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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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卿博士
記一.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는 분께서는 이 글 밑에 공개(혹은 비공개) 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옛 방명록은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記二. 링크는 자유롭게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강제할 수 없는 규칙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記三. 글을 안 쓰니까 아예 들어오게 되질 않아서 습관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별것 아닌 거라도 좀 쓰면서 들여다보는 습관을 다시 붙이는 쪽으로. (2013년 1월 21일 추가)

떠든 사람: 이재율
by sonnet | 2021/12/16 19:19 | 블로그/일상 | 트랙백 | 덧글(54)
오늘의 한마디(Wolfgang Pauli)
내가 파울리 교수가 말했던 것을 기억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몇 년 후 내가 양자론을 만들게 되었을 때 그 이론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분은 즉각 난점을 알아차려서 질문 중에 내게 그것을 설명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질문들에 답변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정말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나는 파울리 교수와 함께 팔머 도서관 계단을 올라가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때 그가 말했다. “휠러 교수가 강연하신다면, 양자론에 관해 어떤 것을 말씀하실까?”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제게 말씀해 주신 적이 없어요. 그분은 혼자서 그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 그분이 연구를 하는데 자기 조수에게조차도 양자론에 관해 무엇을 연구 중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더 가까이 와서 낮은 목소리로 비밀을 말할 때처럼, “휠러 교수는 세미나를 결코 하지 않을 거야.”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휠러교수는 그 세미나를 하지 않았다. 그는 양자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거의 완성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세미나를 해야 할 때가 되자, 그 자신이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다 – 반전진 반지연 전위의 양자이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수 년 동안 그것을 계속 연구했다.

Feynman, Richard P. 1985,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1st ed, W. W. Norton (김재삼, 양종만, 최승희 역, 1987,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 도솔, p.101)
by sonnet | 2021/09/08 13:18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2)
중국 공산당의 리더 선출
전국인민대표회의는 11월에나 열리기로 되어 있는데 어째서 시진핑은 그렇게 강력한 지위에 이미 올라 있었나? 경쟁자들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2012년 권력 승계 이후로 수억 개의 단어로 갖은 글이 나왔지만 기저의 내용 가운데 확연한 사실은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권력 승계 과정은 동시에 이를 위한 규칙이 정해지는 과정이었다. 선례를 살펴보면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단지 어느 정도에 불과했다. 공산당 중심에는 분명한 후계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후 지명을 하는 방식과 과정을 정리한 매뉴얼이나 깔끔한 규정집 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사용해 온 업무 처리 방식은 있었다. 예를 들어 공산당은 특정 자리가 비었을 때 언제까지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는 일정 제한이나 추상적으로 모든 계급의 공산당원 전부와 상의한 후 이 자리에 누구를 임명해야 할지 의결하고 당원들의 생각을 조사하여 정리, 반영한다는 추상적인 약속 등이다. 그러나 2012년이 지나자 중국공산당은 정량화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 내용(예를 들어 공산당원 투표수)을 명확한 내부 규칙으로 정하는 조직이라기보다 그 안에서 복잡하고,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 반응 같은 것이 일어나는 조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과정을 거쳐 어떻게든 질문의 답이 나왔지만 그 답은 결코 2~3명 또는 그 이상의 후보자 이름을 칠판에 적고 투표를 하여 가장 득표수가 높은 사람을 승자로 발표하는 방식처럼 보이는 그대로의 방식을 절대 따르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떤 이견이 있을 때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어 움직이고,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를 하며, 마법처럼 최종 결과가 나올 때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선출 과정에 참여하고 기여했다는 느낌을 주는 방식이다. 비록 이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또는 누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중국의 권력 승계는 보기 드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당원들끼리 서로를 납득시키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면서 거의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는 정치학의 영역이라기보다 마법의 영역에 더 가깝다.

결국 이 모든 과정 속에는 하나의 대단히 중요한 타당성이 들어 있고,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은 뒤로 밀린다.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에게 지극히 중요한 체제 안정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공산당이 때로 상당한 물리력을 동반하여 중국 사회에 ‘안정 유지’ 규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내부에도 통제가 불가능한 갈등이나 당내 투쟁 또는 분파가 생겨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한다. 보시라이가 실각하던 무렵 이에 대한 우려가 가장 고조되었다. 이때에 당내, 특히 엘리트 그룹 사이에 각자의 몫을 두고 경쟁하는 분파가 있다는 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여러 측면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잘 지내려 애쓰는 정치적 연합체이다. 표면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있다. 보시라이의 경우 적어도 자신이 근무하던 지역에서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인기가 높은 지도자였다. 적절한 비용의 주택affordable hosung 제공이나 근로 환경 개선 등 인기 있는 정책을 실시했고 일반 민중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공산당 내 엘리트층에서는 설령 그를 지지하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조차 지역주의적 이득을 얻기에 적합하지 않은 시기에 집단주의 공산당을 내파시킬 위험을 고려하여 한 번 더 자신의 선택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보시라이의 처벌을 두고 불만을 표시한 사람은 저우융캉 한 사람뿐이었다는 소문으로 미루어 당내에 반대 의견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다. 전체적으로 공산당의 엘리트 당원들은 체제 불안정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쓴다.

Brown, Kerry. 2016. CEO, China: The Rise of Xi Jinping. 1st ed London ; New York: I.B. Tauris.
(도지영 역. 2017. 『CEO 시진핑 : 시진핑의 국가경영 리더십』. 1판 서울: 시그마북스. pp.138-140)


권력을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플레이어들이 있지만, 공산당의 집권통치라는 판을 깰 위험이 있을 때는 판을 깰 위험이 있는 플레이어를 배제하는 쪽으로 공산당 지도부의 의견이 모이게 되는데, 그렇게 제거된 자가 예전에는 자오쯔양이었고, 이번에는 보시라이였다고 보면 적절한 설명인 듯.


그래서 만일 두 후보자, 또는 이름이 거론되는 다른 경쟁자들에게 직접 ‘자신이 공산당 총서기로 지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는 없겠지만) 대답을 통해 총서기 자리에 요구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 도덕적으로나 행정 경험적으로나 그 자리에 오를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보면 중국공산당의 총서기 자리가 얼마나 특이한 성격을 갖는지 알 수 있다. 결국 공산당 총서기의 핵심 업무는 무엇인가? 공산당 총서기는 어떤 구체적인 선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권력을 얻으려는 자리가 아니다. 공산당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으로 권력은 이미 공산당이 쥐고 있으며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 조직을 이끌기 위한 자리도 아니다. 다만 정부 기관에 폭넓은 정치적, 이념적 리더십을 제공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당 총서기는 교황이나 캐터베리 대주교(영국 성공회의 최고위 성직자 – 역주)처럼 정신적인 지주인 셈이다. 공산당 총서기의 역할은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특정 덕성의 귀감이 되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공산당, 그리고 공산당의 임무에 대한 깊은 신념과 확신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 총서기의 자리는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기보다 자리가 사람을 선택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중국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적극적인 유세활동을 펼칠 일은 없다.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비결이며, 이는 정치적 야망을 가진 후보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만 직관적으로 부여되는 특전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자리에 오르려는 후보자들은 당에 실제적이고 깊은 헌신을 해야 하고, 자아나 개인적인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당을 생명으로 여기며, 당이야말로 자신이 완벽하게 속해 있는 곳, 충실하게 섬기는 대상이라는 점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중국공산당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관리하고 있는 시점에 그 성공의 물질적 과실을 누릴 수 있는 핵심 지위에 있으면서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는 정말 어렵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그가 이 자리에 올라도 무방하다고 당내 핵심 엘리트층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같은 책, pp.144-145

이런 측면에서도 (적당히 찌그러지지 않고 끝까지) 능동적으로 그 자리를 꿰차려고 날뛰었다는 점에서 보시라이가 튀는 행동을 했고 동료집단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볼 수 있음. 그리고…


이에 비해 사실 중국의 지도자들에게도 신념이 있고, 그들도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기 위하여 무자비해질 정도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술사, 예언가, 군사령관 혹은 폭력단 두목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기관으로서의 공산당이다. 서구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은 사람과 비슷하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자신을 방어하며, 집단의 신념과 열정을 표현해 줄 인재를 보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덩샤오핑도, 장쩌민도, 후진타오도, 시진핑도 제국주의 시대의 황제로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지도자들을 이용하여 영원불멸을 추구하는 황제는 바로 공산당이다. 중국의 지도자는 공산당의 대변인이자 절대 틀릴 수가 없는 공산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일 뿐이다.

같은 책, p.148

이런 주장을 펼치는 저자조차도 마오쩌둥만큼은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거
by sonnet | 2021/09/04 01:17 | 정치 | 트랙백 | 덧글(8)
경직된 융통성
《경영의 대부》

일본인들은 이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 시스템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도 사실상 거의 없을 정도다. 내가 이해하는 한, 이 시스템에는 이름이 없다. ‘대부’라는 용어는 그들이 쓰는 용어가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젊은 경영관리직 직원들은 자신의 대부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그의 보스와 그 보스의 보스도 그렇다.

대부는 결코 젊은 직원의 바로 위 상사가 아니다. 대체로 그 직원이 직접 보고하는 상부라인에 있는 사람이나 같은 부서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대부가 최고경영진의 일원인 경우는 드물고, 최고경영진이 될 사람인 경우도 드물다. 오히려 중상층의 경영진 멤버 중 선정된 사람으로, 55세가 되면 자회사나 계열회사의 최고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길 사람이다. 달리 말하자면 대부들은 45세가 지났기에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는 최고경영진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파벌을 만들거나 사내 정치를 할 가능성이 적다. 동시에 중상위층 경영진 그룹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구성원들이다.

젊은 직원들 각각을 위한 대부는 어떻게 선택될까? 공식적으로 배정되거나 비공식적인 이해가 이뤄지고 있는 걸까? 아무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보통 그들이 언급하는 한 가지 자격은 대부가 젊은 직원이 졸업한 학교의 동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연’은 영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끈끈하다. 회사 내의 모두가 누가 젊은 직원의 대부인지 알고 있으며 그 관계를 존중한다.

비록 대기업 내에 동시에 100명의 ‘대자’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는 ‘대자’인 젊은 직원이 최초 10년 정도의 경력을 쌓는 동안 그와 가깝게 연락하며 지낼 거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는 그 젊은 직원에 대해 알고, 상당히 규칙적으로 만나고, 그에게 조언이나 상담을 해주고, 일반적으로 그를 돌봐 줄 거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는 일본 문화를 반영하는 몇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돌봐 주는 젊은이들에게 긴자 거리의 좋은 술집과 제대로 된 홍등가를 알려준다.(사람들 앞에서 술을 마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젊은 일본 임원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젊은 직원이 무능력한 상사 때문에 부서를 옮기고 싶어할 때, 대부는 옮겨야 할 곳과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일본인들에 의하면 ‘결코 이뤄진 적이 없는 일’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결코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젊은 직원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훈계할 필요가 있다면 대부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 문제를 처리한다. 젊은 직원이 30세가 될 때면 대부는 그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게 된다.

최고경영진과 함께 앉아 그들에 대한 논의를 하는 사람도 대부다. 이런 회의는 완벽히 ‘비공식적’이다. 대부는 사케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카무라는 좋은 사람이고, 더 도전적인 과제를 맡을 준비가 됐습니다.” 혹은 “나카무라는 좋은 화학자지만 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네요.” 혹은 “나카무라는 선의가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천재는 아니니까 일상적인 업무 외에 다른 일은 맡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업무를 배정하고, 어떤 사람을 어느 자리로 옮길 것인지에 대한 인사 결정을 내릴 시기가 되면 인사관리담당자들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부와 조용히 상의한다.


《아웃사이더의 짧은 경험》

몇 년 전 순전히 우연한 기회에 나도 ‘임시 대부’가 됐던 적이 있다. 내 경험이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뉴욕대에서 근무했던 20년 동안 만난 가장 재능 있는 학생 중 한 명은 젊은 일본인이었다. 이름을 오쿠라라고 하자. 외교관의 아들인 그는 옥스퍼드대 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외교관이 아닌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뉴욕에 있는 우리 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일본의 가장 큰 다국적기업 중 한 곳에 취업했다.

몇 년 전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가 찾아왔다. 나는 “오쿠라,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하고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뵈러 왔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랬다. “제가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제게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경영진은 모두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죠. 결과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제가 회사의 해외지점 중 한 곳의 관리직을 맡을 준비가 됐다고 인사팀에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인사팀에서 지난 번 남미지역에 두 자리를 채우면서 저를 후보로 고려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지, 준비가 됐는지,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저희 회사 상임 부회장과 며칠 내에 점심을 함께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 교수님이셨으니 제 입장에서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물었다. “오쿠라, 자네 회사의 부회장이 외부 사람이 간섭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그는 “오, 아닙니다. 오히려 고마워할 겁니다.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옳았다. 내가 부회장에게 오쿠라의 이름을 언급하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교수님께 오쿠라의 계획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쿠라가 해외에서 중요한 관리업무를 맡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이야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와 같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석 달 후 오쿠라는 남미의 상당히 중요한 국가에 있는 해외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서구인들을 위한 시사점》

훨씬 덜 공식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서구에도 여전히 일본인이 하는 것처럼 젊은 친구들에게 회사에 들어온 후 처음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내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임 관리자가 필요하다. 아마도 오늘날 대기업의 젊은이들이 가진 가장 큰 불만 하나는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는 사람,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 시니어 상담자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경영학 책에서는 일선 관리자들이 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일선 관리자는 주어진 업무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인간 관계가 첫번째 직무다”라는 설교는 모두 소용이 없을 것이다. 관리자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붙잡고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가 “자네는 여기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웠네”라고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넨 잘 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가 맞는 것 같진 않네”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젊은 직원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은가? 자네가 그곳에 가도록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라고 묻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리자는 젊고 능력 있는 직원이 일을 바꾸거나 자리를 옮기려는 욕망의 어떤 낌새라도 보인다면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으로 간주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럽도 그렇지만 미국 기업과 산업에서는 젊은 경영관리직과 전문직 직원들이 “퇴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다”. 즉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진심 어린 접촉이 없다는 것이 이들이 높은 이직률을 보이는 중요한 이유다. 종종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듣는다.

  • “회사는 좋은데 대화할 사람이 없습니다.”
  • “회사는 좋아요. 하지만 제가 잘못된 곳에 있는 것 같은데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 “제가 뭘 잘하고 있고 뭘 잘못하고 있는지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제가 진짜 어디에 속해 있는지도요. 우리 회사에는 제가 찾아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학자가 아니다. 직무와 일에 초점을 맞춘 인간관계,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을 걱정해 주는 멘토가 필요하다. 경직된 시스템이 가진 인간미 없는 형식상의 절차 때문에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제공해야 했던 것이 이런 것들이다. 대부라는 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올바른 방식으로 이 관행을 구축해왔다. 대부의 기능이 별도의 직무나 개인적인 네트워크의 일부가 아니고, 전문가에게 위탁한 일도 아니며, 경험이 풍부하고, 성공을 거둔 존경받는 경영진에 의해 제공된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들 시스템의 강점이다.

[...] 일본의 대부 개념은 서구인들에게 너무 가부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젊은 일본인들도 실제로 이 개념이 너무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경영관리직과 전문직 직원들이 선임 직원들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시스템은 요즘 같은 ‘세대간 격차’의 시대에 특히나 절실하게 필요하다.

Peter F. Drucker, What We Can Learn from Japanese Management, Harvard Business Review, March 1971
피터 드러커, 일본식 기업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by sonnet | 2021/09/01 23:33 | 문화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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