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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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卿博士
記一.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는 분께서는 이 글 밑에 공개(혹은 비공개) 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옛 방명록은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記二. 링크는 자유롭게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강제할 수 없는 규칙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記三. 글을 안 쓰니까 아예 들어오게 되질 않아서 습관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별것 아닌 거라도 좀 쓰면서 들여다보는 습관을 다시 붙이는 쪽으로. (2013년 1월 21일 추가)

떠든 사람: 이재율
by sonnet | 2018/11/05 13:32 | 블로그/일상 | 트랙백 | 덧글(53)
중년의 혼밥
Sharp의 6대 사장, 미스터 대표이사 "부장" 奥田隆司 이야기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난 중년의 혼밥 하면 역시 직장을 끼고 어떻게든 모든 끼니를 해결한다는 발상이 우선.

2013년 봄, 오쿠다는 사장의 자리를 다카하시에게 양보했다. 거듭되는 경영 악화 때문에 2년 후인 15년 봄에는 회장직에서도 물러나 비상근 고문이 되었다. 현재는 샤프 본사에 있는 사원 식당에서 혼자서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사원이 말했다.

“다들 사원식당에서 ‘아, 오쿠다 씨다’하고 생각합니다.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만 역시 아무도 말을 걸 수 없습니다. 보통 경영 악화로 퇴임한 전직 사장은 일반 사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드나들 만큼 신경이 질기지 못하죠. 하지만 회사에 왔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고프면 사원 식당에 간다. 그렇게 일반 사원과 발상이 똑 같은 것이 좋든 나쁘든 오쿠다 씨다워요.” 가타야마와 다카하시에게 끌려 내려온 비극의 6대 사장 오쿠다, 대기업의 정점에 올라갔던 왕년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일본경제신문사 편, 서은정 역, 『샤프 붕괴』, 서울:AK커뮤니케이션즈, 2016, p.104
by sonnet | 2018/09/10 11:56 | 블로그/일상 | 트랙백 | 덧글(3)
신도시 근린생활시설(유흥가)
경기도 특)모든 신도시번화가가 이런디자인임

사실 부동산은 잘 모르는 분야인데, 위 사진을 보니 이에 대한 구조적 설명을 봤던 기억이 나서 소개

상가하면 가장 흔한 것이 근린생활시설(근린상가)입니다. 근린생활시설이란 용어는 건축법 시행령에 의한 법적 용어로 도보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보통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입니다. 주민생활에 필수적인 시설인 ‘1종 근린생활시설’과 1종보다 크거나 취미 및 편의생활과 관련된 시설인 ‘2종 근린생활시설’로 구분됩니다. 백화점··마트·쇼핑몰·구좌형 상가는 건축법상 판매시설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는 근린생활시설이 매우 많습니다. 대부분 소규모 임차인으로 구성되는 거리 상가를 굳이 판매시설로 인허가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판매시설은 매장면적이 3000㎡가 넘을 경우,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하여 ‘대규모점포’로 분류되어 여러 가지 규제를 받습니다. 근린생활시설로 인허가 받는 것이 유리합니다.

우리나라는 유흥문화가 발달하였고 ‘방’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늦게까지 놀기 좋아하고 도심의 제반 환경이 갖추어진 ‘방’에 모여서 공통의 여가를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래방·PC방·DVD방·게임방·만화방·실내골프연습장·당구장이 많고, 술집·룸살롱·단란주점·안마시술소가 많습니다. 판매시설은 보통 유통기업이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상품의 판매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업종은 입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근린생활시설은 대부분 호마다 구분소유권으로 따로 개인투자자가 소유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임차인을 관리하지 않아서, 유흥시설과 각종 ‘방’이 입점하기 쉽습니다. 공간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필요가 근린생활시설이라는 공간에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근린생활시설은 법적으로는 주거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와 ‘유흥’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만들어진 신도시입니다. 신도시는 대부분 기존 도시의 외곽에 짓습니다. 거의 모든 신도시가 도시계획 단계에서는 주거와 일자리가 공존하는 자족도시를 표방합니다. 그래서 신도시 중심에 대규모 상업용지를 계획합니다. 오피스와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설이 생기면 그 도시는 자족성을 확보한 것과 같기 떄문입니다.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하면 임대주택용지·60㎡ 이하 주택용지·공립학교용지는 조성원가 이하, 사립학교 용지·협의양도인택지·공공용지는 조성원가에, 주택용지는 감정평가액에 공급해야 합니다. 오직 상업용지만 가격경쟁입찰에 의한 낙찰가격으로 공급합니다. 아무리 공영개발이지만 손실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높은 낙찰가율에 팔리는 상업용지를 필요 이상으로 공급하게 됩니다.

상업용지는 보통 용적률이 600% 이상이기 때문에 고밀도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신도시 상업지역에 들어올 수 있는 시설이 많지 않습니다. 백화점은 큰 도시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상업적으로 오피스 개발이 타당한 월 임대료 마지노선인 평당 3.5만원은 서울과 분당·판교의 주요 업무지구에서만 가능합니다.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는 임대운영상품이기 때문에 감정평가액을 훌쩍 넘기는 낙찰가액이 요구하는 수익률을 맞추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고밀도로 근린생활시설을 개발하여 개인 투자자에게 선분양하는 것이 높은 낙찰가액에 맞는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전국 신도시의 중심에는 대규모 근린생활시설이 위치하게 됩니다. 그 중 상당부분은 유흥가이고, 현란한 간판과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붙습니다.

수도권에서 분당 신도시의 서현역·수내역·야탑역·정자역·미금역 상권, 평촌 신도시의 평촌역·범계역 상권, 중동·상동 신도시의 송내역·상동역 상권, 일산 신도시의 정발산역 상권, 안산시의 고잔역·중앙역 상권, 수원시의 영통·인계동 상권. 모두 많은 간판이 달린 고밀도 근린생활시설 상권입니다. 자족도시가 되기 위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상업용지에, 표면상 주거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근린생활시설이 지어지지만, 그 속은 어른들을 위한 고밀도 테마파크로 작동하는 모습은 우리 도시가 가진 여러 가지 부조화 중의 하나입니다. 신도시의 대규모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을 싸고 빠르게 많이 공급하기 위한 정책의 기묘한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박성식, 『공간의 가치』, 유룩출판, 개정판, 2016년, pp.163-166, 볼드체는 저자의 강조


이 책, 부동산의 여러 측면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면서 쉬운 편이라서 부동산에 큰 관심 없는 분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by sonnet | 2018/08/27 00:21 | 경제 | 트랙백 | 덧글(4)
동아시아의 전통 붕당관
원래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붕당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서 언급했듯, 하나는 옹정제가 쓴 「어제붕당론」이 대표하는 것으로, 모든 붕당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모든 신민은 군주에게 직접적으로, 일원적으로 충성을 바쳐야지, 그 사이에 붕당이 끼어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때 붕당은 권력 정통성의 유일한 담지자인 군주에 대한 충성을 방해하는 존재로 가차 없이 규탄된다.

또 하나는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붕당론」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을 준별하여, 전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양수의 붕당론 역시 군자당만을 인정하고 상대 당을 소인당으로 매도하여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수 정당의 공존을 인정하는 근대적인 정당관과는 다르다. 구양수는 군자당만을 유일당으로 인정하고 이 유일당이 군주 권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옹정제의 군주독재 체제를 옹호하고 보완하는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근대 이후 중국의 국민당이나 공산당의 일당 통치와 당국 체제(黨國體制)의 옹호, 군국주의 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 등은 바로 이런 붕당관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17세기에 복수 붕당의 공존 가능성이 잠시 보였으나 결국 격렬한 당쟁의 반복, 그리고 이를 억누르려는 왕권 측의 반격(탕평책)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19세기 들어 처음으로 활발한 당파 정치와 당쟁을 경험한 일본에서 역시 당파 정치와 붕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경우에도 자신의 당은 정의당이고 상대 당은 속론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예는 거의 없었다. 구양수 「붕당론」의 재판인 것이다. 당파 정치의 장점을 인정하고 복수 정당 공존을 긍정하는 이론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메이지 초기 정당론도 정당 무용론과 ‘올바른 유일 정당론’[公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자들은 정당이 공익과는 관계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결국 공적 이익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 간의 투쟁은 사회적 낭비이며, 나아가 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 요소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이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당들은 100여 년 동안 이런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불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군(君)과 민(民) 사이에 정당이 끼어들지 않는 일군만민(一君萬民)적인 정치체제를 지향하든가, 정당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유일정당만이 군(君)과 민(民)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메이지 시기 정당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대체로 이런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의 정당인 애국공당(愛國公黨)은 자신들이 사당(私黨)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당명에 ‘공당(公黨)’을 붙였으며, 자유당(自由黨)은 자신들이 진정한 당이고 상대 당은 가짜 당(僞黨)이라고 규정하여, ‘위당박멸(僞黨撲滅)’을 모토로 삼았다. 이것은 막말기 당파 정치기에 당파들이 스스로를 ‘정의당’이라고 칭하고, 상대방을 ‘속론당’ 등으로 매도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런 논리는 상대 당의 타당 가능성과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 당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 정당 체제로 가는 맹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자유당과 쌍벽을 이루던 입헌개진당(立憲改進黨)이 그 발기 취지서에서 목표를 ‘유일 정당’의 건설로 삼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나중에는 복수 정당의 공존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정당 도입의 초창기에 정당을 부정하거나 유일 정당을 지향하는 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은 정당에 대한 이후 일본인의 태도를 크게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다이쇼(大正) 정당정치가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고 독일 나치당을 모방한 대정익찬회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후 완벽한 민주적 선거가 보장된 상태에서도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약 50년 동안 용인한 점, 그리고 현재의 정당정치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점 등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자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민음사, 2014, pp.219-221



널리 자리잡은 전통적 정치관이 지속적인 영향을 준 것도 있겠지만, 정의가 여기도 있을 수 있고 저기(반대당)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역시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는 함. 그런 의미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자연스러운 장기존속가능한 다당제(loyal opposition)라는 개념은 때가 되면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발명될 수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이 아니라 독특한 발명품인 것 같음.
by sonnet | 2018/08/07 12:16 | 정치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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