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五卿博士
記一.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는 분께서는 이 글 밑에 공개(혹은 비공개) 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옛 방명록은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記二. 링크는 자유롭게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강제할 수 없는 규칙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記三. 글을 안 쓰니까 아예 들어오게 되질 않아서 습관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별것 아닌 거라도 좀 쓰면서 들여다보는 습관을 다시 붙이는 쪽으로. (2013년 1월 21일 추가)

떠든 사람: 이재율
by sonnet | 2020/12/12 20:21 | 블로그/일상 | 트랙백 | 덧글(54)
북한 전통문(2020.09)에 대한 개인적 감상
"불법 침입자에 10여발 총격…타고온 부유물에 혈흔만 확인" [北통지문 전문] (중앙일보, 2020년 9월 25일)


본 건에 대해 검역소의 관점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듯 하여.

--
  1. 통일전선부 전통문아런 형식을 취한 것은 북한 정부의 공식 부서에서 온 것이므로 의미가 있음 (그러나 간접화법으로 김정은이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수령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된 것임)
  2.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은 유감이나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말임
  3. 가장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면, "통석(痛惜)의 염(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음.
  4. 북한에게 그 정도 답이 나왔으면 북한이 현 문재인 정부에게 적대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으려는 의도 정도는 있다고 판단하며, 더 떠들어 봐야 나올 것도 없다고 생각함
by sonnet | 2020/09/25 20:20 | 정치 | 트랙백 | 덧글(2)
오늘의 한마디(Fred Rustmann)

[…]와 그 일당의 행위는 명백히 위법이며, 따라서 체포되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이 기업이 정보원을 고용할 때는 그를 잘 키우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로, 정보원의 배를 갈라버리면 정보의 흐름이 멈추고 말기 때문이다.

Rustmann, F. W. 2002. CIA, INC.: Espionage and the Craft of Business Intelligence. Brassey’s Inc.
(박제동 역. 2004. 『CIA 주식회사』. 1판 서울: 수희재. p.219)
by sonnet | 2020/09/24 17:53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3)
삼방일량손(三方一兩損)
개입 정책의 이상 에서 셀프 트랙백


‘삼방일량손’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얘기다. 어느 날 미장이가 세 냥이 든 돈주머니를 주웠다. 미장이는 주머니 안에 같이 들어 있던 도장을 보고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고는 주인인 목수에게 돈을 주려고 찾아갔다. 그런데 목수는 그 돈은 이제 자기 것이 아니라며 도로 가지고 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미장이도 “돈이 탐나서 돌려주러 온 게 아니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오오카에 치젠이라는 뛰어난 재판관이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재판관은 자기 품에서 한 냥을 꺼내어 세 냥에 보태어, 두 사람에게 각각 두 냥씩 나누어 주었다. 두 사람 다 세 냥 들어올 것이 두 냥으로 줄었기 때문에 한 냥씩 손해다. 재판관도 한 냥을 내주어서 한 냥이 손해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 냥씩 손해 보는 삼방일량손으로 골치 아픈 중재가 끝이 났다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조정 기법이 에도시대까지는 활용되었던 모양이다. 키와타케 모쿠아미가 지은 가부키 〈세 명의 키치사, 유곽에서의 첫 거래〉에 ‘경신탑’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는 키치사라는 이름이 같은 세 사람이 등장한다. 여장을 한 도적 키치사가 창기를 죽이고 돈 백냥을 빼앗는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애송이 악당 키치사가 “그 돈을 나한테 순순히 건네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두 사람이 칼을 빼들고 서로 돈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데, 이들보다 더 노회한 악당인 화상 키치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내게 맡기고 칼을 물려주시게”라며 말을 꺼낸다. 두 사람이 일단 싸움을 멈추고 칼을 거두자 화상은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은 백 냥을 내놓게. 내놓지 않겠다고 옥신각신하다 소중한 생명을 버릴 셈인가. 이번만큼은 내가 중재를 설 테니 싫어도 내 말을 들어보게. 서로 다투는 백 냥을 둘로 나누어 낭자도 오십 냥, 도령도 오십 냥씩 싸움을 만류한 내게 주지 않을 텐가? 그 대신에 내가 양팔을 내놓으면 오십 냥치고는 값이 더 나가는 거지만, 칼을 빼어 그대로 칼집에 꽂는 건 사내의 수치니 내가 양보함세. 양 팔을 베어 백 냥 어치를 맞춰주게나.”

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화상의 팔을 칼로 베고 이어서 자기들의 팔도 베어 세 사람의 팔에서 흐르는 피를 모아 나눠 마시고 의형제가 되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청년 시절 카와시마 타케요시 선생의 『일본인의 법의식』에서 읽었는데, 일본인의 조정술이 고도의 정치기술을 요한다는 것을 알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이상한 조정술에 대해 카와시마 선생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분쟁의 해결 방법은 화상 키치사가 말하듯이, 다툼을 ‘원만하게 수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조정의 성격을 띤 중재는 분쟁 당사자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밝히는 것 – 현대 법에 의한 재판은 이를 목적으로 하지만 – 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화상 키치사가 말하듯 ‘원만하게 수습하는’ 것, 곧 분쟁 당사자 사이를 사이 좋은 관계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카와시마 타케요시 『일본인의 법의식』
카와시마 선생은 이 분쟁 조정이 성공한 이유로, 중재인인 화상 키치사가 세 사람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악당들 사이에서 격이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뿐만 아니라, 화상 키치사가 제시한 조정안의 정교한 논리성에도 공의 일부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당사자든 중재자든 아무도 이익을 얻는 사람이 없는 해결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해결은 얼핏 보면 아무리 좋게 봐도 ‘옳은 해법’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득이 되지 않는 해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해본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이해하겠지만, 조직 안에서 눈에 띄게 이익을 얻는 사람이 없는 해법이 오히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을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옳지 않은 해법’으로 합의를 이루는 편이, 당사자 쌍방이 “죽어도 내가 옳다”며 서로 주장함으로써 아예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편보다 낫다고 보는 사회적 합의가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급속도로 사라지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리스크 사회가 도래했다’고 알려주면서 정작 이런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대신 항상 옳은 해법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 낙관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올바른 해법을 계속해서 선택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야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틀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무조건 옳아야 한다’는 유형의 주장을 한다. 만약 ‘틀리면 죽는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사람은 ‘정답을 맞히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틀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内田 樹. 2007. 下流志向 : 学ばない子どもたち、働かない若者たち. 東京: 講談社.
(김경옥 역. 2013. 『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1판 서울: 민들레. pp.98-103)


앞선 낙타 사례와 달리 중재자가 개인적인 희생을 해서라도 공익을 주선하는 이야기,
그건 그렇고, 당장 대가리 깨지는 상황이 사라지면, 다들 간댕이가 붓나봄
by sonnet | 2020/09/10 20:52 | 정치 | 트랙백 | 덧글(7)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