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거구: 다음 일곱 장을 잘 보고 한 명 고르시오
2005년 아프간 총선 투표용지(카불 주): 문맹율이 높은 관계로 투표용지에는 이름 외에도 사진과 아이콘이 병기되어 있다. 꽃, 회중전등, 삽, 포크레인, 침대, 백열등, 나뭇잎, 맹꽁이 자물통, 송전탑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백출했으며, 후보들은 서로 기억하기 쉬운 아이콘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해설

아프간 의회 선거는 각 주가 하나의 선거구가 되고, 각 선거구에는 유권자 수에 따라 복수의 의석이 할당되는 대선거구제이며, 유권자는 후보 중 한 사람을 찍고 다수득표 순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단기비이양투표(single non-transferable vote; SNTV)를 채택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껏 본 중에서 가장 나쁜 선거제도 중 하나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저 투표용지는 첫 장일 뿐이란 것이다. 수도 카불의 유권자들은 390명의 후보 중 한 명을 골라 투표하고, 득표순으로 33명을 선출하였다. 이러다보니 유권자들은 누가 누군지 제대로 알기도 힘들었으며, 유효표 0.6%를 받고도 당선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탈리반 정권을 몰아낸 연합군이 아프간 총선에 여성할당제(25%)를 끼워넣은 것이다. 예를 든 카불 주에서는 여성후보 중 상위득표 9명을 우선 당선시킨 후 남은 24석이 남성에게 돌아가게 함에 따라 0.6%를 받은 후보가 낙선하는데 0.4%(1,547표)를 받고 당선되기도 하는 등 득표순으로는 당선권이면서도 낙선하게 되는 후보가 속출하게 되었다.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記一.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는 분께서는 이 글 밑에 공개(혹은 비공개) 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옛 방명록은 [1] [2] [3] [4] [5] [6] [7] [8] [9] [10] [11] 참조.
記二. 링크는 자유롭게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강제할 수 없는 규칙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記三. 답글은 가능한 다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계속 밀리다보면 놓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by sonnet | 2010/11/12 08:36 | 블로그/일상 | 트랙백(2) | 덧글(92)
글목록(2008/07~)
마오쩌둥의 문화정책과 그 이후
  1. 『무훈전』 비판(1951년) / 『홍루몽연구』 사건(1954년)
  2. 숙반운동과 후펑 비판(1955~56년)
  3. 비판받은 작품들
  4. 백가쟁명 백화제방 운동(1956~1957년)
  5. 참고문헌목록(미완성)


돼지독감 예방접종 파동(1976년)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3. 장관의 반응
  4. 쿠퍼의 지지
  5. 포드의 발표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2008~) 관련 글 모음


이하는 7월 하순부터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토론 쓰레드를 정리한 것입니다.
갯수가 상당히 많아서 트랙백 중에서 직접 토론과 관계가 적어 보이는 것은 일부 생략했습니다. 누락된 것이나 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으면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 foog, Crete 두 분께서 제가 사실관계 확인의 중요성(foog)이란 포스팅에서 지적한 점 하나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지적 자체가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만, 그 점도 포함해 "포스팅 예정 B"에서 이에 대한 답을 하겠습니다.

by sonnet | 2010/10/01 15:08 | flame!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8)
권력과 물리적 거리

이런 이야기는 사실 아주 흔한데, 출처를 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만 예로 들기로 하자.

다음은 5공 초의 청와대 이야기다. 출처는 박철언 회고록.

김경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부드러운 성품의 전형적인 학자로 민감한 문제에는 조금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는 했다. 실제로 대통령 비서실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허화평 보좌관이었다.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비서실장실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실상은 허화평 보좌관이 대통령 집무실 가장 가까이 위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에게 가는 모든 보고와 정보는 허화평 보좌관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허화평을 축으로 하는 군 출신 핵심 참모들에게 힘이 쏠렸다. (pp.40-41)

그러나 이런 현상은 결국 다음 변화와 함께 쇠퇴하게 되었다.

전 대통령은 … 허화평 보좌관을 정무1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허 수석이 비서실 보좌관으로 대통령 집무실 가까이에 방을 두고 사실상 모든 분야에 관여해 온 관례를 중단시켰다. 또 그때까지 청와대 본관에 위치했던 비서실장실도 별관으로 옮기도록 했다. … 이렇게 함으로써 실세 수석들을 자연스럽게 견제하면서 친정 체제를 한결 강화해 나갔다.(p.71)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승진시키는 듯 하면서 뒤로는 물먹이는 수법을 중국에선 명승암강(明昇暗降)이라고 한다. 바로 저런 거리 면에서의 결정적인 강점이 중국 역사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던 환관 세도가들의 최대 자산이었다.

이건 민주정 하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국무장관을 쫓아내고 국무장관 겸 백악관 보좌관이라는 희대의 겸직을 한 사태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키신저는 대외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소위 '핼로윈 대학살'로 불리는 대규모 개각 과정에서 키신저가 백악관 보좌관 자리를 잃고 국무장관만 맡게 되자, 미국 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휘두른 국무장관의 권세도 빠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꼭 공직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한 부서가 건물의 두 층을 쓸 경우, 각 층 사이에 미묘하게 서로 다른 기류가 생겨나곤 한다. "11층 사람들은 말이야" 라든지, "별관 사람들은…" 같은 표현이 자연히 떠오르는 것을 들어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부서가 같아도 그정도이니 원래 갈등의 요소가 있을 경우에는 문제가 훨씬 심해진다.

소위 세종시 '원안'을 보면서 내가 제일 큰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 점이다.(참고로 나는 이 안을 지지한다. 사안의 굴곡진 역사와, 서울과 지방의 갈등, 정치인의 이해관계 등을 생각해 볼 때, 새로운 정치적 합의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부 부처는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 남고, 일부만 내려간다면, 남은 부처와 내려간 부처 장관의 권력엔 어떤 차이가 생길까? 한편으로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뻔질나게 들여다 보면서(우리나라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을 보면 그 기간 내에 조직을 장악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과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멀리 떨어진 대통령과의 끈끈한 교감을 유지해 승냥이같은 다른 조직들과의 투쟁에서 우리 조직의 정당한 이해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정보기술은 다소 문제를 완화해 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선 일상화되었듯이 국무회의 때 보안회선으로 비디오 컨퍼런스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술적 해결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마 MSN메신저나 Skype인터넷 폰이 장거리연애를 지켜줄 수 있는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두 보스가 만나서 차를 마셨다는 이야긴 정보도 뭣도 아니다. 둘이 만나서
차를 마셨다면, 당신도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했어야 마땅하다.
by sonnet | 2010/02/10 21:08 | 정치 | 트랙백 | 덧글(32)
1포트/2포트 논쟁
지역을 다소 단순하게 의인화한 감이 있는데 그 점은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90년대 지방균형발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1포트/2포트 논쟁이었다. 현재(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 안에서도) 한국 제1의 항구는 단연 부산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부산 하나가 아니라 부산과 광양의 2대 항구를 중심으로 발전시키면 지역균형발전 면에서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광양이 순수하게 자기 힘만 갖고 크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책적인 배려를 통해 부산의 발전을 제한하면서 거기서 돌린 물량을 갖고 광양을 발전시켜 두 개의 축으로 정립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다. 반면 부산은 중국의 상하이나 일본의 고베 등 외국 항구와 계속 경쟁하는 입장이다보니 그런 제한은 곤란하다고 여겼고, 우선 상하이 고베에 밀리지 않게 부산에 최대한 투자를 하고, 그러고 남는 여력이 있으면 광양에 돌리는게 순리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물론 서울은 항구도시가 아니니까 여기서 논외였고, 그래서 이 문제는 주로 지방 간의 힘겨루기 같은 양상을 띄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나서 보면 정책적 배려로 광양을 양강 체제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처음 계획은 다소 순진했던 것 같다. 우리의 정책적 배려로 어쩔 수 없는 상하이의 발전이 워낙 눈부셔서, 광양에게 물량을 밀어주기 위해 부산 신항 개발을 강하게 억눌렀으면, 부산은 상하이와의 경쟁에서 완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포트 정책이 한동안 실시되었기 때문에, 광양이 전혀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인천처럼 이 구도에 끼지 못한 지역은 또 그 나름대로 그런 결정에 꾸준히 불만을 표명하면서 자기지역 투자를 역설한다. 그리고 광양의 불만을 읽어보면, 광양이 충분히 강력하게 크지 못한 상태에서 인천이나 평택 등이 경쟁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것이 광양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돌려서 말하지만 2포트의 기본개념에 충실하게 분산시키지 말고 2개로 몰아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인 셈이다.

부산이 선물거래소(KRX)를 서울에서 받아간 것 같은 논리(*)라면, 광양도 부산의 물량을 떼어달라고 말할만 하다. 반대로 광양이 한편으로는 부산의 물량을 나눠받길 원하면서 2포트로 몰아달라는 논리는 부산이나 인천에게는 설득력이 없게 들릴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산이 KRX를 가져야 하는 동시에 1포트를 고수해야 한다는 희망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하려는지에 흥미를 갖고 있다. 경제성 논리면 KRX를 내놓고 1포트를 지켜야 할 것이고, 지역균형 논리라면 KRX를 받고 2포트에도 양해를 표시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부산이 서울에게 작은 것를 받고, 부산은 광양에게 다시 약간만 양보한 식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약간만'이다. 서울은 금융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을 만큼 양보를 한 적이 없고, 부산 또한 세계적 대항구로서의 지위를 잃을 만큼 큰 양보를 한 적이 없다.)


(*) 금융밀집지역으로서의 입지를 놓고 객관적으로 다투면 부산이 서울을 꺾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실 KRX는 지금도 서울로 갔으면 하는 눈치다. 선물거래소가 부산으로 간 이유는 당시에도 정치적 결정이었고, 그게 거기 남아있을만한 이유도 여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부산은 우리도 이런 거래소 하나 쯤 가지고 있어야된다는 여론이 강한 반면, KRX같은 것 하나 더 먹자고 서울은 부산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by sonnet | 2010/02/08 11:52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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