이건 출판사의 수익증가는 유통업체의 수익증가와 정의 관계에 있으며 직접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위탁판매일 경우 출판사가 유통업체의 수익에 매우 의존한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형의 판매에서도 형성되는 당연한 관계이다.
(엄밀히 말하면 위탁 혹은 매절은 1권씩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큰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단위 이하의 판매변동은 거래주체인 출판사와 유통업체간에 배분되지 않을 수 있다.)


2. 위탁과 매절은 결국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가?

그 차이는 누가 사업상의 위험(Risk)를 지느냐의 문제이다.

매절해온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경우 유통업체는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반면 위탁거래였다면 이를 반품함으로서 유통업체가 입을 손실의 상당부분을 출판사로 전가할 수 있다.
(반품하더라도 유통업체에게는 재고유지 및 기회비용 등 각종 부차적인 손실은 남는다)

출판사의 입장은 반대이다.
매절거래를 하면, 위탁 시에 떠안아야 할 재고 손실의 위험(risk)을, 유통업체에게 떠넘길 수 있다.

즉, 책이 더 팔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출판사와 유통업체가 같이 이익을 볼 수 있는 Positive Sum 게임이었지만, 위탁이냐 매절이냐는 상대방이 손해를 봐야 내가 손해를 면할 수 있는 Zero Sum 게임이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다른 이유 없이 위탁을 매절로 변경하는 것은 '기대되는 수익도 없이 사서 손해를 볼 가능성을 높이는(불필요하게 Risk를 떠안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비합리적인, 머리에 총맞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유통업체는 매절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해를 능가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손해를 상쇄할만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매절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통업체가 risk를 질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봐서 다음 두가지 경우가 있다.
1) 유통업체가 판매에 대한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재고로 인한 손해를 억제할 수 있는 경우
(소매업체나 최종소비자로부터 선주문을 충분히 확보한 경우, 혹은 국정교과서처럼 몇 권쯤 팔릴 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경우, 유명작가 등이 썼기 때문에 최소한 이정도는 나갈거라고 확신하는 경우 등)
2) 매절에 따르는 Risk를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할인을 출판사로부터 받는 경우


3. 사업상 위험(risk)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현실세계의 사업상 거래에 있어서 risk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당사자인 출판사와 유통업체가 모두 절대 자신은 risk를 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거래는 결렬될 수 밖에 없다.
즉 거래가 성립하려면 누군가 한쪽이, 혹은 양쪽이 임의의 비율로 이 risk를 나눠서 질 필요가 있다.

실제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risk를 지게 되는가라는 문제는 case by case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경제학에서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이미 오랫동안 다뤄오고 있다. 그 문제는 '조세 귀착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에 세금을 추가로 물렸을 때, 이 세금은 실제로 누가 내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담배값은 그대로 둔 채 담배제조사가 스스로의 이익을 희생해서 낼 수도 있고, 담배값을 올려서 소비자가 내게 만들수도 있고(前轉), 담배잎 수매가를 후려쳐서 재배농민에게 뒤집어씌울 수도(後轉)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상품의 수요-공급 탄력성, 상품생산의 독점도, 생산비의 체증 또는 체감여부, 세율 등에 따라 달라진다.

조세귀착문제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조건들은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는 risk 귀착의 문제에도 대개 비슷하게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4. 그래서 문제는 뭔가?
루나벨양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위탁을 매절거래로 변경함으로서
1) 출판사들이 반품 부담을 안지 않게 되고
2) 따라서 가격은 싸지며
3) 결과적으로 독자의 부담이 훨씬 적어진다.

이것은 앞서 말한 담배에 세금을 물렸을 때, 담배회사가 자기 이익을 희생해 세금을 낸다 라는 경우와 같다. 즉 유통업체가 출판사나 독자를 건드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가장 그럴성 싶지 않은 행동인 것이다.

유통업체는 매절을 요구하는 출판사의 책을 아예 받지 않거나, 출판사에게 높은 할인을 요구하거나, 책값을 올려서 이 위험을 독자에게 전가하려고 할 것이며,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단호하게 싸울 것이다.
이어서 출판사도 이러한 압력을 다시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 위해 저자의 인세를 깎거나 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5. 정책의 차원에서

한편, 현재 잘 돌아가고 있는 유통구조가 바뀐다는 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출판사들이나 유통업체가 집단행동으로 압력을 넣거나, 정부가 도서정가제처럼 법으로 거래과정의 어떤 부분을 규제하거나 하는 강제력의 적용없이는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어떤 법을 만들어 "위탁을 매절로 전환한다는 루나벨양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였을 때, 과연 의도하던대로 저렴한 책값에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까?

...
그건 아니라고 본다. ([보론] 참조)


6. 끝으로
사실 출판사/유통업체간 관계에서 유통업체가 매절거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바람직할 수 있다면 저자/출판사간 관계에서 출판사는 인세거래를 줄이고 매절거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똑같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출판사와 출판사/유통업체 관계는 모두 하나의 먹이사슬 위에 존재하는 유사한 관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보론]출판사가 위탁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

사업상 위험을 질 수 있는 능력은 거래 주체마다 다르다.
규모가 크고 자금력이 풍부하다면, 경기순환이나 유행에 따르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나을 것이고, 많은 종류의 책을 다룬다면 개개의 책이 갖는 위험의 편차를 합쳐서 평균으로 수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보기에 출판사가 유통업체(도매상)에 비해 매절에 따르는 위험을 더 잘 질 수 있는 이유를 한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앞에서 나는 "판매에 대한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유통업체도 매절에 따르는 위험를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은 결국 마케팅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책의 내용"이 판매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저울로 달아보고 책값 대비 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책을 고르는 독자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책의 출판사와 그 책을 취급하는 도매상 중 어느 쪽이 보다 해당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정확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답은 자명하다. 그것은 그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편집하여 만들어낸 출판사이다.

원유나 철강, 시멘트 같은 대량으로 거래되는 매우 동질적인 상품이라면 유통업체들도 해당 상품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책처럼 종류는 엄청나게 많고 내용은 모두 다른 상품을 다룰 경우 (최종 판매자도 아닌) 유통업체가 개개의 상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란 매우 힘들다. 도저히 출판사와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다.

앞에서 출판사와 유통업체 사이에 재고 위험을 누가 지는가 하는 문제는 zero-sum 게임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둘 중 상대적으로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가 위험을 맡을 때 전체적인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으며 장기적인 양자의 거래관계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편 루나벨양은 매절거래로의 전환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책이 거래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 반대이다. 지금 설명한 것처럼 유통업체가 매절을 통해 위험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유통업체는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잘 모르는 마이너한 상품"의 거래를 줄이고, "어느 정도 나갈지 자신도 예측가능한 메이저한 상품"의 거래에 집중할 것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책의 매절거래가 메이저한 책을 위주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마이너한 책을 위주로 이루어지는지를 조사해보면 답은 명확하리라고 생각한다.
by sonnet | 2005/05/29 20:13 | flame!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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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루나벨의 조용한 빙해 at 2005/05/31 03:15

제목 : 구할 수 있습니다.
매절거래는 도서유통을 구할 수 있는가? *논의가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 이 논의는 <즐스런 마법사>에 대한 Jeraid님의 고견과 저에 대한 꾸짖음에 대해서 감읍하며 한말씀 올려보죠.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빈칸님의도서정가제 반대포스팅을 참고로 했습니다. 1. 제가 위탁판매체제 하에서의 유통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면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막는 독점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서적의 내용, 거래수단, 거래유형 등은 충분히 여러가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 장르나 분류......more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5/05/29 21:56
문화컨텐츠업의 아픔이죠.--;
뭐랄까, 차라리 출판사의 리스크를 덜어주거나 하려면 역시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게 낫지 않을까 싶더군요. 일단, 인기지향성이라는 면에서 조금 더 완만한 속성(그러니까, 잘 팔리는 걸 살 유인이 없지는 않지만 좀 적은)도 있고, 그렇다고 아예 안쓸걸 사지는 않게 되니 어떤 본전보전을 보조하는 장치로 쓴달까요.
문제는 그런 돈이 어디서 나오냐지마는 말이죠.(먼산) 규제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뭐 어떻게 될지는.
출판업은 도서정가제로 돈을 버는건 꽤 메이저한 쪽과 유통라인들 같고, 출판사 스스로에게 투하되는 돈은 생각보단 적은듯 싶더군요. 규제의 뒷끝은 대개 이렇달까요.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5/05/29 22:29
도서관 예산 늘리는 쪽에 저도 한표입니다.
Commented by 미카 at 2005/05/29 23:45
다른건 모르겠지만 매절거래로 전환되면 동네서점들은 몽땅 다 망할거 같은데...개인적으로 동네 서점 주인 할아버지와 20년지기(?)기 때문에 좀 비싸게 사더라도 동네서점을 이용하고 있는 바 매절거래 반대!! ^^
Commented by sonnet at 2005/05/31 12:02
안모군/ 역시 만철 출판부가 힘을 써야!
안모군, 功名誰復論/ 도서관 예산 좀 늘려줬다고 체감할 수 있는 차이가 날지 회의적입니다. 지자제 도서관이란 것들이 워낙 어이없는 수준이 되어놔서요. 그래도 천리길도 한걸음부터겠죠.
미카/ 하하.. 난 이미 그런 서점은 다 없어졌다는... 서점 자리에 건강식품 팔더라구요.
Commented by DarkMaster at 2005/05/31 20:34
저도 도서관 예산 늘리자에 한표.. 데굴데굴..
(시험공부하러 잠수!!-ㅅ-/)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5/06/07 01:36
출판사-유통업자의 관계를 영화 배급업체-극장 관계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 합니다.

경제가 논리적으로만 돌아간다면야 세상이 이리 빌어먹도록 복잡할 리가 없겠죠.;; (보론에 대해 개인적으론 출판사보다 유통업자가--대형일수록 더욱더--합리적인 수요 예측을 더 잘 할 능력이 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5/06/07 04:32
하얀까마귀/ 1.영화배급-극장은 본문에서 다루는 재고관리 위주의 wholesale체제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군요.

2. 경제가 논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세상이 이정도로 단순할 리 없을 겁니다.
1) perfect rational
2) quasi rational
3) quasi irrational
4) perfect irrational
이중 이번 글을 쓴 저의 입장은 2)에 해당합니다.
같은 조건이 있을 때 대개 이론을 공격하는 일반론은 1)을 표적으로 삼습니다만, 3/4)를 갖고 현실을 설명해보면 도저히 말이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3. 저는 유통업체가 얼마나 크든지 관계없이 보론에서 언급한 출판사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유통업체란 도매상(wholesaler)인데 도매상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데 대해서도 회의적이거니와 그럴 동기를 발견하기도 힘듭니다. (반대로 도매상이 그런 위험을 회피해야 할 이유는 아주 많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수요를 예측하거나 통제해서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도매상들은 특정 섹터(원유, 철강, 양모, 커피 같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주장을 잘 뒷받침해 줍니다.
Commented at 2009/08/20 03: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1/08/29 16:36
"판매에 대한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유통업체도 매절에 따르는 위험를 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말씀대로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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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출판업계 죽인다?
대형서점·인터넷서점서 공급 단가 낮추기 논란…유통질서 혼란 최종 피해자는 독자
주간동아 | 송홍근 기자 | 입력 2011.08.29 15:28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03&newsid=20110829152847155&p=

...
인터넷서점 알라딘 관계자는 "동네서점의 위탁 방식과 달리, 선금을 주고 대량 구입하는 매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절 방식을 채택하면 공급 단가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재고회전율을 감안해 특정 기간 내 많이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만이 매절 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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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크고 자금력이 풍부하다면, 경기순환이나 유행에 따르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나을 것이고, 많은 종류의 책을 다룬다면 개개의 책이 갖는 위험의 편차를 합쳐서 평균으로 수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몇몇 대형 서점이나 출판사들 정도가 이런 조건에 맞을 겁니다.
비록 출판사가 책에 대해 더 잘 알아도, 얼마나 팔릴지 예상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또한 책에 대해 잘 아는 쪽이 위험을 지는 것이 맞다면, 책 저자가 부담을 져야한다는 쪽이 됩니다. (실제로 몇몇 작가/음악가/영화감독이 이렇게 해서 떼부자가 되었습니다만.) 큰 출판사는 몰라도 덕후 책 찍는 작은 출판사는 위험을 지기에는 너무 취약합니다.
팔릴 양이 뻔해도, 작은 출판사는 자금 회수에 걸리는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학술 서적 가운데 아주 전문적인 (대학원생 이상이나 보는) 책들 가운데 이런 식의 판매 패턴이 꽤 있습니다. 처음 책이 나오면 일단 도서관들이 사들입니다. 그래서 주문이 왕창. (그래봐야 수십~수백부) 다음에는 개인이나 처음에 주문 안 한 도서관들이 사들입니다. 주문이 찔끔 찔끔. 시간이 지나면 판매가 점점 줄어서 없어집니다. 이렇게 몇 해에 걸쳐 조금씩 팔리는 책을 작은 출판사가 찍어서 끼고 있기엔 재고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인지 이 쪽은 재고 부담이 없는 전자책이 꽤 많습니다.
따라서 작은 출판사에서 덕후/학술 책이 나오기에는 대형 유통사가 부담을 지는 쪽이 낫다고 봅니다. 벤처 기업에 비교하면, 사업 주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창업자이지만 실제 위험은 투자자가 상당 부분 가져갑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13/06/21 11:58
대형 유통사가 부담을 지는 게 낫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 편한 대로의 주장입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매절 거래에 뛰어드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망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결국 출판사로부터 대폭 할인을 받아서 책이 많이 팔려도 이익은 대부분 유통업체에만 돌아갈 정도가 되거나, 극소수만 사서 대충 살 만한 사람들이 사고 나면 품절되는 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게 확실하다면, 매절 거래가 아니더라도 유통사들이 재고를 가지고 있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매절 거래인가 아닌가와 유통사에서 단기간에 판매할 분량만을 찔끔찔끔 사갈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며, 유통사가 그런 식으로 확실하게 팔릴 분량만을 조금씩 사갈 이유가 더 많은 쪽이 어느 쪽인가를 생각하면 그것은 오히려 매절 거래 쪽입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3/06/25 10:50
보험사와 가입자 가운데 어느 쪽이 가입자의 위험에 대해 잘 아나요? 하지만 위험 부담은 보험사가 집니다. 보험사는 수많은 가입자의 위험을 평균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보험사는 가입자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위험을 평가합니다.
대형 출판사라면, 수많은 책으로 위험을 평균화할 수 있습니다. 덩치가 커서 책 하나 둘 망해도 별 문제 없습니다.
문제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책 하나 망하면 휘청하는 회사들은, 위험 부담을 안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교통사고 등에 대한 위험 부담을 개인이 아니고 보험사가 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제가 예를 든 학술서적에서 문제는, 책을 찍고나서 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겁니다. 작은 회사들은 이런 주기를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실패나 긴 자금 회수 주기를 버틸 수 있는 대형 유통사가 부담하는 쪽이 낫습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13/06/25 14:45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의 위험도를 조사하는 방법은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평균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책이 얼마나 판매될지를 판단하려면, 본문에 언급된 바와 같이 책의 내용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책의 내용에 대한 판단을 평균화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평균화가 가능하려면 내용 이외의 정보가 판매량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거나 등등. 하지만 이는 현재도 매절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섭동님이 언급한 부분과는 별 관계가 없으니 생략합니다. 문제는 학술 서적과 덕후 책인데, 양쪽 모두 매절거래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유통사 입장에서 내용을 기준으로 책의 가치를 판단하기에 가장 어려운 종류의 서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술 서적은 내용을 이해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덕후 책의 경우에도 덕후들 사이의 특별한 취향과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런 책을 무슨 수로 '평균화'한단 말입니까? 본문에서 예로 든 것처럼 무게를 달아서요? 아니면 학술 서적이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사들여서 그 중 몇 권이 팔리기를 기대하는 방식으로요? 이는 저질 학술서적이 범람하고, 대부분은 팔리지 않아서 유통사가 손해를 보며, 평균적으로 저질인 만큼 모든 학술서적의 가격을 출판사에서 후려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는 갈 수도 없고 가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이런 서적의 매절 거래는 판매량이 보장된 분량에 준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여러 대학에서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다거나, 덕후 단체에서 서명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유통사 입장에서는 교과서의 경우에도 매절 거래라면 여전히 해마다 교재를 찔끔찔끔 구매하는 방식이 유리합니다. 당장 내년에 교과서가 바뀔지 안 바뀔지 누가 압니까? 그렇다고 대학에서 유통사 사정을 봐서 부적합한 교재를 계속 사용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남는 건 덕후들이 서명운동을 하면 그 숫자를 기준으로 매절 거래를 하는 식입니다. 서명한 사람 중에서 실제로 몇 %가 구매하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라면 '평균화'는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방식이 일반적인 책의 거래 형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출판사가 재고 부담을 견디기 힘들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런 영세한 출판사들이 가격을 후려치는 것은 견딜 수 있습니까?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용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즉 매절거래를 하는 경우에는 위험을 부담하는 유통사가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출판사로부터 일정 수준 할인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기사를 인용해서 언급하시지 않았습니까? 베스트셀러만이 매절 거래의 대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 단가를 할인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입니다. 학술 서적이나 덕후 대상 서적의 경우 위험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가격을 그만큼 많이 후려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소규모 출판사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담해야 하는 위험에 해당되는 가격이 현재는 '서적 내용을 잘 아는 자신들이 져야 하는 위험'이지만, 매절 거래가 되면 '서적 내용을 잘 모르는 유통업체가 져야 하는 위험에 해당되는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본문에서 이미 언급된 바입니다. 아니면 섭동님은 유통사가 위험만 그대로 부담하고 가격은 그대로 유지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 역시 본문에서 지적된 바입니다. 만약 정말 유통업체가 그런 식으로 장사한다면 아무리 규모가 커도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13/06/26 08:06
문제를 확대하지 않고 매절 거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다보니 오히려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섭동님이 말씀하신 위험 흡수와 평균화라는 것은 다름아닌 보험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 역시 유통업체에게 매절거래를 강요하는 것보다 출판사가 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강조된 바와 같이, 유통사가 개별적인 책 하나하나를 판단해서 어느 정도의 위험이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유통사에게 판단을 맡긴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출판사를 보고 어느 정도로 신뢰해도 될 것인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회사를 평가하는 문제는 유통업체보다 보험업체 쪽이 더 많은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익인데, 상대방이 위험을 평가하기 어려울수록 보험료에 해당되는 비용(유통업체라면 가격 후려치기)가 더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출판사를 믿고 특정 서적을을 매절 거래로 구입했다가 손해를 봤다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출판사와 손을 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험악한 방식의 보복이 되기 쉽습니다. 보험이라면 보험료가 오르는 방식으로 손해가 돌아오겠지만 그 부분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합니다.

더구나 이런 보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한 사회적 변화나 법에 의한 강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설령 보험사들이 이런 상품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종류의 보험을 만들도록 법으로 강요한다고 해도 매절 거래를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저항이 적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험 흡수가 목적이면 그 위험을 직접적으로 흡수하는 보험에 의지하면 될 일이지, 매절 거래를 강요함으로써 위험을 흡수하는 '부작용'을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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