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다소 단순하게 의인화한 감이 있는데 그 점은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90년대 지방균형발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1포트/2포트 논쟁이었다. 현재(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 안에서도) 한국 제1의 항구는 단연 부산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부산 하나가 아니라 부산과 광양의 2대 항구를 중심으로 발전시키면 지역균형발전 면에서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광양이 순수하게 자기 힘만 갖고 크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책적인 배려를 통해 부산의 발전을 제한하면서 거기서 돌린 물량을 갖고 광양을 발전시켜 두 개의 축으로 정립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다. 반면 부산은 중국의 상하이나 일본의 고베 등 외국 항구와 계속 경쟁하는 입장이다보니 그런 제한은 곤란하다고 여겼고, 우선 상하이 고베에 밀리지 않게 부산에 최대한 투자를 하고, 그러고 남는 여력이 있으면 광양에 돌리는게 순리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물론 서울은 항구도시가 아니니까 여기서 논외였고, 그래서 이 문제는 주로 지방 간의 힘겨루기 같은 양상을 띄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나서 보면 정책적 배려로 광양을 양강 체제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처음 계획은 다소 순진했던 것 같다. 우리의 정책적 배려로 어쩔 수 없는 상하이의 발전이 워낙 눈부셔서, 광양에게 물량을 밀어주기 위해 부산 신항 개발을 강하게 억눌렀으면, 부산은 상하이와의 경쟁에서 완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포트 정책이 한동안 실시되었기 때문에, 광양이 전혀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인천처럼 이 구도에 끼지 못한 지역은 또 그 나름대로 그런 결정에 꾸준히 불만을 표명하면서 자기지역 투자를 역설한다. 그리고
광양의 불만을 읽어보면, 광양이 충분히 강력하게 크지 못한 상태에서 인천이나 평택 등이 경쟁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것이 광양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돌려서 말하지만 2포트의 기본개념에 충실하게 분산시키지 말고 2개로 몰아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인 셈이다.
부산이 선물거래소(KRX)를 서울에서 받아간 것 같은 논리(*)라면, 광양도 부산의 물량을 떼어달라고 말할만 하다. 반대로 광양이 한편으로는 부산의 물량을 나눠받길 원하면서 2포트로 몰아달라는 논리는 부산이나 인천에게는 설득력이 없게 들릴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산이 KRX를 가져야 하는 동시에 1포트를 고수해야 한다는 희망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하려는지에 흥미를 갖고 있다. 경제성 논리면 KRX를 내놓고 1포트를 지켜야 할 것이고, 지역균형 논리라면 KRX를 받고 2포트에도 양해를 표시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부산이 서울에게 작은 것를 받고, 부산은 광양에게 다시 약간만 양보한 식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약간만'이다. 서울은 금융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을 만큼 양보를 한 적이 없고, 부산 또한 세계적 대항구로서의 지위를 잃을 만큼 큰 양보를 한 적이 없다.)
(*) 금융밀집지역으로서의 입지를 놓고 객관적으로 다투면 부산이 서울을 꺾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실 KRX는 지금도
서울로 갔으면 하는 눈치다. 선물거래소가 부산으로 간 이유는 당시에도 정치적 결정이었고, 그게 거기 남아있을만한 이유도 여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부산은 우리도 이런 거래소 하나 쯤 가지고 있어야된다는 여론이 강한 반면, KRX같은 것 하나 더 먹자고 서울은 부산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